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기현 은퇴에 왜 박지성이 생각날까 [오상민의 현장]

입력 2015-03-04 0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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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기현(왼쪽)이 3일 은퇴를 발표했다. 향후 거취는 성균관대학교 축구부 감독대행이다. 하지만 그의 은퇴시기와 방법은 레전드답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지난해 은퇴한 박지성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대목이다. (뉴시스)

스물세 살 청년의 발을 떠난 공이 이탈리아 골네트를 갈랐다. 거짓말 같은 동점골이다. 이 골은 지구 반대편 이탈리아를 울음바다로 만들었고, 한반도엔 세상에 없던 축구 열기를 일으켰다. 2002년 국제축구연맹(FIFA) 한ㆍ일 월드컵 한국과 이탈리아의 16강전에서 터진 설기현(36)의 드라마틱한 동점골 순간이다. 당시 설기현은 0-1로 뒤져 있던 후반 42분 한국 대표팀에 천금 같은 동점골을 안겼다. 바로 그 골이 월드컵 4강 신화의 밑거름이었다.

그리고 13년이 지났다. 당시 스물세 살 청년 설기현은 현재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를 경험한 몇 안 되는 현역 선수다. 올해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 준우승을 끝으로 국가대표에서 은퇴한 차두리(35ㆍ서울)를 비롯해 이천수(34ㆍ인천), 김남일(38ㆍ교토상가), 김병지(45), 현영민(36ㆍ이상 전남) 등 6명의 선수가 아직 그라운드에 남아 있다.

하지만 설기현의 플레이는 더 이상 볼 수 없게 됐다. 3일 갑작스런 은퇴를 발표했기 때문이다. 평소 지도자가 꿈이던 설기현은 최근 성균관대학교로부터 축구부 감독 제의를 받고 은퇴를 결심했다.

그러나 설기현의 은퇴 선언엔 개운치 않은 뒷맛이 남아 있다. 설기현의 소속팀 인천은 지난해 말 김봉길 감독의 해임 뒤 사령탑 선임에 난항을 겪었고, 재정 부족으로 인해 주축 선수 대부분이 이적하는 등 후폭풍이 잇따랐다. 어렵싸리 김도훈 신임 감독 체제로 새 출발했지만 시즌 개막을 앞두고 모두가 민감해진 상황이었다. 게다가 설기현은 팀 내 맏형으로 선수들의 정신적 지주였다.

설기현은 2000년 벨기에 로열 앤트워프에 입단하면서 일찌감치 유럽 무대를 경험했고, 2006년에는 레딩FC와 계약, 박지성(34ㆍ맨체스터 유나이티드)과 이영표(38ㆍ토트넘 홋스퍼)에 이어 한국인 세 번째 프리미어리거로 활약했다. 그리 화려하진 않지만 늘 성실한 플레이와 강철 같은 체력으로 신뢰를 쌓았다. 축구팬들은 그런 설기현을 좋아했다.

대표팀에서도 2002년과 2006년 두 차례 월드컵을 경험하며 한국 축구의 황금기를 이끌었다. 특히 2002년 한ㆍ일 월드컵 4강 신화의 주역으로서 이탈리아전 동점골은 13년이 지난 지금도 가슴 뭉클한 순간으로 기억되고 있다.

당연히 큰 박수를 받으며 떠나야할 그다. 하지만 시기적ㆍ방법적으로 개운치 못한 은퇴 선언이 자신의 화려한 축구인생을 퇴색케 한 건 아닌지 우려스럽다. 모든 일에는 시작과 과정과 끝이 존재한다. 시작이 반이라지만 시작과 과정이 화려해도 마무리가 깔끔하지 못하면 아니한 만 못한 경우가 많다. 물론 설기현만의 문제는 아니다.

조직생활에서 깔끔하지 못한 마무리로 여러 사람을 불편하게 하는 경우를 어렵지 않게 목격한다. 그래서 마무리야 말로 그 사람의 참된 인격이라 말한다.

설기현의 은퇴 발표는 제2인생 설계를 위해 어려운 선택이었음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지난해 고액 연봉을 받고도 기대 이하의 활약을 보인 설기현으로서는 올해야 말로 명예 회복이자 자신의 축구인생의 아름다운 마무리를 지을 수 있는 한해였다. 그것이 구단과 팬들을 위한 마지막 배려가 아니었을까.

지난해 고질적인 무릎 부상에도 불구하고 친정 PVC 아인트호벤에서 마지막까지 주전경쟁을 펼치며 명예롭게 은퇴한 박지성과 비교하지 않을 수 없다. 원 소속 구단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지난달 25일 박지성의 34번째 생일을 잊지 않고 공식 페이스북에 축하하는 메시지를 남겼다. 바로 그 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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