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지만 기대보다 걱정이 앞선다. 요즘 국회는 ‘어떻게 제대로 심사할 것인가’보다 ‘얼마나 빨리 처리할 것인가’, 혹은 ‘얼마나 오래 막을 것인가’를 놓고 경쟁한다.
국회는 최근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의 심사 기간을 최장 330일에서 90일로 줄였다. 민주당은 신속한 입법을 강조했고 국민의힘은 숙의가 사라진다고 반발했다.
느린 국회도 문제다. 법안을 몇 년씩 상임위에 묵히고 정쟁이 터질 때마다 민생법안까지 멈춰 세웠다. 그렇다고 빠른 국회가 곧 좋은 국회는 아니다. 330일을 90일로 줄인다고 법의 완성도까지 높아지지는 않는다. 중요한 질문은 ‘90일 만에 무엇을 통과시켰나’가 아니라 ‘90일 동안 무엇을 검증했나’다.
첫 시험대는 820조9000억원 규모의 내년도 예산안이다. 정부는 처음으로 800조원을 넘긴 예산과 함께 162조3000억원 규모의 미래대응기금도 추진한다. 국회는 왜 별도 기금이 필요한지 세수가 예상보다 줄어도 지출을 감당할 수 있는지 따져야 한다. 그러나 정치권은 벌써 ‘미래 투자’와 ‘포퓰리즘’이라는 구호부터 꺼낸다.
민주당은 다수 의석만큼 결과에 책임을 져야 한다. 세법 한 줄이 기업의 투자계획을 바꾸고 산업 규제 하나가 수천억 원의 투자를 좌우한다. 330일 동안 할 심사를 90일에 끝내려면 비용추계와 이해관계자 의견 수렴을 더 촘촘하게 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신속처리’는 ‘신속표결’에 그친다.
국민의힘도 ‘숙의’를 외치는 데서 멈춰선 안 된다. 정부 예산이 많다고 비판한다면 어디서 얼마를 줄일지 내놔야 한다. 필리버스터는 법안을 늦추지만 대안을 만들지는 않는다. 야당에는 브레이크뿐 아니라 다른 길을 보여줄 내비게이션도 필요하다.
그 사이 민생은 또 뒤로 밀린다. 여야는 특검과 사법·검찰개혁을 놓고 며칠씩 싸우면서 서민금융과 소상공인, 산업 규제, 청년 주거처럼 국민의 통장과 일자리에 닿는 문제에는 상대적으로 적은 시간을 쓴다.
정치의 하루와 경제의 하루는 무게가 다르다. 국회가 세제와 규제의 방향을 정하지 않으면 기업은 투자를 미룬다. 한 달의 입법 지연이 기업에는 한 분기의 투자 기회를 잃는 일이 될 수도 있다. 그렇다고 무조건 서두르라는 말은 아니다. 국회는 언제 논의를 시작하고 언제 결론을 낼지 시장이 예측할 수 있게 해야 한다.
3일 본회의를 마치고 여야 의원들은 국회 본관 계단에 모여 단체사진을 찍었다. ‘독주’와 ‘발목잡기’를 외치던 의원들도 같은 카메라를 바라본다. 100일 뒤에는 사진이 아니라 결과로 함께 서야 한다. 국회에는 100일밖에 없다. 빨리 달리는 것보다 제대로 가는 일이 먼저다. 국민이 원하는 것도 처리 속도가 아니라 제대로 내린 결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