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체 기준 7년→3년·채무 한도 5000만→1억원
채무구제 외연 확대에 성실상환자 형평성 논란

정부가 코로나19 피해 소상공인의 빚을 최대 80% 이상 깎아주는 별도 채무조정에 나선다. 기존 새도약기금보다 연체기간은 7년에서 약 3년으로 줄이고 채무 한도는 5000만원에서 1억원으로 늘리는 방안이다. 장기연체자의 재기를 돕는다는 취지지만, 원리금을 꼬박꼬박 갚은 소상공인과의 부담 격차가 커지면서 “빚을 성실하게 갚은 사람만 손해 보는 것 아니냐”는 형평성 논란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특히 새출발기금과 새도약기금, 장기연체채권 특별소각에 이어 다시 지원 문턱을 낮춘 프로그램이 등장하면서 정부의 채무구제 대상이 계속 넓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코로나19로 누적된 부채를 정리해 취약차주의 경제활동 복귀를 도와야 한다는 필요성과 반복적인 원금 감면이 도덕적 해이를 키울 수 있다는 지적이 맞서는 모양새다.
11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내년 예산안에 ‘코로나 피해 소상공인 장기연체채권 특별채무조정’ 사업 예산 5000억원을 편성했다. 현재 국회 예산심의 과정에서 구체적인 지원 대상과 감면 기준을 논의하고 있다.
당국은 2023년 6월 이전 연체가 발생해 현재까지 이어진 1억원 미만 무담보채권을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전체 대상 채권은 약 5조4000억원으로 추산된다. 원금 감면율도 최소 80% 이상으로 설정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기존 채무조정 프로그램보다 지원 문턱은 크게 낮아진다. 새도약기금은 7년 이상 연체된 5000만원 이하 개인 무담보채권을 대상으로 하지만, 이번 프로그램은 연체기간을 약 3년으로 줄이고 채무액 기준은 1억원 미만으로 확대하는 방안이다. 새출발기금이 일반 부실차주의 원금을 최대 80% 감면하는 것과 비교해도 감면 강도가 낮지 않다.
정부는 코로나19 이후 누적된 소상공인 부채를 별도 지원의 근거로 들고 있다.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2020~2023년 코로나 기간 공급된 은행권·정책금융 개인사업자 대출 358조7000억원 가운데 미상환 잔액은 154조7000억원으로 43.1%에 달한다. 이 가운데 3개월 이상 장기연체 비율은 4.1% 수준이다.
다만 지원 범위가 넓어질수록 빚을 정상적으로 갚아온 소상공인과의 형평성 문제도 불거질 수밖에 없다. 같은 시기에 비슷한 규모의 대출을 받은 차주라도 정상 상환 여부에 따라 최종 부담액이 크게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2022년 1월 소상공인 A씨와 B씨가 각각 8000만원을 연 5% 금리, 5년 만기 원리금균등상환 방식으로 빌렸다고 가정하면 월 상환액은 약 151만원이다. A씨가 매달 빚을 갚았다면 현재까지 낸 원리금은 8000만원을 웃돈다.
반면 B씨가 2023년 5월부터 연체했다면 당시 남은 원금은 약 6183만원이다. 이 가운데 80%를 감면받을 경우 약 4946만원이 줄어 상환 원금은 1237만원가량으로 낮아진다. 실제 감면 규모는 차주의 소득·재산과 상환능력, 최종 제도 설계에 따라 달라지지만 성실상환자의 상대적 박탈감이 커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채무구제 정책의 외연이 계속 확대되고 있다는 점도 논란거리다. 새출발기금은 부실차주에 대한 원금 감면을, 새도약기금은 장기연체채권 매입·소각과 채무조정을 시행하고 있다.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도 지난달 20년 이상 연체되고 최근 7년 동안 상환 이력이 없는 채권 3조1000억원을 특별 소각해 약 4만4000명의 채무 부담을 덜었다.
여기에 연체기간을 3년 수준까지 낮춘 별도 프로그램이 추가되면 예외적인 장기연체자 지원에서 출발한 채무구제 정책이 점차 단기 연체자까지 확대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향후 더 짧은 기간 연체한 차주들이 추가 지원을 요구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중복·반복 지원 여부도 쟁점이다. 과거 정책 채무조정은 한 차례 적용하는 것이 원칙이었지만 새도약기금은 희망모아·한마음·국민행복기금 등 이전 채무조정 프로그램 관련 채권을 매입 대상에서 일률적으로 제외하지 않는다. 금융당국은 이번 특별채무조정에서도 기존 지원 이력이 있는 차주를 어떻게 처리할지 검토하고 있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이미 새도약기금 등을 통해 장기연체자 지원이 이뤄지는 상황에서 소상공인만 별도 프로그램으로 지원 범위를 넓히면 성실상환자와의 형평성 문제가 생길 수 있다”며 “중복지원이나 추가적인 지원 확대 가능성도 살펴봐야 한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