미국이 7년간 유지했던 제로금리(0~0.25%) 시대 종료를 선언한 가운데 세계 각국의 셈법이 복잡해지고 있다. 미국의 금리인상에 앞서 한 달 사이 선제적으로 금리를 올린 4개 나라를 포함할 경우 최근 금리를 인상한 나라는 13개국에 달한다. 반면, 미국의 금리 인상에도 2개국은 금리를 내렸고, 6개국은 금리를 동결했다.
가장 먼저 대응에 나선 것은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 쿠웨이트, 바레인 등 중동 4개국이다. 미국 금리인상 전부터 달러 강세에 몸살을 앓았던 이들 국가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16일(현지시간) 금리인상을 단행하자 같은 날 바로 금리인상에 나섰다. 인상 폭도 연준과 같은 0.25%포인트였다. 이들 국가는 자국 통화가 달러화에 고정돼 있어 페그제를 유지하기 위해 자국 금리를 미국의 금리 인상에 따라 끌어올렸다.
이에 나머지 페그제를 운용하는 산유국 오만과 카타르도 조만간 금리인상 대열에 합류할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달러 페그제를 운용하는 이들 국가 통화 가치는 달러가 강세를 나타내면 상대적으로 하락하게 되고, 자금 이탈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가뜩이나 걸프 산유국은 지난 1년 전만 해도 배럴당 100달러대였던 유가가 공급 과잉 달러 강세 여파 등으로 40달러 밑으로 추락하면서 재정수입이 크게 줄었다.
미국 금리인상은 산유국 외 다른 국가의 셈법도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석유수출국기구(OPEC) 역외 산유국인 멕시코 중앙은행도 기준금리를 3.0%에서 3.25%로 상향 조정하며 환율 방어에 나섰다. 홍콩 역시 17일 기준금리를 0.25% 포인트 높였다. 홍콩도 미국 달러화에 자국 통화를 고정한 환율 페그제를 운용하고 있다.
칠레 중앙은행도 17일 물가상승률을 억제하기 위해 기준금리를 3.0%에서 3.25%로 0.25% 포인트 올렸으며 콜롬비아 중앙은행은 18일 기준금리를 5.75%로 0.25% 포인트 인상했다. 페소화 가치 하락을 막기 위한 조치다. 유럽 동부의 소비에트 연방국 중 하나였던 조지아도 16일 인플레이션 억제를 위해 기준금리를 7.5%에서 8.0%로 0.50%포인트 인상했다. 터키 중앙은행은 기준금리는 아니지만 지난 17일 달러화 표시 법정준비금의 금리를 0.24%에서 0.49%로 올리면서 대응에 나섰다. 이에 따라 오는 22일 열리는 터키는 통화정책회의에서 기준금리를 인상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미국의 금리 인상에 앞서 선제적 대응에 나선 국가도 많다. 가나(11월16일), 남아프리카공화국(11월19일), 페루(12월10일), 모잠비크(12월14일) 등이 한 달 사이 금리를 올렸다. 중국은 미국 금리인상을 앞둔 지난 11일 주요 13개 교역대상국의 통화를 토대로 산출한 위안화 바스켓지수를 발표했다. 사실상 위안화 평가절하를 위한 포석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해석이다. 유럽중앙은행(ECB)은 지난 3일 정례통화정책회의에서 마이너스(-)인 예금금리를 -0.2%에서 -0.3%로 내리고 월 600억 유로(약 77조2794억원) 규모의 국채 매입 프로그램을 2017년 3월까지 6개월 연장하는 추가 부양책을 발표했다.
반면, 미국의 금리 인상에도 금리를 내린 나라도 있다. 대만은 예상과 달리 금리를 인하했다. 대만 중앙은행은 17일 기준금리를 1.75%에서 1.625%로 0.125%포인트 낮췄다. 이는 금리를 내려 수출 경제를 되살리겠다는 의도다. 베트남은 민간은행들의 달러화 예금 금리를 0.25%에서 0%로 내렸다. 달러 예금으로 돈이 몰리는 것을 억제하기 위해서다.
아시아 국가 중에서는 인도네시아가 기준금리를 7.5%로 동결했다. 다만, 내년 1월 지표에 따라 금리 인하 등의 조치를 통해 정책을 완화할 여지가 있음을 시사했다. 노르웨이 역시 정책금리를 0.75%로 동결했으나 내년 상반기에 내릴 가능성을 시사했다.
필리핀도 하루짜리 예금금리와 대출금리를 각각 4%, 6%로 동결했다. 태국 중앙은행은 미국의 금리 인상 하루 전에 기준금리를 1.50%로 동결했다. 우크라이나는 높은 물가상승률이 지속됨에 따라 17일 기준금리 22%를 그대로 유지했다. 체코도 금리를 동결했다. 이집트는 애초 17일로 예정됐던 금리 결정을 오는 24일로 미뤘다. 미국의 금리 인상에 따른 경제적 여파를 좀 더 확인하기 위해서다.
각국의 금융정책 행보가 엇갈리면서 불확실성 증대에 따른 금융시장의 변동성도 커지고 있다. 미국 금리 인상 직후 급등했던 글로벌 증시는 다음날 곧바로 전날 상승분을 반납하고 하락세로 돌아섰다. 미국이 금리를 올린 16일 1.45% 급등했던 미국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는 17일 곧바로 1.50% 급락했다. 금리 인상이라는 불확실성 제거에 급등했던 글로벌 증시 역시 미국의 주가 하락에 일제히 하락했다.
미국 달러화도 방향성을 찾지 못하는 모습이다. 주요 6개 통화에 대한 달러화 가치를 환산한 달러지수는 17일 0.85% 오른 99.151까지 상승했다가 다음날 0.50% 하락한 98.655까지 낮아졌다. 국제 유가는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기준으로 배럴당 34.73달러까지 떨어져 2009년 2월18일 이후 최저치를 경신했다. 감산 등 반등 요소가 없는 상황에서 달러가 강세를 보인다면 추가 하락세는 불가피하다. 골드만삭스는 국제유가가 배럴당 20달러까지 내려갈 수 있다고 경고했다. 문제는 유가 약세가 장기화할 경우 내년 미국의 물가상승률 둔화로 이어지면서 추가 금리 인상 시간표는 다시 불확실성에 휩싸일 수 있다는 것이다. 재닛 옐런 연준 의장은 16일 금리인상 결정 후 기자회견에서 향후 금리인상 속도는 물가상승률 등 경제지표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