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필 겸 미래설계연구원장
백로에 으레 붙는 말이 갈대를 뜻하는 겸가(蒹葭)다. 시경 진풍(秦風) 겸가에 이런 시가 있다. “갈대가 푸르르니 흰 이슬이 서리가 되었네. 이른바 그 사람이 물 저편에 있도다. 거슬러 올라가지만 길이 험하고도 멀구나.”[蒹葭蒼蒼 白露爲霜 所謂伊人 在水一方 遡阻從之 道阻且長]” 보고 싶은 이를 끝내 만나지 못하는 것을 슬퍼한 노래다.
청음(淸陰) 김상헌(金尙憲)의 ‘아우가 지은 시를 차운해’[次舍弟韻]에도 슬픔이 담겨 있다. 병자호란이 끝난 뒤 끌려간 청나라에서 백로를 맞아 쓴 시다. “보이는 것 모두 처량한 백로 때라/이국땅 가을 풍경 슬픔을 못 이기겠네/사람살이 하루 보내기도 어려운데/잘못하여 백년 기약을 하였구나.”[滿目凄凉白露時 異鄕秋景不勝悲 人生一日猶難遣 枉作平生百歲期].
택당(澤堂) 이식(李植)의 ‘일직 마을의 권씨 별장에서 경물을 읊다’[一直村權氏莊詠物] 2수 중 비둘기를 노래한 시에도 백로가 나온다. “비둘기는 예로부터 이름이 똑같지 않건만/떼 지어 날며 처마 끝에 우짖을 줄 아는구나/청전의 종자를 한번 길러보구려/산골의 밤에 이따금 경로성이 들리리니”[鵓鴿從來不一名 群飛只解閙簷楹 請君試養靑田質 山夜時聞警露聲]
일직은 안동의 작은 마을이다. 청전의 종자는 중국 영가군(永嘉郡)의 청전(靑田)에 산다는 유명한 학을 이야기한 건데, 안동의 옛 지명이 영가여서 이를 인용한 것이다. 맨 끝의 경로성(警露聲)은 백로가 내리면 학들이 몸을 다칠까 서로 경계하면서 살 곳을 옮기며 우는 소리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