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험사에 좋은 보험과 소비자에게 좋은 보험은 같은 보험일까. 과거에는 많이 팔린 보험이 좋은 실적이었다면 이제는 계약에서 얼마나 많은 이익을 기대할 수 있는지가 중요해졌다. 보험사의 성적표가 달라지면서 ‘좋은 계약’의 기준도 바뀌고 있다.
최근 알아본 질병보험 통계에는 이런 변화를 엿볼 수 있는 숫자가 있었다. 올해 상반기 손해보험사의 질병보험 신계약은 208만4771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0.8% 줄었다. 반면 신계약 가입금액은 58조6096억원으로 29% 늘었다. 계약은 줄었지만 가입금액은 오히려 커진 것이다.
이러한 현상에 대한 업계의 답은 ‘수익성’이었다. 계약 건수를 늘리기 위한 매출 경쟁보다 보험계약마진(CSM)을 비롯한 수익성 지표를 중심으로 판매 전략을 짜고 있다는 설명이다. 한때 보험사의 영업력을 보여주던 ‘얼마나 많이 팔았느냐’의 자리를 ‘얼마나 남길 수 있느냐’가 대신하고 있는 셈이다.
CSM은 보험계약에서 앞으로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는 미실현 이익이다. 새 회계제도인 IFRS17 도입 이후 보험사의 미래 수익성을 가늠하는 주요 지표로 자리 잡았다. 보험사 입장에서는 계약 숫자만 늘리는 것보다 수익성이 높은 계약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해졌다.
보험사가 수익성을 따지는 것 자체는 당연하다. 보험은 짧게는 수년, 길게는 수십 년에 걸쳐 보험금 지급을 약속하는 사업이다. 안정적으로 이익을 내야 그 약속도 지속할 수 있다. 외형을 키우기 위해 출혈 경쟁을 벌이는 것이 바람직한 모습도 아니다.
다만 보험사의 계산이 정교해질수록 한 가지 질문은 남는다. 보험사가 더 많은 이익을 기대할 수 있는 계약과 소비자에게 더 필요한 계약이 항상 일치하느냐는 것이다.
보험사는 상품을 팔면서 CSM을 계산하지만 소비자는 CSM을 보고 보험에 가입하지 않는다. 매달 얼마를 내야 하는지, 어떤 위험을 얼마까지 보장받을 수 있는지, 자신에게 필요한 보장인지를 따진다. 같은 보험계약을 두고 보험사는 미래의 이익을, 소비자는 미래의 위험에 대비할 안전망을 보는 셈이다.
보험사의 성적표는 이미 달라졌다. 이제 많이 파는 것보다 잘 파는 것이 중요해졌다. 그렇다면 '잘 판 보험'을 판단하는 기준도 수익성 하나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보험사에 좋은 계약과 소비자에게 좋은 계약이 같은 방향을 향할 때 수익성 중심의 변화도 설득력을 얻을 수 있다. 보험사에 많이 남는 보험이 아니라, 보험사에도 남고 소비자에게도 필요한 보험. '잘 판 보험'이 '좋은 보험'이 되기 위한 조건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