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연 온라인국 모바일팀장
‘메르스보다 무능한 정부가 더 무섭다’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들린다. 미흡한 초동대처에 컨트롤 타워 부재, 관료주의적인 대응방식이 국민의 불안감을 키웠다. 지난달 20일 첫 확진환자가 발생한 지 18일이 지난 7일에야 관련 병원 명단 공개. 그마저도 우왕좌왕, 혼선을 빚는 모습이라니. ‘아몰랑’ 정부라는 조롱과 야유를 받는 이유다.
메르스보다 무서운 건 또 있다. 바로 SNS를 타고 돌아다니는 괴담과 유언비어다. 물론 메르스 괴담의 1차 유발자는 메르스를 첩보작전인 양 비밀에 부친 정부와 보건당국이다. 그렇다고 마냥 정부 탓만 할 수는 없다. 지금의 공포상태가 지속될수록 괴담과 유언비어는 독버섯처럼 우리 생활을 파고들어 파괴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 분명하다.
메르스와 관련된 출처불명의 주장들은 갈등과 불신, 공포를 증폭시켰다. ‘현재 선릉역 상황’이라며 보호복을 입은 대원들이 구급차 옆에 있는 사진이 돌아다녔고, 메르스와 관련없는 병원 이름이 거론되는가 하면 한국이 긴급재난 1호 상황이라는 등의 유언비어가 떠돌아다녔다. 미국과 관련된 음모설도 제각각 버전으로 돌아다닌다. ‘메르스는 주한미군이 만든 생화학무기’라거나 ‘오산 미군기지에 배달된 탄저균 때문에 메르스가 발생했다’, ‘메르스는 한국에 백신을 팔아먹기 위한 미국의 음모’ 등등이다. 확산세가 커진 일부 내용에 대해서는 국방부가 나서서 해명까지 했다.
유언비어의 기본법칙이라는 게 있다. 미국의 심리학자 올포트와 포스트맨이 2차대전 당시 루머를 연구하면서 내놓은 것으로 ‘R=I×A’로 정리된다. 이는 즉 유언비어(루머, Rumor)는 사안의 중요성(Importance)과 상황의 모호성(Ambiguity)에 비례해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메르스 사태에 견주어 본다면, 당장 나와 가족의 생명이 달려있는 ‘중대한’ 문제에 대해 정부의 지침이나 정보 공개가 없는 ‘불확실한’ 상황은 괴담의 토양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괴소문은 인터넷 공간이나 SNS를 타고 확산된다. 인간 행동양식 학자로 유명한 캐스 선스타인은 유언비어의 확산이 ‘폭포효과’와 ‘집단극단화 현상’을 동반한다고 설명한다. ‘폭포효과’란 자신이 아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떤 소문을 믿으면 자신도 그것을 믿게 된다는 것이다. 특히 아는 게 전혀 없는 주제와 관련된 내용에 대해서는 더욱 쉽게 받아들인다. “너, 그거 들었니?”에서 “그래, 너도 들었구나”, 그리고는 “긴가민가 했는데 진짜인가 보네”로 발전하는 식이다. 특히 SNS세상에 발을 들인 유언비어는 순식간에 많은 사람들이 받아들임에 따라 스스로 아주 강력해져서 뒤늦게 이를 접한 사람들은 그게 거짓이라고 해도 저항하기가 어렵게 된다.
‘집단 극단화’ 역시 유언비어를 유포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한다. 이는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모여 이야기를 나누면 이전보다 더 극단적인 생각을 갖게 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가리킨다. 자주 가는 인터넷 카페나 카톡방에서, 혹은 페친이나 트친의 무리속에서 유언비어는 알게 모르게 세력을 키워나간다는 얘기다.
유언비어의 생성과 확산의 라이프사이클에는 이와 같은 배경이 존재한다. 그리고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거친 악의적 소문들은 ‘신종 바이러스에 의한 급성호흡기증후군 메르스’를 ‘음모와 공포가 뒤범벅이 된 메르스’로 만들고 있다.
유언비어와 괴담의 생성자체를 막기 위해 신뢰를 회복해야 하는 정부의 역할은 두 말할 나위가 없다. 이와 함께 이를 소비하는 주체인 사회 구성원들의 태도도 달라져야 한다. 유언비어나 괴담의 매커니즘을 이해하고 무엇이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지키는 길인지 한번쯤 생각해봐야 한다. 우연히 받은 ‘메르스 지라시’를 무심코 퍼뜨리는 것은 ‘메르스를 메르스로 만드는’ 무서운 일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