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화장품 업계가 한국과 중국의 자유무역협정(FTA) 체결로 인해 '득'보다는 '실'이 많을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글로벌 3위 규모의 중국 화장품 시장이 열리면서 이 시장에 진출하는 국내 화장품 업체들의 주가가 급등하고 있는 상황과는 배치되는 의견이다.
특히 중국 현지 화장품 업체들의 급성장으로 화장품 업계에서도 '제2의 샤오미'가 등장하며 국내 화장품 업체들의 생존을 위협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에 따라 중국 시장 진출 호재에 따라 화장품주(株)에 '묻지마식 투자'를 한 투자자들의 주의가 요구되고 있다.
30일 한화투자증권에 따르면 지난해 6월 체결한 한중 FTA는 국내 화장품 업계에 많은 기대감을 불러일으켰다.
송유림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중국 화장품 시장은 전 세계에서 매출 3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성장률도 작년 기준 9.9%로 세계 화장품 시장의 평균 성장률 4.3%를 훨씬 웃돌고 있다"며 "또한 중국은 국내 화장품의 최대 수출 대상국임에도 불구하고 한국 화장품이 25조 원 규모의 중국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에 불과해 잠재력이 높이 평가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 같은 중국 화장품 시장에 대한 장밋빛 전망으로만 국내 화장품 상장사에 투자를 진행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지적이다. 한중 FTA에 따른 화장품 품목들에 대한 관세 철폐가 우리나라에 불리하게 이뤄졌기 때문이다.
중국은 우리나라 화장품 품목 14개에 대해 양허한 반면, 우리나라는 중국 화장품 품목 28개에 대해 양허했다. 다시 말해 관세 혜택을 받는 품목수 자체가 중국이 두 배 더 많은 것이다.
이에 더해 중국의 주요 화장품 대부분은 10년 뒤면 관세가 모두 철폐된다. 그러나 우리나라 화장품은 관세감축 폭이 크지 않고 관세철폐 대상에서 제외된 항목이 절반 이상이다. 중국에 대한 수출에서 가장 큰 비중(42.5%)을 차지하는 기초화장품의 경우 20%의 부분감축 혜택을 받아 현행 6.5%의 세율이 5년 뒤 5.2%로 낮아지는 정도에 불과하다.
중국 로컬 화장품 기업들이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다는 점도 국내 화장품 업계에는 불리하게 작용할 전망이다. 중국 상위 9개사는 지난 10년간 연평균 32%로 고속 성장하며 시장점유율을 2010년 9%에서 2014년 14%까지 확대했다. 우리나라 화장품 수출에서 중화권이 차지하는 비중은 절반 이상(중국 31%, 홍콩 21.9%)이어서 중국 로컬 기업들이 급속히 성장하면 우리나라 화장품 업체들이 직접적인 타격을 입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송 연구원은 "중국시장에서 중국 화장품이 외국산 화장품을 밀어내기 시작한다면 국내 화장품 업체들은 '내 집 지키기'에도 급급한 상황에 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상황이 전개된다면 중국 스마트폰 시장에서 벌어진 일들이 화장품 시장에서도 되풀이될 수 있다. 삼성전자는 중국 스마트폰 시장에 진출한 이후 점유율 1위에 오르는 등 지난해 1분기까지만 해도 승승장구했으나 올해 1분기 중국 스마트폰 업체 '샤오미'와 '화웨이'가 선전하며 점유율이 4위까지 밀려났다.
송 연구원은 "화장품 산업의 경우에는 아직 글로벌 화장품 브랜드들이 절대적인 우위를 차지하고 있지만, 이 산업에서 '제2의 샤오미'가 나타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한중 FTA로 인한 수혜가 기대에 못 미치는데다 장기적으로는 중국 로컬 업체들의 역공이 우려되면서 한화투자증권은 중국 화장품 시장에 대한 지나친 기대감을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내 화장품 업체들의 지나치게 높은 밸류에이션 또한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현재 한국 화장품 업종지수의 12개월 선행 주가수익비율(P/E)은 35배로 역사상 최고 수준이다. 중국 내 글로벌 업체들과 비교해봐도 부담스러운 수준이다. 특히 아모레퍼시픽의 P/E는 32배로 중국시장 점유율 상위 15위 이내 상장사들 가운데 가장 높다. 최근 3년간 아모레퍼시픽과 비슷한 이익 성장률을 보인 중국 로컬 업체 '상하이자화'도 P/E가 21배인 점을 감안하면 한국 화장품 업체들의 주가는 높게 형성됐다는 의견이다.
송 연구원은 "그동안 국내 화장품 업체는 해외 진출에 힘입어 크게 성장한 것이 사실"이라며 "그러나 투자자의 입장에서는 이제 국내 화장품 업계에 대한 낙관적 기대를 경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