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부터 글로벌 빅파마 다수와 계약…올해 릴리·제넨텍과 대형 계약 체결

한미약품이 글로벌 제약사와 연이어 대규모 기술수출 계약을 체결하며 국내 대표 연구개발(R&D) 중심 제약사로서 저력을 다시 한번 입증했다. 1980년대부터 축적한 제제기술과 신약개발 역량을 바탕으로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도 R&D 투자를 이어온 결과라는 평가다.
24일 제약바이오업계에 따르면 한미약품은 로슈그룹 자회사 제넨텍과 비만·대사질환 치료제 후보물질 ‘HM17321’에 대한 독점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했다. 전체 계약 규모는 최대 23억달러(약 3조2000억원)로 반환 의무가 없는 선급금은 1억9000만달러(약 2850억원)다. 단일 신약 후보물질 기준으로는 사상 최대 규모다.
이번 계약을 포함해 한미약품의 기술수출 역사는 30년을 훌쩍 넘는다. 한미약품은 1989년 스위스 로슈와 항생제 세프트리악손 제제기술의 독점적 사용 권리 이양에 관한 계약을 체결했다. 한국 최초의 의약품 제조기술 수출 사례다. 이 계약은 한미약품이 R&D를 경영 최우선 가치로 확신하게 된 계기가 됐다.
1997년에는 면역억제제 등에 적용할 수 있는 마이크로에멀전 제제 기술을 노바티스에 당시 제약업계 최대 금액인 7300만달러 규모로 수출했다. IMF로 어려움에 빠져 있던 한국 기업과 국민들에게 R&D를 통해 혁신을 가져올 수 있다는 자신감과 희망, 위로를 줬고 한미약품이 복제약 중심 사업구조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제제기술과 신약개발 역량을 강화하는 계기가 됐다.
2010년대 들어서는 완제품과 제제기술을 넘어 혁신신약 후보물질을 글로벌 제약사에 이전하는 단계로 기술수출 모델을 확장했다. 2011년 카이넥스에 주사용 항암제를 경구제로 전환하는 플랫폼 ‘오라스커버리’를 이전했고, 이듬해에는 스펙트럼에 지속형 호중구감소증 치료제 ‘롤론티스’를 기술수출했다.
롤론티스는 한미약품의 기술수출 성과가 실제 글로벌 신약으로 이어진 대표 사례다. 2022년 미국 식품의약국(FDA) 허가를 획득한 뒤 미국에서 ‘롤베돈’이라는 이름으로 판매되고 있다. 한미약품 평택 바이오플랜트가 미국 판매 제품의 원액을 생산해 공급하면서 후보물질 발굴과 기술수출, 허가, 생산, 상업화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도 구축했다.
2015년은 한미약품이 ‘기술수출 신화’를 쓴 해로 평가된다. 일라이 릴리에 자가면역질환 치료제 후보물질 ‘HM71224’를 최대 6억9000만달러에 기술수출한 것을 시작으로 베링거인겔하임, 사노피, 얀센 등 글로벌 제약사와 대형 계약을 잇달아 체결했다.
특히 사노피와 체결한 당뇨병 치료제 ‘퀀텀 프로젝트’ 계약은 최대 39억유로 규모로 당시 국내 제약업계 최대 기술수출 사례로 주목받았다. 얀센에는 글루카곤유사펩타이드-1(GLP-1)·글루카곤 이중작용제 ‘HM12525A’를 최대 9억1500만달러에 이전했다. 같은 해 중국 자이랩과도 항암제 후보물질의 중국 지역 권리 이전 계약을 체결했다.
이듬해인 2016년에는 제넨텍에 항암제 후보물질 ‘벨바라페닙’을 최대 9억1000만달러 규모로 기술수출하며 글로벌 파트너십을 항암 분야로 넓혔다. 이번 HM17321 계약은 한미약품과 제넨텍이 약 10년 만에 다시 대규모 신약 개발 협력에 나섰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기술수출 과정이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다. 2015년 체결한 일부 대형 계약은 글로벌 제약사의 개발 전략 변경이나 임상 결과 등을 이유로 권리가 반환됐다. 한미약품은 이 과정에서 기술수출의 불확실성을 경험했지만 반환된 후보물질의 개발 가능성을 다시 검토하고 새로운 파트너를 찾는 전략으로 돌파구를 마련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HM12525A다. 한미약품은 2015년 얀센에 이 후보물질을 기술수출했지만 2019년 권리를 돌려받았다. 이후 적응증과 개발 전략을 재정비해 2020년 MSD에 최대 8억7000만달러 규모로 다시 기술수출했다. 반환된 후보물질을 폐기하지 않고 새로운 개발 가치와 파트너를 찾아냈다.
기술수출 성과는 항암제와 대사질환뿐만 아니라 희귀질환과 안과질환으로도 확대됐다. 한미약품은 2021년 앱토즈 바이오사이언스에 급성골수성백혈병 치료제 후보물질 ‘HM43239’를 최대 4억2000만달러에 이전했다. 같은 해 어파메드 테라퓨틱스와 망막질환 치료제 ‘리수테가닙’의 중화권 라이선스 계약도 체결했다.
올해 들어서는 기술수출 성과가 다시 대형 계약으로 이어지고 있다. 한미약품은 6월 일라이 릴리에 지속형 GLP-2 유사체 ‘소네페글루타이드’를 최대 12억6000만달러 규모로 기술수출했다. 이어 HM17321까지 제넨텍에 이전하면서 올해 체결한 두 건의 계약 규모만 최대 35억6000만달러에 달하게 됐다.
제약바이오업계에는 한미약품이 그간 구축해온 신약 발굴과 플랫폼 기술, 임상 개발 역량이 다시 한번 글로벌 시장에서 인정받은 결과라는 평가가 나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