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값 낮춰 일반기업 취직… 증권사 담당자 없는 섹터 속출 문제
“죄송합니다. 현재 해당 섹터를 커버하고 있는 애널리스트가 없습니다.”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기업과 관련해 향후 주가 흐름에 대한 애널리스트의 의견을 묻기 위해 대형 증권사 리서치센터에 문의를 하자 돌아온 대답이었다. 업종 대표주라고 할 수 있는 종목이었음에도 담당하는 애널리스트가 없어 의견을 낼 수 없다는 답변에 당혹스러운 기분마저 들었다.
하지만 이같은 일이 여의도 증권가에서는 더 이상 드문 일이 아니라는 점이 더욱 놀라움을 자아내고 있다.
실제로 이투데이가 15개 증권사 리서치센터를 조사한 결과 17일 현재 한 증권사당 평균 3개 섹터가 공석인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중소형 증권사가 대형사보다 그 비율이 높았다.
◇구조조정으로 애널리스트 수 크게 감소… 중·소형사 극심 =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HMC투자증권이 보험·바이오·기계·정유·화학 업종을 담당하는 애널리스트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신영증권은 증권·보험·제약바이오·교육·건설·기계 등의 섹터가 비어 있었다.
KB투자증권은 섬유의복·통신·글로벌전략·자산배분·파생섹터가, SK증권은 금융·반도체·철강·패션섹터가, 교보증권은 통신·미디어섹터가, 메리츠종금증권은 통신섹터가 공석이었다.
중소형사들보다는 다소 나은 편이지만 상당수 대형사들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미래에셋증권은 항공·증권·보험·교육·지주업종을, NH투자증권은 디스플레이·통신·미디어/광고업종을, KDB대우증권은 교육·제지업종을, 유안타증권은 은행·카드·의류업종을, 현대증권은 엔터업종 등을 담당하는 애널리스트가 없었다.
이 외에도 대신증권, 한국투자증권, 하이투자증권 등도 상당수 섹터들이 비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비어 있는 섹터들이 속출하면서 증권사들이 발간하는 보고서의 양도 눈에 띄게 줄고 있다. 지난해 국내 증권사들이 발간한 보고서는 총 2만3355건으로 전년 대비 9.2% 감소한 것으로 조사됐다.
다양한 통로를 통해 정보를 확보할 수 있는 기관이나 외국인과 달리 증권사 보고서에 기댈 수밖에 없는 개인투자자들에게 이같은 현상은 큰 악재일 수밖에 없다.
증시 침체가 지속되면서 리서치센터가 구조조정 직격탄을 맞았음을 그대로 보여주는 셈이다. 실제로 지난달 말 기준 국내 64개 증권사(한국지점 포함)에 소속돼 활동 중인 애널리스트는 1160명으로 지난해 1월 초에 비해 12.2%나 줄었다.
◇갈 곳 잃은 애널리스트… “낮아진 몸 값에 일반기업으로 이동도” = 애널리스트들은 단순히 숫자가 줄어든 것만이 문제가 아니라고 말한다. 애널리스트의 위상이 축소된 점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한다.
과거 애널리스트는 증권사의 꽃이라 불리며 최고 연봉을 보장받았다. 하지만 업황 부진에 따른 경영환경 악화로 애널리스트의 연봉은 크게 줄어들었다. 또 지난해 CJ E&M 사태까지 겹치면서 애널리스트에 대한 신뢰도도 크게 하락했다.
이는 또 다시 애널리스트의 영향력 약화로 이어져 악순환의 고리를 만들었다. 이에 업계를 떠나는 애널리스트도 크게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증권업계 내에서의 업무 전환은 물론 일반기업으로의 이동도 눈에 띄게 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실제로 최근 유통업계 애널리스트들이 관련 업계로 대거 이동하는 일도 발생했다.
증권업계 한 관계자는 “유통업종을 커버하는 애널리스트들 4~5명이 CJ로 이직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애널리스트의 연봉이 낮아지다 보니 일반 기업에서의 수요가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또 다른 증권업계 관계자는 “실력있는 애널리스트들이 환경적 요인에 부딪혀 업계를 떠나는 것은 애널리스트에 대한 신뢰도 약화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며 “문제는 일부 증권사들이 이같은 현상에 대해 고민을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투자자에게 양질의 정보를 제공하는 것보다 기관투자가 등을 대상으로 하는 영업에만 집중하는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며 “좀 더 장기적인 안목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