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문가의 경제학] 수백년 이어온 부와 명예는 '교육의 힘'

입력 2015-02-16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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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명문가를 오랫동안 지켜봐 왔던 학자들은 존경받는 명문가의 비결로 하나같이 ‘교육’을 꼽는다. 가훈을 바탕으로 어린시절부터 시작된 가정교육이 명가를 탄생시키고, 집안을 세계 최고의 명문가 반열에 올릴 수 있었던 원천이라는 것. 지난 수백년 대(代)를 잇는 동안 세계적 명문가의 아버지들은 자녀들에게 충실한 멘토였다.

◇이건희 회장이 발렌베리 그룹을 방문한 이유 = 발렌베리가는 2003년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스웨덴의 발렌베리그룹을 방문하면서 국내 언론의 집중적인 주목을 받았다. 발렌베리가는 5대째 가업을 이어오면서도 사회적으로 무한한 존경을 받으며 기업 경영을 해오고 있는 세계 명문가 중의 하나다. 재계에서는 상속과 후계 문제로 고민하던 이 회장이 발렌베리가를 찾아 참고했다는 해석도 나온다.

1856년 발렌베리 전 회장의 증조부인 안드레 오스카 발렌베리가 설립한 은행(현재 SEB은행)에 뿌리를 둔 발렌베리그룹은 금융에서 건설, 기계, 전자까지 다방면으로 사업을 확장한 곳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더 유명한 것은 자녀들이 혹독한 시련을 겪으면서 자라도록 교육한다는 점이다. 해군장교 복무, 부모 도움 없는 명문대 졸업, 해외 유학, 국제적인 금융회사에서의 취업 경력, 폭넓은 인맥 네트워크 등은 필수적인 조건이다.

특히 후계자들 대부분 창업자인 안드레 발렌베리가 다녔던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장교로 복무하는 전통을 지켜왔다. 청소년 시절부터 험난한 바다 생활을 경험할 수 있고, 위기에 대처하는 판단력과 위기관리 능력, 호연지기를 기를 수 있기 때문이다. 바다로 나가 외국과의 교류를 활발히 해야 한다는 안드레의 가르침도 후계자들을 바다로 나가게 하는 데 한몫을 했다.

◇10세에 금주·금연 서약서… 근검절약 강조한 록펠러 가문 = 33세에 석유왕으로 불리며 백만장자가 된 존 데이비슨 록펠러는 유행병처럼 번지던 사치를 극도로 혐오했다. 외아들인 록펠러 2세에게 매주 많지 않은 돈을 주고서 용돈 기입장을 쓰도록 철저하게 교육했고, 아들이 열 살이 되던 해에 술과 담배를 멀리하겠다는 서약서까지 받았다.

록펠러 2세 역시 어려서부터 절약정신을 그대로 실천했다. 그의 집안에서는 쓸데없이 실내에 불을 훤히 켜놓는 법이 없었고, 음식 역시 남기지 않는 것이 철칙이었다. 록펠러 2세의 큰아들인 록펠러 3세는 전용 리무진 대신 집에서 30분 걸리는 출근길을 매일 걸어서 가는 걸 원칙으로 삼았다. 비가 올 때에만 차를 이용했는데, 그것도 값비싼 택시 대신 버스였다. 해외 출장을 갈 때에도 핫도그 하나와 우유 한 잔으로 점심을 해결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왕자의 난’ 없었던 로스차일드 가문 = 250년 넘게 금융업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은 로스차일드 가문은 창업자 마이어 암셀 로스차일드의 유언에 따라 형제 간의 우애를 가장 큰 덕목으로 삼고 있다. 마이어 암셀은 ‘화살 하나를 부러뜨리는 건 쉽지만 열두 개의 화살 뭉치를 부러뜨리는 건 쉽지 않다’는 교훈을 늘 강조했다.

이에 따라 로스차일드의 후손들은 가족 구성원은 반드시 서로 협력하고 사랑하며, 아귀다툼을 하지 않는다, 공동출자 경영자, 이사장 등 가족은행의 중요한 직책은 모두 로스차일드 가문의 직계 남성이 담당한다, 로스차일드 가문의 외척과 그 후손은 공동출자 경영자가 될 수 없다 등의 규칙을 지켜왔다.

재산 세습 과정에서 형제간의 다툼이 생길 것을 미리 우려한 조치였다. 국내외 대기업 오너가의 재산 상속 때에도 재산을 놓고 다투는 이른바 ‘왕자의 난’이 빚어지곤 한다. 로스차일드 가문은 이를 미리 예견하고 재산 때문에 형제가 다퉈 가문과 가업이 공중분해되는 것을 심히 우려했던 것으로 보인다. 마이어 암셀 창업자는 늘 형제간의 우애와 함께 가족경영의 중요성을 강조했고, 덕분에 로스차일드가는 2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가문을 유지할 수 있었다.

◇21세기 명문가로 떠오른 빌 게이츠가 = 마이크로소프트와 함께 유명해진 빌 게이츠 가문은 앞서 언급된 발렌베리, 록펠러, 로스차일드 가문의 교육철학과 가훈을 종합한 새로운 명문가로 평가되고 있다.

빌 게이츠 2세는 어려운 가정 환경 탓에 스스로 학비를 벌어 대학을 다녔고, 대학 졸업 후 로스쿨까지 마치고 변호사로 활약하며 성공했다. 이미 40세에 백만장자로 변신했지만, 자신의 재산은 쳐다보지도 말라고 자녀들에게 귀에 못이 박히도록 강조했다. 그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아들에게 많은 재산을 물려줬다면 아들은 아마 마이크로소프트를 설립하지 못했을 것이고, 부유한 환경에서 자랐다면 의욕적으로 사업에 매진하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마이크로소프트를 만든 빌 게이츠 3세 역시 집안의 가르침대로 낭비하지 않는 생활을 고수했다. 자가용 비행기 한 대 없고, 여행을 할 때도 1등석을 타지 않는다. 또 아버지의 가르침대로 자식들에게 재산을 물려주지 않는다는 원칙을 이미 전 세계 언론을 통해 밝히기도 했다. 그는 자기 재산 대부분을 자선단체 ‘빌 앤드 멜린다 게이츠 재단’에 기부했다. 또 마이크로스프트의 경영에서 손을 뗀 뒤에도 상속세 폐지 반대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부의 대물림보다 열심히 노력하는 정신과 창의적인 생각을 강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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