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규보다 단골 붙잡기…제품 형태 바꿔 새 수요 공략
AI 결과물 넘칠수록 인간의 판단·안목·실행력 부각

김난도 서울대 소비자학과 명예교수는 30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트렌드 코리아 2027’ 출간 기자간담회에서 AI의 현재를 이같이 짚었다. AI를 쓰는 일이 자연스러워진 만큼 기술 자체보다 AI가 개인과 조직, 시장을 어떻게 바꾸고 있는지를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2027년 10대 소비트렌드는 △권태사회 △라이프 ROI △폼팩터 시프트 △해봄경제 △저장인류 △바이브 워킹 △리:텐션 전략 △휴먼엣지 △하프시그널 △안목자본이다. 개인의 삶과 사고방식부터 조직의 일하는 방식, 기업의 고객·제품 전략, AI 시대에 요구되는 인간의 역량까지 변화의 범위를 나눠 담았다.
김 교수가 첫 번째로 꼽은 ‘권태사회’는 자극이 넘치지만 정작 삶에서는 재미와 의미를 찾기 어려워진 현실을 담았다. 과거 자극이 부족해 생겼던 ‘결핍형 권태’와 달리 할 일과 즐길 거리가 넘치는 가운데 찾아오는 ‘과잉형 권태’다. 김 교수는 “권태를 느끼면서도 권태를 느끼는 시간이 부족한 역설적인 시대를 보내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시간의 여백을 의미 있는 경험으로 채우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라이프 ROI(Return On Investment)’는 소비뿐 아니라 가족과 인간관계, 직장생활과 인생 설계에서도 투입한 시간과 비용에 견줘 돌아오는 결과를 계산하는 흐름을 가리킨다. 시간과 관계까지 수익률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이다.
반대로 새로운 일을 직접 시도하는 문턱은 낮아졌다. ‘해봄경제’는 생성형 AI와 3D 프린터 등 기술을 활용해 아이디어를 먼저 실행하고 시행착오를 거치며 결과를 발전시키는 흐름이다. 김 교수는 “일단 해보고, 실행에서 배우며, 결과물을 다시 고쳐가며, 새로운 가치와 기회를 창출하는 시대가 열렸다”며 “과거엔 완벽해질 때까지 준비를 했다면, 지금은 일단 빨리 해보는 것이 중요해졌다”고 말했다.
AI를 업무에 도입하는 조직에는 ‘바이브 워킹’이 제시됐다. AI 사용량을 늘리는 것 자체가 아니라 사람과 AI가 하나의 흐름에서 움직일 수 있도록 업무 구조를 다시 짜는 개념이다. AI가 사람의 업무 맥락과 고유한 리듬을 읽고 자연스럽게 협업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초점을 맞춘다.
AI가 결과물을 만드는 역할을 더 많이 맡을수록 사람에게 요구되는 역할도 달라진다. ‘휴먼엣지’는 결과가 만들어진 과정에서 사람이 무엇을 경험하고 선택했는지, 어떤 판단을 내렸고 어디까지 책임졌는지를 가치의 영역으로 끌어들인다. 김 교수는 “가장 인간적인 요소들이 가장 중요해지는 시대가 된 것 같다”며 “어떻게 하면 인간의 흔적을 남길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AI의 결과물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 맥락에 맞는지 검증하고 무엇을 취하고 버릴지 결정하는 것도 사람의 몫이다. AI가 효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작업은 활용하면서 최종적인 판단과 책임에서 인간의 역할을 찾아야 한다는 의미다.
‘안목자본’도 이와 맞닿아 있다. 같은 것을 접하고도 남들이 지나친 가치를 발견하는 능력을 하나의 자본으로 바라본다. AI로 결과물을 만드는 일이 쉬워질수록 만들어내는 능력만큼 무엇을 선택하고 가치를 부여할지 판단하는 눈이 중요해진다는 설명이다.

기업의 고객·제품 전략에도 변화가 예상된다. ‘리:텐션 전략’은 새로운 고객을 계속 확보하는 데 힘을 쏟기보다 이미 관계를 맺은 고객이 다시 찾고 오래 머물 이유를 만드는 데 초점을 둔다. 김 교수는 “경쟁의 무게중심을 고객 획득에서 고객 유지로 전환해야 한다”고 말했다.
‘폼팩터 시프트’는 제품의 성능을 끌어올리는 기존 경쟁에서 벗어나 형태와 쓰는 방식을 바꾸는 흐름이다. 씹어 쓰는 알약 치약, 고체 샴푸, 코인 육수, 패치형 비타민, 이동형 TV ‘스탠바이미’ 등이 사례로 제시됐다. 외형을 새롭게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형태의 변화가 소비자에게 새로운 가치와 효용, 경험을 제공하는지가 관건이다.
이 밖에 회의와 수업부터 장소, 음식, 대화, 운동까지 일상의 기록을 우선 남겨두는 ‘저장인류’, 갱년기를 인생의 반환점에서 만나는 신호로 바라보는 ‘하프시그널’도 주요 흐름으로 꼽혔다. 하프시그널은 갱년기를 개인이 감추거나 견디는 문제에서 벗어나 적극적으로 정보를 찾고 관리하는 변화에도 주목한다.
10개 키워드를 아우르는 2027년 슬로건은 ‘알파 시프(ALPHA SHEEP)’이다. 2027년 띠 동물인 양에 최초·시작을 뜻하는 알파를 붙였다. 집단의 흐름에 자신을 맡기기보다 각자의 생각을 실제 행동으로 옮기며 먼저 변화를 시도하자는 뜻을 담았다.
김 교수는 “자신의 안목으로 가능성을 먼저 실천하는 그런 양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AI가 삶과 일의 기반으로 들어온 상황에서 무엇을 선택하고 판단할지, 기술이 만든 결과에 어떤 인간의 흔적을 더할지, 생각을 어떻게 실제 시도로 연결할지가 2027년을 관통하는 과제로 제시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