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형 국제경제부장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세계 경제가 3.3%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작년과 비슷한 수준입니다. 관세 인상과 지정학적 갈등에도 글로벌 경제가 예상보다 잘 버티고 있는 셈이지요.
배경에는 기술 투자가 존재합니다. IMF도 무역정책 변화가 만들어낸 역풍을 AI를 비롯한 기술 투자의 급증과 완화적인 금융 여건이 상쇄하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AI는 이제 특정 산업의 유행이 아니라 세계 경제를 움직이는 거대한 설비투자 사이클이 됐습니다. 데이터센터를 짓기 위해 반도체와 서버, 전력설비와 냉각장치가 필요합니다. 이를 생산하고 연결하기 위해 구리와 희토류, 화학제품과 통신장비도 필수입니다.
이 모든 게 하나의 나라에서 모두 얻어낼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국경을 넘나들지 못한다면 AI 시대에 주저앉을 수밖에 없는 셈이지요.
이렇게 AI 효과에 의존한 경제 성장이 이어질수록 세계 경제는 강대국 정치에 발목 잡힐 수밖에 없습니다. 올해 들어 각국의 관세와 수입제한, 자국 산업보조금 등 정치권의 무역개입은 관련 집계가 시작된 이후 최고 수준으로 치솟았다는 게 월스트리트저널(WSJ)을 포함한 주요 외신의 공통된 분석입니다. 세계무역기구(WTO)에 따르면 올해 1∼5월 각국의 무역정책 개입은 2024년의 거의 두 배, 지난해 평균보다 약 25% 많았습니다. WTO는 “그럼에도 올해 1분기 세계 상품교역량은 작년 같은 기간보다 3.2% 증가했다”고 분석했습니다. AI 인프라 수요가 교역 장벽을 넘어선 셈이지요.
문제는 이런 균형이 ‘얼마나 오래 지속될 수 있느냐’입니다. 관세는 기업의 비용을 높이고 최종 소비자 가격을 올립니다. 결국 소비자의 선택 폭도 줄어들기 마련이지요.
수출통제는 첨단기술의 확산을 늦추고 공급망을 비효율적으로 만듭니다. 각국이 경제안보를 이유로 자국 산업을 보호할수록 기업은 가장 효율적인 생산지가 아니라 정치적으로 가장 안전한 생산지를 택할 수밖에 없습니다. 세계 경제의 기준이 가격과 생산성에서 동맹과 국적으로 옮겨가고 있다고 보면 됩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중동의 원유 공급 차질이 길어질 경우 2026년과 2027년의 세계 성장률이 더 낮아지고 물가는 크게 높아질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에너지와 핵심 소재의 공급 차질이나 새로운 수출제한이 AI 투자 자체를 훼손할 가능성도 지적했습니다.
기술은 나라와 나라의 연결을 요구합니다. 거꾸로 정치는 나라와 나라 사이에 벽을 쌓아 올리고 있습니다. AI는 규모의 경제를 추구하지만 주요 강대국 정부는 공급망을 쪼개고 장벽을 높이며 기득권을 챙기고 있는 셈이지요.
한국처럼 무역과 기술에 동시에 의존하는 국가는 이 역설의 한복판에 서게 됩니다. 반도체와 전력기기, 조선과 방산은 AI 투자와 지정학적 재편의 수혜를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미·중 갈등 사이에서 수출통제와 관세 경쟁, 환율 갈등이 격화되면 가장 먼저 선택을 강요받을 수도 있습니다.
정치가 기술의 속도를 이길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 승리의 대부분은 나라가 가난해지는 방식으로 귀결됩니다. AI가 만들어낸 성장의 길을 넓힐 것인지, 관세와 전쟁으로 그 길을 좁힐 것인지는 결국 정치가 결정합니다.
2026년 인류는 신의 영역에 도전한다는 ‘호모데우스’ 시대에 살고 있으나 글로벌 강대국 정치는 그 옛날 부족국가 시절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덩달아 우리까지 휩쓸려서는 안 됩니다. 정치 탓에 성장이 발목 잡힌다면 두 팔 걷고 싸워가며 우리의 목소리를 내야 합니다. 준비는 되셨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