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ㆍ화학 저유가 치이고 車ㆍ철강 엔저에 밀리고
우선 저유가로 수출 제품 단가가 하락하면서 이제는 수출이 호조를 보이더라도 국내 경제가 크게 나아지지 않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지난 80년대 중반 저유가에 힘입어 수출이 늘면서 국내 산업계가 뜻하지 않은 경기 호황을 누린 것과는 대조적이다. 올해 들어 수출이 8개월 연속 내리막을 걷고 있는 것도 유가하락에 우리나라 수출품의 20%를 차지하는 석유ㆍ석유화학 제품의 단가가 내려가면서 최근 물량 증가에도 전체 수출액이 감소했기 때문이다.
원화 약세는 엔화 및 유로화 약세에 묻혀 제대로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자동차ㆍ철강 등 일본과 수출 경합도가 높은 국내 산업은 엔저로 가격 경쟁력을 높인 일본 기업에 밀리고 있다. 과거 80년대는 수출 시장에서 가격경쟁력이 중요한 무기였지만, 달러를 제외한 기타 통화의 가치 하락으로 선진국 시장에서 가격 경쟁력으로 승부하는 시대는 지났다. 특히 기술집약적이고, 디자인 혁신으로 중무장한 제품이 글로벌 시장에서 ‘가격’만으로는 주도권을 확보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고령화와 저출산, 그리고 질 좋은 일자리 감소로 인한 구조적인 소비 위축도 저유가·저금리의 긍정적인 효과를 살리지 못하고 있다. 이근태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저유가로 소득이 늘어났지만 소비자들이 노후 대비에 많은 지출을 하면서 지갑을 닫는 바람에 긍정적인 효과가 상쇄됐다”고 말했다.
제자리걸음을 면치 못하고 있는 제조업 노동 생산성도 과거와 같은‘3저’호황을 재현하기 어려운 배경 중 하나다. 산업통상자원부 등에 따르면 주력산업인 제조업 노동생산성은 2012년 감소세를 보인 후 2013년 소폭(0.3%) 상승했지만 지난해에는 사실상 ‘0’의 증가율에 그쳤다. 수출 경쟁력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노동 생산성 향상을 위한 노동개혁과 기업 구조조정이 시급하지만 여전히 더딘 상황이다.
노동비용 상승률만 봐도 2007년부터 지난해까지 8년 간 독일과 일본의 연평균 노동비용은 감소했고 미국은 제자리에 머문 반면, 우리나라는 6.6%씩 올랐다. 현대자동차의 경우 임금수준이 우리나라 근로자 평균의 3배에 이르고, 경쟁사인 도요타보다도 높다. 이처럼 생산성은 떨어지는데 노동비용만 오르면서 내수는 더욱 쪼그라들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