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흥국 경제위기에 금리인상 연기론 힘받아…신흥국 중앙은행들 불만 “차라리 올려라”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연준)가 기준금리 인상을 연기할 것이라는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다. 이는 신흥국 경제가 위기에 빠질 수 있다는 불안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시장에선 주가가 오르고 신흥국 통화 가치가 반등하는 등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지만 정작 신흥국에선 불확실성 해소 차원에서라도 연준이 금리 인상을 서둘러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미국 노동부가 지난 2일(현지시간) 발표한 9월 월간 고용보고서가 뜻밖의 부진을 보이면서 신흥국 통화와 증시는 가파른 오름세를 나타냈다. 연준의 금리인상 전망에 올 들어 신흥국 통화 가치가 추락했으나 불과 1주일여 만에 상황이 180도 바뀐 것이다.
인도네시아 루피아화 가치는 미국 달러화에 대해 지난 1~9월 15% 하락했다. 같은 기간 말레이시아 링깃화 가치도 20% 빠졌다. 그러나 루피아화 가치는 지난 9월 말 이후 9일까지 6% 올랐다. 이는 지난 2001년 이후 주간 기준으로 가장 큰 상승폭이다. 링깃화 가치는 4.2% 상승해 1998년 이후 최대폭의 상승세를 보였다.
11일 폐막한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WB) 연차 총회를 통해 연준이 올해 금리인상을 단행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은 더욱 힘을 얻었다. IMF가 신흥국의 막대한 부채를 이유로 금리인상 연기를 거듭 촉구했다. 그동안 연내 금리인상 가능성을 시사했던 스탠리 피셔 연준 부의장도 “연내 금리인상은 ‘예상’이지 ‘약속’이 아니다”라며 후퇴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연차 총회에 모인 세계 각국, 특히 신흥국 중앙은행 고위 관계자들은 연준의 미지근한 태도에 시장 불안이 1년 넘게 가는 현 상황에 강한 불만을 토로했다. 말레이시아 중앙은행인 네가라은행의 수크다페 싱 부총재는 “연준의 금리인상 연기가 현 상황을 해소하지는 못한다”며 “신흥시장의 막대한 부채가 문제라면 이를 생각할 수 있는 또 다른 날이 있을 것이다. 금리인상 지연이 이런 이슈 억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타르만 샨무카라트남 싱가포르 부총리는 “작년과 비교해 올해 많은 신흥국 중앙은행 총재가 연준이 금리를 계속 유지하는 것에 더욱 민감해졌다”며 “이들은 불확실성이 줄어들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파라과이 중앙은행의 카를로스 페르난데스 발도비노스 총재는 “모두가 9월에 연준이 금리를 올릴 것이라고 얘기했다. 지난달 금리가 동결되고 나서는 12월이 거론됐다. 이제는 내년 1월 이후를 얘기하는 상황”이라며 “이렇게 전망이 흐릿한 가운데 우리가 어떻게 준비를 하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연준이 금리인상을 내년으로 연기하면 앞으로도 최소 수개월 이상 불확실한 전망 속에 시장이 요동칠 가능성이 큰 데, 이렇게 되면 신흥국 금융당국도 어떻게 대처할지 답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시장 불안을 우려해 연준이 행동하기를 주저하는 것이 새로운 변수로 작용하는 역설적인 상황에 처하게 되는 셈이다.
일부 전문가는 연준의 금리인상 여부보다 더욱 신흥국을 걱정스럽게 하는 것은 중국 변수라고 지적했다. 제프리 바커 카운터포인트아시안매크로펀드 펀드매니저는 “신흥국 경제회복은 중국에 달렸다”며 “중국 경제가 혼란 속에서도 경착륙하지 않는다면 위안화 평가절하도 심각하게 이뤄지지 않을 것이다. 이는 신흥국 통화 가치를 지탱할 수 있는 요인”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