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서 증권사로… 퇴직연금 머니무브 [550조 연금전쟁 上-②]

기사 듣기
00:00 / 00:00

550조원 규모로 커진 퇴직연금 시장이 금융권의 최대 격전지로 떠올랐다. 과거 DB형과 원리금보장 상품에 머물던 자금은 DC·IRP와 ETF·TDF 등 투자상품으로 이동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은행은 수성에 나서고 증권사는 빠르게 점유율을 높이는 반면 보험은 성장세가 뒤처지는 모양새다. 내년 기금형 퇴직연금 도입과 국민연금의 참여까지 예고되면서 경쟁은 업권 간 점유율 싸움을 넘어 운용역량과 수익률 경쟁으로 확산하고 있다. 퇴직연금 머니무브가 금융산업의 판도를 어떻게 바꿀지, 가입자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짚어본다

증권사 적립금 1년 새 46.6% 급증
은행과 격차 6조 줄여…점유율 29.8%
증시 변동성 확대에 ‘역머니무브’ 촉각

은행이 주도해온 퇴직연금 시장에 증권사의 추격이 거세다. 은행은 여전히 전체 적립금의 절반 이상을 쥐고 있지만 퇴직연금의 무게중심이 ‘보관’에서 ‘투자’로 이동하면서 투자상품 경쟁력을 앞세운 증권사의 존재감이 빠르게 확대되는 모습이다.

17일 금융감독원 통합연금포털에 따르면 올해 2분기 말 기준 은행권의 퇴직연금 적립금은 281조5105억원으로 집계됐다. 전분기보다 6.6%(17조3900억원) 증가한 수준이다.

같은 기간 증권업권의 퇴직연금 적립금은 165조468억원으로 16.5%(23조3671억원) 늘었다. 은행권보다 두 배 이상 가파른 성장세다. 이에 따라 은행과 증권업권 간 적립금 격차는 122조4408억원에서 116조4637억원으로 6조원가량 좁혀졌다.

지난해 2분기와 비교하면 증권사의 약진은 더욱 두드러진다. 1년 전 112조6121억원이었던 증권사 적립금은 1년 새 46.6%(52조4347억원) 폭증했다. 같은 기간 은행권은 235조5616억원에서 281조5105억원으로 19.5%(45조9489억원) 늘어 증권업권의 증가율이 은행권의 두 배를 웃돌았다.

증권사가 은행과의 격차를 빠르게 좁힌 배경에는 상반기 증시 활황이 자리 잡고 있다. 주식 시장 상승세 속에 소외를 우려하는 포모(FOMO) 심리가 번지면서 상장지수펀드(ETF) 등 실적배당형 상품에 자금이 쏠린 영향이다.

가입자가 직접 굴리는 확정기여(DC)형과 개인형퇴직연금(IRP)이 증권사의 성장을 견인했다. 기업이 운용하는 확정급여(DB)형과 달리 DC와 IRP는 개인이 직접 상품을 고를 수 있어 투자 라인업이 풍부한 증권사가 우위를 점했다.

시장 점유율 판도도 흔들리고 있다. 2분기 전체 적립금 중 증권업권 비중은 29.8%로 전분기보다 1.9%포인트(p) 올랐다. 반면 은행권 점유율은 50.8%로 1.1%p 떨어졌고 보험업권도 19.4%로 0.9%p 낮아졌다.

증권사로 넘어간 자금의 투자처는 한층 다변화될 전망이다. DC·IRP에서는 주식형 ETF를 최대 70%까지만 담을 수 있지만 채권형 상품은 100%까지 편입 가능하다. 오는 9월부터는 DC·IRP를 통한 개인투자용 국채 10년·20년물 직접 투자도 허용된다.

다만 최근 증시 변동성이 확대되면서 이 같은 흐름이 지속될지는 미지수다. 증시 상승기에 수익률과 투자상품을 좇아 증권사를 선택했던 가입자들이 변동성이 커질 경우 안정적인 운용과 자산관리를 중시하면서 은행으로 다시 눈을 돌릴 수 있다는 것이다. 은행권에서는 이런 ‘역머니무브’ 가능성에 대비해 강점을 부각하며 증권사로 넘어간 고객을 다시 끌어오는 데 주력할 계획이다.

은행권 관계자는 “증시 변동성의 확대로 연금자산을 단순한 투자상품이 아니라 장기간에 걸쳐 세심하게 관리해야 하는 노후자산으로 인식하는 고객이 늘고 있다”며 “은행권도 안정적인 운용전략과 차별화된 연금관리 서비스를 강화하면서 퇴직연금 시장에서 경쟁력을 높여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향후 퇴직연금 시장의 머니플로우는 증시 상황이 달라진 뒤에도 증권업권의 높은 성장세가 유지될 수 있을지에 달려있다. 상반기 증시 상승 국면에서 나타난 증권업권의 점유율 확대가 조정 국면에서도 이어질지가 은행과 증권사 간 퇴직연금 경쟁의 판도를 가를 핵심 변수로 꼽힌다.

  • 좋아요0
  • 화나요0
  • 슬퍼요0
  • 추가취재 원해요0
주요뉴스
많이 본 뉴스
댓글
0 / 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