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엎친데 덮친 격” 현장 성토
13억 중국 시장을 공략하는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됐던 한·중 FTA가 타결됐지만, 국내 제조업 경쟁력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란 불만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섬유와 철강 업종 현장에서는 이번 FTA 타결로 대 중국 수출 전선에 먹구름이 끼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이들 업종은 한·중 FTA 타결 이전부터 중국의 저가 제품 공세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중국은 국내 섬유 산업 최대 교역국이다. 무역협회에 따르면 올해 1~9월 대중국 무역에서 섬유제품 수출은 6억7000만 달러, 수입은 7억3000만 달러로 무역수지 적자를 기록 중이다. 이는 중국의 섬유 제품 자급률이 빠르게 상승하면서 중국 내 섬유류 수입 수요는 감소한 반면, 가격경쟁력을 확보한 중국 범용 섬유제품의 국내 유입이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의류용 폴리에스터 직물을 생산·가공해 수출하는 A사는 FTA 타결로 가격 경쟁력에서 어려움이 더 커질 것으로 걱정하고 있다. 이 회사 관계자는 “한국산과 중국산은 20~30%가량 가격 차이가 나는데 FTA 이후 이러한 차이가 더욱 커질 것”이라며 “업계의 다른 관계자들을 만나보더라도 FTA 타결을 반기거나 하는 사람은 없다”고 말했다. 한국 제품은 인건비 등 모든 면에서 가격 경쟁력이 떨어지고 품질 역시 중국 제품이 한국산을 어느 정도 따라온 상태라는 설명이다. 이어 그는 “섬유업계는 대기업이 아닌 중소 규모가 많아 연구개발(R&D) 투자 여력도 넉넉지 않다”고 토로했다.
의료용 면직물과 원사를 제작해 수출하는 B사 역시 중국산 제품이 국내 섬유업계를 잠식하는 상황에서 FTA가 타결된 것에 대해 어려워진 상태가 더욱 악화됐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국내 내수 시장은 이미 중국산에 절반 이상 잠식돼 있다”며 “마진이 남는 게 없으니까 대부분의 섬유 업체들이 중국으로 수출하는 것을 꺼리고 있다”고 얘기했다. 그는 “여기에 한·중FTA까지 타결됐으니 이미 어려운 상황에서 더 어려워졌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아울러 고사 직전에 처한 국내 섬유업계의 위기도 전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내수 사장에서는 가격경쟁력에서 상대가 안되는 만큼 수출을 해야 하는데, 저가 시장은 중국과 인도 등의 저가 섬유에 밀리고, 고가는 이탈리아, 프랑스, 터키 등 선진국에 밀리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철강업계도 한·중 FTA가 자국 철강산업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란 우려감이 팽배하다.
국내 철강 시장은 현재 중국산 철강재에 빠르게 잠식당하고 있다. 올 들어 11월까지 중국산 철강재 수입량은 1228만3000톤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5.7%나 늘었다. 이는 최근까지 사상 최대 규모였던 지난 2008년 1431만톤에 육박한 수준이어서 올 연말까지 사상 최대 기록을 경신할 전망이다. 중국산의 국내 시장 비중도 빠른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올해 10월 기준 중국산의 국내 명목소비 대비 점유율은 전년보다 7%포인트 증가한 25.3%를 기록했다.
이 때문에 한중 FTA가 발효돼 중국산 철강재에 물리는 관세가 철폐되면 국내 중소 철강업체는 살아남기 어려울 것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다. 우리나라 정부는 현재 합금철, 주단강, 주철관 등 일부 중국산 철강재에 5~8% 관세를 물리고 있다.
국산 철강재의 중국 수출 증가 기대도 높지 않다. 중국 정부는 한국산 철강재에 3~20%의 관세를 물리고 있다. 품목별로는 선철 8%, 합금철 11%, 중후판 17%, H형강 14% 등이다. 중국의 철강 생산량은 한국의 11배에 이르는 7억8000만톤에 달할 정도로 철강 생산이 과잉되어 있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한국산 철강재가 중국에서 가격 경쟁력을 갖추기는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더욱이 한국 철강사가 강점을 가진 고부가가치 제품인 냉연합금강판은 초민감 품목으로 지정, 양허 대상에서 제외됐다. 자동차용 강판으로 쓰이는 냉연합금강판이 제외되면 사실상 중국에 수출할 수 있는 철강재가 많지 않다. 철강업계에서 한중 FTA의 실효성을 제기하는 대목이다.
홍정의 한국철강협회 조사통상실 팀장은 “중국에서 우리의 수출 전략 품목을 양허 대상에서 제외한 것은 자국의 기술력을 보호하기 위한 차원으로 해석된다”며 “가서명이 이뤄지고 나서 구체적인 사항이 공개되면 다시 전략을 짜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