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률 3% 훌쩍 넘은 ‘미생’의 힘은 어디 있나 [이꽃들의 36.5℃]

입력 2014-10-27 0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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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방송된 tvN 드라마 ‘미생’(사진=tvN 방송화면 캡처)

“‘은교’를 오독할 거라면 차라리 잊어주세요. 늙어가는 노인의 슬픔, 그렇지만 그 시간에 순응하고 싶지 않은 반역의 마음이 담긴 소설이란 걸, 독자들은 알 것입니다.”

한 인터뷰에서 소설가 박범신의 전언이다. 그의 소설 ‘은교’는 2012년 박해일 주연의 동명의 영화로 각색돼 선풍적인 인기를 증폭시켰다. 영화가 화제를 몰자, 이와 더불어 방송을 통한 온갖 패러디물은 작품이 담아낸 메타포를 음미하게 만들기보다, 왜곡된 이미지를 확대 재생산시켰다.

실제로 원작 콘텐츠를 바탕으로 장르와 매체를 옮겨오는 일은 신중함을 요한다. 최근 웹툰의 드라마 각색 바람이 불고 있는 가운데, 성공적인 사례가 눈길을 끈다. 바로 tvN 드라마 ‘미생’이다.

윤태호 작가의 웹툰 ‘미생’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는 프로 바둑 기사만을 꿈꾸던 주인공 장그래(임시완)가 이에 실패하고 갑작스럽게 종합상사에 입사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렸다. 치열한 전쟁터와 같은 직장인의 삶과 애환을 바둑에 빗대어 진중한 시선으로 표현했다.

의학드라마라면, 병원에서의 사랑, 법정드라라면 변호사와의 사랑 등 꼭 빼놓을 수 없는 로맨스가 주된 요소를 이루는 국내 드라마 세태에서 ‘미생’은 묵직한 소재만으로 차별점을 두고 있다. 작품성과 별도로 시청자의 외면을 받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몰입도 있게 끌어낸 ‘미생’의 힘은 바로 연출력에 있다.

김원석 PD는 기자간담회에서 “타자를 치는 소리와 모습도 가까이 들여다보면 굉장히 극적이다. 오히려 밀접하게 봄으로써 전달하는 울림을 강화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직장에서 벌어지는 갖은 상황과 인물의 갈등을 내밀한 눈으로 꿰뚫겠다는 의도다.

이는 적중했다. 25일 드라마 ‘미생’은 시청률 상승 곡선을 그리다 4회 만에 시청률 3%(닐슨 코리아 제공, 유료플랫폼 기준)를 넘기며 화제를 입증했다. 시청자들은 어설프지만 점차 자신만의 강단으로 풍파를 겪어내는 주인공에 이입하는가 하면, 각 인물들이 내세우는 저마다의 고군분투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본질을 훼손하지 않으려는 김원석 PD의 태도는 원작자 윤태호와 첫 만남에서도 드러났다. 다큐멘터리 ‘미생의 밤’에서 윤태호 작가는 드라마 ‘미생’의 탄생이 지상파가 아닌 케이블 채널 tvN과 성사될 수 있었던 배경에 대해 김원석 PD를 빌어 설명했다.

“실제로 지상파에서 찾아오셨던 분들은 앉자마자 하는 이야기가 ‘러브라인 안 나오면 안 됩니다’라는 것이었다. 저는 ‘러브라인이 나오느냐, 안 나오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러브라인이 나오면 그만큼 이야기가 변질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김원석 PD님이 오셔서 가장 먼저 약속하신 부분은 ‘전형적인 러브라인은 없다’였다. 그 부분이 가장 신뢰 깊었다.”

이제 4회 방송된 ‘미생’은 총 20부작 가운데 1/5만이 시청자와 만났다. 출판사 위즈덤하우스에 따르면 원작 만화 ‘미생’은 방송 직후 주문이 쇄도해 100만부 돌파를 눈 앞에 두고 있는 상황이다. 높은 사랑을 받아온 원작으로 인한 각색에 대한 우려를 딛고, 출발한 드라마다. 그만큼 ‘바둑판 위에 의미 없는 돌 없다’는 작품 속 명대사처럼 ‘장면 하나 버릴 게 없다’는 시청자의 반응을 이끌어낸 촘촘한 연출이 호평 속에 막을 내릴 그 순간까지 이어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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