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 바뀐 퇴직연금⋯신규 자금 95% 직접 굴린다 [550조 연금전쟁 上-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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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0조원 규모로 커진 퇴직연금 시장이 금융권의 최대 격전지로 떠올랐다. 과거 DB형과 원리금보장 상품에 머물던 자금은 DC·IRP와 ETF·TDF 등 투자상품으로 이동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은행은 수성에 나서고 증권사는 빠르게 점유율을 높이는 반면 보험은 성장세가 뒤처지는 모양새다. 내년 기금형 퇴직연금 도입과 국민연금의 참여까지 예고되면서 경쟁은 업권 간 점유율 싸움을 넘어 운용역량과 수익률 경쟁으로 확산하고 있다. 퇴직연금 머니무브가 금융산업의 판도를 어떻게 바꿀지, 가입자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짚어본다.

'보관 자산' 넘어 고수익 창출
2분기 DC·IRP 42.7조 몰려

퇴직연금이 ‘저축’에서 ‘투자’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 회사가 운용을 책임지던 확정급여(DB)형과 원리금보장 상품 중심에서 가입자가 직접 굴리는 확정기여(DC)형·개인형퇴직연금(IRP), ETF·펀드 등 시장성 상품 중심으로 자금이 이동하고 있다. 노후자금이 단순한 ‘보관 자산’을 넘어 적극적으로 수익을 추구하는 투자자금으로 변하면서 금융권의 경쟁구도와 자본시장 수급에도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17일 금융감독원 통합연금포털과 키움증권에 따르면 올해 2분기 말 퇴직연금 적립금은 553조9000억원으로 전 분기 508조7000억원보다 45조1000억원(8.9%) 증가했다. 늘어난 돈의 행선지는 뚜렷했다. 기업이 운용을 책임지는 DB형은 2조4000억원(1.1%) 증가하는 데 그쳤다. 반면 DC형은 20조1000억원(14.1%), 개인형 IRP는 22조6000억원(15.7%) 불어났다. DC·IRP 증가액만 42조7000억원으로 전체 증가분의 94.7%에 달한다.

장기 흐름을 보면 변화가 더 선명하다. 전체 적립금에서 DB형 비중은 2019년 3분기 61.1%에서 올해 2분기 40.5%로 낮아졌다. 같은 기간 개인형 IRP는 13.2%에서 30.0%로 두 배 이상 확대됐고 DC형도 25.7%에서 29.5%로 높아졌다. 회사가 운용하는 방식보다 가입자가 직접 상품을 선택하는 계좌가 시장 성장을 이끄는 구조로 바뀌고 있다.

운용 방식도 달라졌다. 올해 2분기 전체 퇴직연금에서 원리금 비보장 상품이 차지하는 비중은 35.7%로 2020년 2분기 10.7%에서 세 배 이상 확대됐다. 반대로 원리금보장 상품 비중은 같은 기간 89.3%에서 64.3%로 낮아졌다. 퇴직연금 100원을 기준으로 투자상품에 들어간 돈이 6년 전 약 11원에서 현재 약 36원으로 커진 셈이다.

증시 강세는 이 같은 흐름을 가속한 요인으로 꼽힌다. 올해 6월 기준 원리금 비보장 상품 가운데 주식형의 최근 1년 수익률은 82.8%로 채권형 3.2%를 크게 웃돌았다. 채권혼합형과 주식혼합형도 각각 23.0%, 32.8%를 기록했다. 업계에서는 2분기 위험자산 선호가 높아지면서 실적배당형 상품으로의 자금 이동이 더욱 빨라진 것으로 보고 있다.

금융회사별 성장 속도도 갈렸다. 2분기 증권사의 퇴직연금 적립금은 전 분기보다 23조4000억원(16.5%) 불어난 165조원이었다. 은행은 17조4000억원(6.6%), 보험은 4조4000억원(4.3%) 증가했다. 잔액에서는 은행이 여전히 가장 크지만 성장률은 증권사가 크게 앞섰다.

노후자금의 투자계좌화는 자본시장 수급에도 영향을 줄 전망이다. DC·IRP가 커질수록 주식뿐 아니라 채권 수요도 함께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안예하 키움증권 연구원은 “퇴직연금이 DC·IRP 중심으로 성장하면서 장기적으로 채권형 ETF·펀드를 통한 국내 우량채의 수요 기반도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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