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곤 경희대 정외과 객원교수 · 전 국민일보 주필
이쯤 되면 오픈 프라이머리, 그러니까 국민경선제 실시가 기정사실화한 것으로, 당 안팎의 인식이 일치되어 있어야 할 텐데 여전히 반신반의하는 분위기다. 청와대와 친박 측이 이를 순순히 수용하기 어렵지 않겠느냐는 회의감 때문일 듯하다. 아직은 지켜봐야 할 일이겠다는 뜻이다.
한편 새정치민주연합도 선거구마다 국민공천단을 구성해 후보를 결정하도록 하는 혁신안을 7일 발표했다. 물론 지역구 20%에 대해서는 전략공천을 하기로 한 만큼 전면적 국민공천제 실시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렇더라도 큰 틀에서 보자면 오픈 프라이머리 대세에 따르는 모양새다.
“공천권을 국민에게 돌려드린다.”
이것이 국민공천제의 의의와 명분이다.
교과서적으로 말하자면 국민은 선거를 통해 주권을 행사한다. 이것이 대의민주제의 핵심적 과정이다. 정당은 당을 대표해 선거전에 나설 후보를 결정해서 국민의 선택에 맡긴다. 이는 정당의 주요 역할 및 기능 가운데 하나다. 이제 정당들은 선거권에 더해 후보 선정권, 그리고 이에 수반되는 책임까지도 전적으로 국민에게 내주겠다고 한다. 바야흐로 주권재민의 민주정치가 만개하는가.
나쁠 것은 없는데, 정말 공천과정에서조차 정당이 손을 떼겠다면 선결해야 할 과제가 있다. ①정당은 국회의원에 대한 연고권을 포기해야 한다. 무엇보다 ‘당론’이라는 핑계로 소속 의원들의 의사결정권을 제한하려 해서는 안 된다. 국민이 공천하고 국민이 당선시킨 의원인 만큼 정당에는 이들의 의사를 구속할 명분과 근거가 있을 리 없다. ②‘비례대표제’도 폐지하는 게 옳다. 지역구 후보 공천을 포기하는 정당이 전국구 혹은 권역별 비례대표 후보를 결정하고 그 의석을 나눠 받는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 이 경우도 공천권은 국민에게 부여돼야 하고, 그렇게 해서 확보되는 의석 또한 국민 몫이어야 한다.
③정당의 조직 또한 당연히 달라져야 한다. 중앙당 중심의 정당체제가 유지돼야 할 까닭이 없다. 의원들은 정당의 공천으로 선거에 나서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당의 결정에 구속되지 않는다. 이후 정당은 철학 이념 국가관 가치관 정책목표 등 다양한 이유로 가입한 의원들의 느슨한 협의·협력 조직이 될 것이다. 현실적으로 각 정당의 중앙당은 막강한 권력기관의 지위를 갖고 있다. 각 정당 지도부는 그 의원들을 거느리고 권력자 행세를 한다. 야당의 경우 집요하게 대통령과 여당을 공격하면서 이른바 ‘약자(弱者) 코스프레’를 하고 있지만 입법에 관한 한 그 힘은 대통령을 넘어선다. ‘국회 선진화법’ 덕분이다.
①②③의 조건에 부합하는 정당의 예는 미국에서 볼 수 있다. 미국 정치에는 ‘당론 표결’, 비례대표, 그리고 중앙당, 이런 것들이 없다. 정당의 조직과 통제력은 느슨하다. 사실 오픈 프라이머리 제도가 바로 이러한 정당체제와 미국식 대통령제의 산물이기도 하다. 우리 정당들도 미국 식으로 아주 체질과 조직과 운영방식을 바꾸면 오픈 프라이머리를 해도 문제가 없다. 이 결정부터 먼저 하는 게 순서가 아닐까?
하긴 오픈 프라이머리가 전면적으로 실시될 때, 지금과 같은 강력한 중앙집권적 정당조직은 저절로 와해될 수밖에 없다. 의원들의 소속감 구속감이 크게 약화될 게 뻔하고 그 다음 단계는 중앙당의 무력화일 것이다.
말이 났으니 말이지만 우리 정당들은 그런 방향으로 가야 한다. 그간 공천을 둘러싸고 빚어졌던 온갖 비리와 부정부패, 그리고 의원들의 지나친 정당 예속 현상 등을 생각하면 중앙당의 공천권은 정치타락의 근원이라고까지 할 정도다. 마땅히 대대적이고 전면적인 개혁이 이뤄져야 한다.
그래야 할 이유는 또 있다. 대통령제 유지를 전제로 할 땐 정당제도의 전면적 리모델링이 긴요하다. 지금과 같은 강력한 조직력과 지휘통솔 체계를 갖춘 정당을 고집하겠으면 의원내각제를 택하는 게 오히려 낫다. 문제는 우리 의회정치, 우리 정당들의 수준이 그것을 감당하기에는 너무 떨어진다는 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