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곳 배제…소액주주 180만명 못 들어가
상폐 부른 감사의견 거절이 거래도 막아
문 열리는 건 24곳, 소액주주 15%뿐

상장폐지된 회사에 남은 주주가 주식을 팔 수 있는 피난처가 생겼지만 그 문은 여전히 너무 좁다. 상장폐지 이후 마지막 거래 통로로 장외시장(K-OTC)에 거래 제도가 마련됐으나 정작 비자발적 상장폐지 기업 10곳 중 8곳은 피난처로 들어갈 수도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렇게 배제된 기업에 묶인 소액주주는 180만 명이 넘는다.
8일 본지가 2021년부터 지난달까지 5년여 기간 유가증권‧코스닥 시장에서 비자발적으로 상장폐지된 115곳의 감사의견을 전수 확인한 결과 올해 1월 도입된 현행 지정 요건에서는 91곳이 지정 대상에서 제외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기업의 소액주주는 무려 180만3926명으로 전체 소액주주의 85.1%에 달한다. 반면 제도 시행 이후 편입 기업은 5곳, 소액주주는 전체의 3.4%(7만2101명)에 그쳤다.
특히 제외되는 91곳 중 86곳은 처음부터 지정 대상에서 제외된다. 현행 K-OTC 운영규정(제17조의2제1항)에 따르면 상장폐지지정기업부에 들어가기 위해선 최근 결산 감사의견이 적정 또는 한정(감사범위 제한 한정 제외)이고, 주식 양도에 문제가 없고 부도 등 존속을 흔드는 문제가 없어야 하는데 86곳은 감사의견 거절‧부적정 및 감사범위 제한에 따른 한정이던 회사다.
나머지 5곳은 부도‧파산 기업으로 감사의견 기준으로 피난처에 들어갈 수 있는 기업은 24곳, 소액주주 31만5383명(14.9%)에 그치는 셈이다.
실제 상장폐지지정기업부에 지정된 5곳을 보도 감사의견이 배제선이라는 점이 명확해진다. 지난달에는 올해 2월 인트로메딕·파멥신, 7월 일정실업에 이어 엔피엑스‧아크솔루션스가 신규 지정됐는데 두 기업 모두 감사의견 거절로 퇴출된 기업이 아니다. 엔피엑스는 최근 분기 매출액이 3억원에 못 미쳐 주된 영업이 정지된 경우로 판단됐고, 아크솔루션스는 매출 허위 계상 등 회계처리기준 위반으로 각각 상장적격성 실질심사에 오른 뒤 기업의 계속성과 경영 투명성 등을 종합적으로 심사해 상장폐지가 결정됐다.
업계에선 비자발적 상장폐지 사유 중 감사의견 거절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상황에서, 피난처의 진입 요건으로 다시 ‘감사의견 적정·한정’을 요구하는 것이 타당하냐는 지적이 나온다. 상장폐지 사유와 동일한 잣대가 주주들의 마지막 거래 기회까지 차단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감사의견 거절의 사유와 심각성도 천차만별인데다 기존 주주 관점에서는 보호 필요성이 가장 큰 종목일수록 보호 대상에서 제외되는 역설이 생긴다.
감사의견은 투자자가 신뢰할 수 있는 재무정보가 제공되는지를 판단하는 핵심 기준이다. 그럼에도 감사의견 거절의 원인과 기업의 존속 가능성은 서로 다를 수 있는 만큼 이를 모든 기존 주주의 거래 통로를 차단하는 일률적인 기준으로 적용하는 것이 적절한지는 별개의 문제라는 시각이다.
거래 지원 기간이 충분한가에 대한 문제도 제기된다. 거래 지원은 최대 6개월로, 이후 지정은 자동 해제되며 계속 K-OTC에서 거래되려면 회사가 등록기업부 편입을 신청하거나 협회가 지정기업부 종목으로 신규 지정해야 한다. 올해 2월 처음 편입됐던 인트로메딕과 파멥신은 지난달 27일부로 거래 지원이 끝났다.
제한된 거래 기간 주주들의 매매 수요는 분명했다. 인트로메딕은 122거래일 내내 거래가 체결돼 총 1292만주, 17억8000만원어치가 거래됐다. 파멥신 역시 거래 지원 기간 매일 매매가 이뤄졌다.
그러나 6개월 후 두 종목의 거래 통로는 다시 닫혔다. 두 회사 모두 등록기업부 편입이나 지정기업부 신규 지정을 받지 못했다. 협회 관계자는 “인트로메딕은 감사의견 거절을 받았고, 파멥신은 올해 반기보고서상 매출액이 0원으로 나타나 영업을 계속하고 있는지 확인하기 어려웠다”며 “단순히 매출액만의 문제가 아니라 투자자 보호 측면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상폐 직후 한시적으로 거래 기회를 제공하더라도 6개월 안에 감사의견이나 영업 계속성 등 정규 K-OTC 편입에 필요한 요건을 갖추지 못하면 다시 공적인 거래 통로를 잃게 된다. 상장폐지 기업이 6개월 안에 감사의견을 개선하거나 영업 계속성을 입증해 정규 K-OTC 시장에 진입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한지, 거래지원 기간을 6개월로 제한한 것이 적절한지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상장폐지지정기업부의 목적이 소액주주의 재산권과 최소한의 거래 기회를 보장하는 데 있다면 기업의 부실 정도와 주주의 거래 필요성을 세분화해 판단할 필요가 있다”며 “진입 요건뿐 아니라 상장폐지 이후 정보공개와 거래지원 기간을 어떻게 보완할 것인지도 함께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협회는 현행 요건이 신규 투자자까지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라는 입장이다. 협회 한 관계자는 “일반 지정기업부는 감사의견 ‘적정’을 요구하지만 상장폐지지정기업부는 ‘한정’까지 허용하고 완전자본잠식 기업도 배제하지 않는다”며 “기존 주주가 매도한 주식을 사들이는 신규 투자자도 보호해야 하는 만큼, 신뢰할 만한 재무제표가 제공되는지는 최소한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협회는 거래 공백을 줄이기 위해 지정 기간 만료 1∼2개월 전부터 해당 종목의 정규 K-OTC 편입 가능성을 검토한다. 협회 관계자는 “기업 건전성에 문제가 없다면 거래지원을 6개월 만에 끝낼 이유는 없다”고 말했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감사의견 거절 기업일수록 주주들이 지분을 유동화하고 경영진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기회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이상목 소액주주 행동주의 플랫폼 액트 대표는 “감사의견 거절은 대부분 경영진의 회계 부실이나 내부통제 실패에서 비롯되는데, 이를 이유로 K-OTC 거래까지 막으면 경영진의 책임이 소액주주에게 전가된다”며 “상장폐지되는 종목이 K-OTC로 옮겨가 장기간 거래될 수 있도록 일종의 승강제를 도입하고, 장외 거래 방법과 주주권 행사 절차, 주요 경영사항을 계속 안내하도록 해야 한다”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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