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비용·공사기간 확보 못하면 고위험 수주 신중
건설사, 원격 타워크레인·모듈러·시공로봇 현장 적용
철강·조선·물류도 자동화…검증 기술 확산 관건

산업계에 긴장과 불만이 교차하고 있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최고경영자(CEO)와 임원들이 직접 현장을 찾고 안전조직과 설비 투자를 늘리는 등 안전관리에 총력을 기울여 왔지만 규제가 한층 강화되기 때문이다. 안전관리 부담이 현장을 넘어 수주와 사업 선택까지 옥죌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26일 산업계에 따르면 주요 건설사들은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최고경영자(CEO)와 최고안전책임자(CSO)가 현장을 직접 점검하는 체계를 운영해 왔다. 본사 안전조직을 확대하고 현장별 위험요인을 사전에 확인하는 절차도 강화했다.
이런 가운데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으로 영업이익과 연동한 과징금 부담이 더해졌다. 문제는 영업이익과 연동한 과징금의 추가 부담을 공사비와 공사 기간에 반영하기 쉽지 않다는 점이다. 저가 수주 경쟁 속에서 안전인력과 장비를 늘리면 수익성이 떨어지고 관련 비용을 반영해 입찰가를 높이면 수주 경쟁에서 밀릴 수 있어서다. 과징금 부과 가능성까지 더해지면서 사고 위험이 크고 수익성이 낮은 사업을 이전과 같은 조건으로 맡기는 어려워졌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기업의 책임을 강화하는 취지는 이해하지만 낮은 가격과 빠른 공사 기간만 요구하는 구조에서는 안전관리 비용을 충분히 사용하기 어렵다”며 “적정 공사비와 충분한 공사 기간이 보장돼야 지금보다 안전관리에 더 많은 여력을 확보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현재 현장에선 사람을 위험구역과 분리하려는 시도는 이미 진행 중이다. 현대건설은 올해 1월 경기 과천 ‘디에이치 아델스타’ 현장에 원격제어 타워크레인을 도입했다. 약 50m 높이의 장비에 설치된 카메라 9대의 영상을 보며 운전원이 지상 조종실에서 크레인을 운용한다. 높은 조종석을 오르내리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추락 위험과 신체적 부담을 줄이는 방식이다.
공장에서 구조물과 설비를 미리 제작한 뒤 현장에서 조립하는 모듈러 공법은 공사현장에서 이뤄지는 고위험 작업 자체를 줄인다. GS건설은 승강기 프레임과 주요 부품을 공장에서 조립하는 모듈러 엘리베이터를 개발해 시흥거모 A-1BL 공공주택에 시범 적용할 예정이다. 회사는 현장 고소작업을 최대 90%, 설치 기간을 최대 80% 줄일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위험공정을 기계에 맡기는 기술도 실제 공사에 들어가고 있다. 삼성물산은 내화뿜칠과 드릴 타공, 철골 볼트 체결에 시공로봇을 활용해 왔다. 자율주행 자재 운반 로봇과 고층부 살수 드론은 현장 적용 가능성을 검증하고 있다. 삼성물산 관계자는 “현장 위험요인을 선제적으로 발굴·제거하고 안전시설과 관리체계를 지속해서 고도화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고온과 중량물 작업이 많은 생산현장에서는 무인화 범위가 넓어지고 있다. 포스코와 포스코DX는 광양제철소 아연도금 공정에서 사람이 고온의 용기 주변에서 하던 이물질 제거 작업을 영상분석 AI가 적용된 로봇으로 대체했다. 삼성중공업은 올해 3월 경남 함안에 ‘파이프 로보팹’을 준공해 배관 물류부터 가공·계측·정렬·용접까지 자동화했다. 연간 약 10만 개의 배관 스풀을 생산하면서 작업자의 위험 노출도 줄이는 구조다.
유통·물류업계는 반복적인 운반·포장 작업과 작업자 동선을 바꾸고 있다. 쿠팡은 무인운반로봇(AGV)과 무인지게차, 디팔레타이징 로봇을 물류센터에 투입해 사람과 장비의 동선을 분리하고 무거운 상품을 옮기는 부담을 줄였다. 컬리는 AI 기반 폐쇄회로(CC)TV로 위험요인을 사전에 감지하는 체계를 구축했다. 오뚜기는 울산 삼남 글로벌 로지스틱스 센터에 창고관리시스템(WMS)과 창고제어시스템(WCS)을 적용해 입출고와 물류 흐름을 통합 관리하고 있다.
업계에선 법 시행 이후 사고 위험이 큰 공정부터 검증된 로봇·원격조종 기술의 적용 범위를 넓히고 자동화가 어려운 작업은 인력과 안전관리체계가 보강될 것으로 보고 있다. 당장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기보다 이미 확보한 장비와 공법을 실제 현장에 얼마나 빠르게 확산하느냐가 대응의 관건이 될 전망이다.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로봇 도입과 현장 자동화는 법 개정 이전부터 중장기적으로 추진해 온 부분”이라며 “실제 현장에 적용하기까지 시간이 필요한 만큼 자동화할 수 있는 공정부터 단계적으로 확대하고 기존 안전관리체계도 함께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