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K투자증권은 정유업종에 대해 최근 정제마진 강세에서 더 중요하게 봐야 할 것은 마진의 절대 수준보다 제품 재고 흐름이라고 4일 밝혔다.
이동욱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미국 정유설비 가동률은 8월 마지막 주 98.0%까지 올라 2018년 8월 이후 최고 수준을 기록했지만 휘발유 재고는 오히려 감소했다”며 “설비를 사실상 최대 수준으로 가동하고 있는데도 재고가 쌓이지 않고 있다는 점이 이번 정제마진 강세의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미국 정유사들은 원유 투입량을 늘리고 가동률을 끌어올렸지만 제품 재고 확충에는 실패했다. 통상 이 정도 가동률이면 제품 재고가 빠르게 늘어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미국 휘발유 재고는 전주 대비 120만배럴 감소한 2억570만배럴에 그쳤다. 중간유분 역시 전체 재고가 소폭 늘었지만 동부지역 재고는 사상 최저 수준까지 떨어졌다.
유럽도 비슷한 흐름이다. 휘발유 크랙은 배럴당 62.07달러로 2022년 고점에 근접했고, 경유 크랙도 최근 78.91달러까지 상승했다. 휘발유 재고는 75만2000톤으로 2021년 9월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이 연구원은 “현재의 제품 부족은 정유사들이 설비를 덜 돌린 결과가 아니다”라며 “단순히 지정학적 리스크로 마진이 일시적으로 높아졌다고 보기 어려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말했다.
공급 측 대응도 과거보다 더디다는 분석이다. 러시아와 중동의 정유설비 차질이 지속되는 가운데 유럽에서는 라인강 저수위가 제품 운송을 제약하고 있다. 미국은 이미 가동률이 98%에 달해 추가 생산 여력이 크지 않고, 9월부터는 정기보수 시즌에 들어간다.
정제마진이 높은 만큼 정유사들이 보수를 일부 늦출 가능성은 있다. 다만 높은 부하로 장기간 운전한 설비의 정비를 계속 미루기는 어렵다는 판단이다. 예정대로 보수에 들어가면 공급이 줄고, 정비를 늦추면 계획되지 않은 정지 위험이 높아질 수 있다. 이 연구원은 “어느 쪽이든 공급 여건이 빠르게 완화되기 쉽지 않다”며 “이번 사이클의 차이는 수요가 특별히 강하다는 데 있기보다 높은 가격에도 공급이 충분히 따라오지 못하고 있다는 데 있다”고 분석했다.
중국의 석유제품 수출 확대도 변수지만 과거처럼 수급을 빠르게 안정시키기는 어렵다고 봤다. 러시아산 저가 원유 확보 경쟁이 심해졌고 이란산 원유 조달 여건도 악화되면서 독립계 정유사들의 원료 경쟁력이 낮아졌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제품 가격이 오르면 중국 가동률과 수출이 늘어나면서 수급이 빠르게 균형을 찾았다. 그러나 지금은 중국의 공급 조정 기능이 이전만큼 빠르게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평가다.
IBK투자증권은 정유업종에서 이제 중요한 변수는 정제마진의 추가 상승 폭이 아니라 강세 지속기간이라고 짚었다. 휘발유와 경유 크랙이 이미 역사적으로 높은 수준에 올라와 있는 만큼 추가 상승 여부만으로 실적과 주가를 판단하기는 어렵다는 설명이다. 이 연구원은 “현재 수준의 마진이 한두 분기 더 이어지는지가 연간 실적에는 훨씬 중요하다”며 “정제마진 가정을 배럴당 2~3달러 높이는 것보다 정상화 시점을 한 분기 늦추는 편이 연간 영업이익 추정치에 미치는 영향이 더 클 수 있다”고 말했다.
과거 정유 사이클은 높은 제품 가격이 수요를 둔화시키고 유휴설비가 재가동되면서 비교적 빠르게 끝났다. 하지만 지금은 다시 돌아올 유휴설비가 많지 않고 러시아와 중동의 공급 차질, 낮은 제품 재고, 정기보수까지 겹쳐 있다. 당초 3분기 일시적 호황으로 봤던 정제마진이 4분기를 넘어 2027년 초까지 유지될 경우 시장은 정제마진 고점이 아니라 정유사들의 연간 이익 수준을 다시 조정해야 할 것으로 전망됐다.
국내 정유사 가운데서는 정유와 윤활기유 이익 기여도가 높은 에쓰오일(S-Oil)의 민감도가 가장 큰 것으로 분석됐다. SK이노베이션도 같은 방향의 수혜가 예상됐다. 이 연구원은 “정유주에서 이제 중요한 질문은 마진이 얼마나 더 오를 것인가가 아니다”라며 “왜 높은 마진이 아직도 꺾이지 않고 있는가를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정유사 이익은 마진의 고점보다 높은 마진이 유지되는 기간에 훨씬 더 민감하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