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인희 칼럼] 이산가족 상봉, 그 이후가 더 중요하다

입력 2015-08-25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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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인희 이화여대 교수

몇 해 전 일이다. 일산시(市)로부터 느닷없이 전화 연락이 왔다. 일산 기독교 공원묘지가 개발 예정지구로 편입됐으니, 이장(移葬)을 준비하라는 내용이었다. 불현듯 그곳에 묻히신 (친정) 외할머님께서 돌아가시기 직전 마지막 남긴 말씀이 떠올랐다. “장남이 날 찾아올지도 모르니 화장하지 말고 묻어달라”시던 당신의 소원 말이다.

외할머님은 딸 셋, 아들 둘을 두셨는데 불행히도 6·25 전쟁 중에 두 아들을 모두 잃으셨다. 장남은 전쟁 통에 흔적도 없이 자취를 감추었고, 막내는 학도병으로 나갔다 전사했다고 들었다. 딸네 집을 이집 저집 전전하시던 외할머님께서 돌아가시는 그 순간까지도 실종된 아드님을 기다리고 계셨을 줄이야.

지독한 시집살이에 고개를 절레절레 하셨던 외할머님은, 오로지 시집살이 안 해도 좋다는 이유만으로, 당신의 첫째 따님(필자의 어머니)을 이북에서 혈혈단신 혼자 내려온 아버지에게 시집 보내셨다. 결혼할 당시 남한 땅에 일가붙이라곤 육촌 형님 한 분뿐이셨던 아버지의 팔십 평생이 얼마나 외롭고 쓸쓸하셨을지, 우린 짐작조차 할 수 없으리라.

남한 땅에 홀로 내려와 그 누구의 도움도 없이 일가를 이루신 아버지께서는 KBS의 이산가족 상봉 프로그램이 온 국민을 눈물바다에 빠트리던 즈음, 예기치 않게 당신 이모님을 만나는 행운을 누리셨다. 내겐 이모할머니가 되시는 분께서 나를 보자마자 “우리 언니 똑 닮았네”하시던 표정이 지금도 잊혀지질 않는다.

아버지는 금강산 관광이 한창이던 시절, 온 가족의 간곡한 권유에도 불구하고 결코 따라나서지 않으셨다. 당신 고향인 강서 땅을 밟을 수 없을 바엔 금강산이나 설악산이나 마찬가지라시며 한사코 가족들 권유를 뿌리치셨다. 그랬던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기 1년여 전부터는 마음과 태도가 달라졌다. 행여 북에 두고 온 가족을 만날 수 있으려나, 간절하고도 애절한 마음을 굳이 감추지 않으셨고, 금강산이라도 올라가 고향땅을 바라보기라도 했으면 좋겠다며 눈시울을 붉히기도 하셨다. 혼자선 한 발자국도 떼지 못한 채 1년여 투병하시던 아버지는 결국, 고작 열일곱 나이에 두고 온 가족들을 가슴에 품은 채 조용히 눈을 감으셨다.

한국의 현대사 속에서 분단의 비극과 전쟁의 참상을 헤쳐 온 우리에게 이 정도 한(恨) 맺힌 이야기쯤이야 그리 새삼스러울 건 없다. 하지만 유달리 강한 가족주의를 전통으로 간직해온 우리네가 분단 70년에 이르기까지 이토록 오랜 세월을 이산(離散)의 아픔 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음은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니겠는지.

우리는 남북관계가 교착 상태에 빠질 때마다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이산가족 상봉만큼은 지속시켜 가야 한다고 북한을 압박해왔다. 하지만 지금까지 순수하게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이산가족 상봉이 성사된 적은 한 번도 없었던 것 같다. 북한은 자신들의 정치적 요구를 관철시키는 작업과 이산가족 상봉을 분리한 적이 없었다는 말이다. 아마도 이산가족 상봉이야말로 그 어떤 교류보다 정치성이 강한 이벤트임을 정확하게 간파한 탓일 게다.

1000만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에 성공했던 영화 ‘국제시장’에서도 주인공이 피란 당시 잡고 있던 손목을 놓아 잃어버린 줄 알았던 여동생을 수십 년 만에 다시 찾게 되는 감격스런 장면이 나온다. 영화는 영화인지라 딸은 엄마를 만나 한복을 곱게 차려 입고 절을 올리고, 몰라보게 달라진 모습의 남매는 눈물을 글썽이며 해후의 기쁨을 나눈다.

사실 필자는 영화에서는 들려주지 않는 그 다음 이야기가 궁금하다. 바로 그 이야기에 귀 기울일 때가 온 것 같다. 물론 이산의 아픔을 온 몸으로 겪어낸 1세대가 점차 사망하고 있는 상황이기에 이산가족 상봉은 결코 미루어선 안 될 과제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그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상봉 이후 가족들이 감내해야 하는 고통을 어루만져 주는 것 또한 만만치 않다는 사실일 것이다. “차라리 만나지 않으니만 못했다”는 솔직한 고백 속엔 더 이상 낭만화할 수만은 없는 이산가족 상봉의 냉혹한 현실이 자리하고 있음을 놓쳐서야 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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