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 하청 폐업 12년만에 최대...사각지대에 놓인 기업들 [멈춘 현장, 다음은 어디 下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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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건설사 도산이 확산하고 있다. 종합건설사 폐업은 21년 내 최다로 치솟았고, 회생을 신청하는 중견 건설사가 줄을 잇는다. 분양 시장이 식고 미분양이 쌓이자 공사비를 떠안은 시공사가 흔들리고, 그 충격은 하청과 자재업체, 수분양자에게로 번진다. 본지는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와 법원 회생 기록, 국토교통부 건설 행정 데이터를 직접 분석해 도산 위험도를 짚고, 멈춰 선 공사 현장을 찾아 피해를 점검하고 대응책을 찾아본다. ‘멈춘 현장, 다음은 어디’는 그 기록이다.

-올해 상반기 폐업신고 전문건설 업체 1714개사...2014년 이후 최대치
-민간 현장 대금 미지급, 원자재 급등, 전문건설 업체 난립 등이 원인으로 지목
-하반기엔 부동산 PF부실 정리와 금리인상 등으로 중소 건설업체 위기 확산 전망도
-정부 메가 프로젝트 '속도'·대금 지금 현장 모니터링·주계약자공동도급 도입 등 제언

▲서울 시내 한 아파트 건설 현장 모습. (연합뉴스)

#부산에 위치한 전문건설 업체 세도건설은 2023~2024년 참여했던 한 호텔 건설 공사의 시행사에 공사대금 문제로 소송을 제기했다. 해당 현장의 시공사가 자금난에 허덕이다 채무를 이기지 못하고 법원에 기업회생을 신청하면서 공사에 참여했던 하청 업체들이 대금 정산을 받지 못한 게 발단이 됐다. 세도건설이 받지 못한 미정산액 규모는 13억~15억원이다. 연매출인 100억~120억원의 10%를 넘어서고, 연간 마진(약 5억원) 기준으로는 3배에 이르는 금액이다. 현금 흐름이 막힌 이 업체는 자금 압박이 커지면서 인건비는 물론 거래처 자재비도 제때 지불하지 못했다.

지방 분양시장 침체와 원자재 가격 급등,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의 충격은 건설 현장 가장 아래에 있는 협력업체부터 덮쳤다. 중견 규모 건설사들도 버티지 못하는 외풍을 자금력이나 기초체력이 약한 중소 하도급 업체들이 방어하긴 쉽지 않다. 올해 상반기 전문건설업체 폐업은 10여 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까지 치솟았다.

9일 건설산업지식정보시스템(KISCON)에 따르면 올해 1~6월 전국에서 폐업신고를 한 전문건설 업체는 1714개사로 작년 같은 기간(1420건)보다 21% 증가했다. 2008년 리먼브라더스 사태로 이어진 불황에 중소 업체들이 줄줄이 문을 닫았던 2014년(2025건) 이후 최대치다.

영세·중소 전문건설 업계... 길어진 침체에 간판 내린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여파로 국내에선 100대 건설사 중 절반에 가까운 건설사들이 구조조정 문턱을 오갈 만큼 극심한 진통을 겪었다. 문재인 정부 시절 호황기를 맞았지만 금리인상과 프로젝트 파이낸싱(PF)부실 등의 여파에 시장은 2023년부터 다시 꺾였다. 올해 1분기 건설수주액은 46조3000억원으로 작년 같은 기간보다 29% 증가했지만, 건설투자액과 건설기성액은 각각 1.4%, 3.2% 줄었다. 수주는 회복세인데, 전쟁이 촉발한 공사비 급등과 분양시장 침체에 현장의 회복은 여전히 더디다.

버티지 못한 지역 중견 건설사들의 유동성 위기와 회생 신청은 영세한 중소 업체들에 그대로 전이된다. 시공사의 자금경색으로 미수금이 쌓이면서 하도급 업체들의 인건비와 자재상 대금, 장비 임대료는 줄줄이 막힌다. 원칙적으로 하도급대금 지급기한은 목적물 수령일로부터 60일이지만 실제 현장에서 이는 지켜지지 않는다. 특히 하도급 업체들은 '을'이라는 인식과 자칫 일감이 끊길 수 있다는 우려에 문제를 제기하기 어렵다. 미수금 분쟁 초기에 하청 업체들이 미온적으로 대응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경기도의 한 전문건설 업체 대표 A씨는 "지역을 기반으로 원청과 수년간 거래하는 하청 업체들이 많고, 자칫 관계 단절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고 전했다. 대부분의 하청 업체는 수개월간 문제가 누적돼 자금회전이 나빠질 대로 나빠진 뒤에야 문제를 공론화한다. 남은 공사대금을 못 받을 수 있다는 우려에 현장을 정리하기도 어렵다. 세도건설도 마찬가지였다. 2023년 12월 대금 집행 문제의 징후가 보였지만 다음해인 4월에야 현장을 빠져나왔다. 회사 관계자는 "당장은 못 주더라도 상환 계획 등이 있다고 봤는데 결국 해결되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전국적으로 충북 영동코아루리더스원 아파트, 경기 평택시 포승 물류센터 신축공사, 경기 이천시 신안실크밸리 2차 공공 민간임대아파트, 울산 중구 우정동 아파트, 울릉라마다호텔 등 대금 미지급이 발생한 현장들은 곳곳에 산재한다. 원청의 자금 확보와 지자체의 개입으로 사태가 일단락된 경우도 있지만 종종 집단행동으로 이어진다.

급등한 자재비를 보전받지 못하는 것도 영세 업체들의 어려움을 가중시킨다. A씨는 "원자재 가격 급등으로 공사비가 당초 예상과 달리 치솟았고, 부담이 커진 원청들이 한 현장에서 대금을 올리면 도미노 인상에 나서야 한다는 우려에 이의를 제기해도 반응하지 않는다. 하도급 업체가 인상분을 떠안고 공사를 수행하는 게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중소 업체들의 난립도 지적된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 미래산업정책연구실 김영덕 선임연구위원은 "건설 경기 상 업체 수가 줄어드는 게 맞지만, 지역 소규모 재건축 활성화 등 소규모 공사가 늘면서 업체 수가 많아진 상황이다. 시장은 줄었는데 경쟁은 더 심하다"고 설명했다.

기존 정책 시행 모니터링...정부 '메가 프로젝트' 속도전 관건

협력 업체를 보호할 정부의 정책이 없는 건 아니다. 하도급대금 직불제와 지급보증제가 대표적이다. 직불제는 발주자가 협렵업체에 대금을 직접 지급하는 제도다. 지급보증제는 원청이 대금을 지급하지 못하면 보증기관이 이를 대신한다. 그러나 피해는 반복된다. 직불제가 모든 민간공사에 의무적으로 적용되지 않고, 지급보증 제도 역시 보증 한도가 존재한다. 원청이 기업회생에 들어가는 경우 회생절차와 채권신고를 거치면서 대금 회수도 지연된다. 협력 업체들을 보호할 안전 장치는 있지만 충분히 보호하지 못하는 사각지대가 여전히 존재한다. 김 선임연구위원은 "우리나라 하도급 정책은 세계적으로도 강력한 수준이지만 민간에선 규정 미준수와 불법 행위 등 제도로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이 여전히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지난해부터 부동산 PF부실을 정리 중이다. 하반기 금리인상도 예고됐다. 이같은 기조는 중소 전문건설 업체들의 수주 감소와 수익 악화, 연쇄 부실 위험을 더 키울 수 있다. 지역경제에도 부담이다. 김 위원은 "중소 업체 지원을 위해 정부 정책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모니터링할 필요가 있다"며 "지방 투자를 얼마나 활성화하는냐가 관건이다. 최근 정부가 발표한 대규모 프로젝트의 속도와 조기 집행 여부도 중요하게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종합건설 업체와 전문건설 업체가 공동수급체를 구성해 입찰에 참여하는 주계약자공동도급 활용도 제기된다. 박광배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중소 건설업 지원 확대 방안 연구' 보고서에서 "전문건설 업체들이 하도급 입찰에 저가로 투찰하는 건 수주물량이 부족한 상황에서 거래 지속성과 고정비를 확보하기 위한 것"이라며 "기술력과 재무상태가 좋은 업체의 수주 기회를 확대할 수 있는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말했다.

<싣는 순서>
①장부가 먼저 울린 경고…건설사 4곳 중 1곳 '위험 신호'
②무너진 건설사는 장부를 다시 쓴다…빚 바꾸고 땅값 올려 만든 '자본'
③[르포] 불 꺼진 입주단지들...‘공급 폭탄’에 ‘무너진 원청’까지
④정부 보증서 믿었는데…1만6145가구의 눈물
⑤중소 하청 폐업 12년만에 최대...사각지대에 놓인 기업들
⑥PF 지표마저 흔들린다…지방 건설 살릴 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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