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정부 보증서 믿었는데…1만6145가구의 눈물 [멈춘 현장, 다음은 어디 下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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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건설사 도산이 확산하고 있다. 종합건설사 폐업은 21년 내 최다로 치솟았고, 회생을 신청하는 중견 건설사가 줄을 잇는다. 분양 시장이 식고 미분양이 쌓이자 공사비를 떠안은 시공사가 흔들리고, 그 충격은 하청과 자재업체, 수분양자에게로 번진다. 본지는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와 법원 회생 기록, 국토교통부 건설 행정 데이터를 직접 분석해 도산 위험도를 짚고, 멈춰 선 공사 현장을 찾아 피해를 점검하고 대응책을 찾아본다. ‘멈춘 현장, 다음은 어디’는 그 기록이다.

부실 건설사 사태에 이자·옵션비 폭탄…월세 전전하는 피해자들
보증금 못 받고, 받고도 이자 떠안는 이중 피해
본지, 2024년 이후 회생 건설사 83곳 분양이력 대조
부실 시공사 22곳이 지은 49개 현장 1만6145세대
원금만 보증…대출이자는 고스란히 계약자 몫
사고 준 게 아니라 분양 반토막…지방이 더 깊다

▲춘천 '시온 숲속의아침뷰' 입주예정자들이 공사가 멈춘 현장 앞에서 시위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춘천시온숲속의아침뷰입주예정자대표회의)

강원도 춘천에 거주하는 임차인 A씨는 1년 8개월째 전세보증금을 반환받지 못했다. 전북 군산의 또다른 신규 아파트 입주민은 보증금을 돌려받은 뒤에도 수개월 분량의 대출이자를 고스란히 감당했다. 이들 모두 분양 및 임대 계약 시점에 주택도시보증공사(HUG) 로부터 보증서를 발급받았지만, 시공사가 도산하자 보증서가 자신들의 재산 피해를 온전히 구제하지 못하는 현실을 마주해야 했다.

◇ 빚과 월세에 갇힌 이들

A씨가 계약을 체결했던 춘천 ‘시온 숲속의아침뷰’ 민간임대아파트 현장은 2024년 10월 시공사인 시온토건이 부도를 맞으면서 공정률 78% 상태로 공사가 중단됐다. 공사 중단 1년 8개월인 지난 올해 6월까지도 총 318가구 중 245가구가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했다.

HUG는 당초 385억원 규모의 임대보증금보증서를 발급했지만 시행사와 대출 은행이 HUG 지정계좌에 실제로 예치한 금액은 전체의 20% 수준인 78억원에 불과했다. HUG는 지정계좌에 입금된 금액에 대해서만 환급이 가능하다는 입장이었다.

A씨의 피해는 복합적이다. 계약금 3000만~4000만원과 중도금 대출액 1억여원이 묶인 피해도 컸지만, 일반적인 중도금 집단대출이 아닌 개인 전세자금대출 형식으로 자금이 집행된 탓에, 신용 정보상 대출 규제에 걸렸다. 금융 거래가 차단된 A씨는 월세방을 전전한다. 채권 보전을 위한 소송 비용과 더불어 연체 이자도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가족들의 보금자리를 꿈꿨던 B씨의 계획도 산산조각났다. B씨는 "자녀들에게 떳떳한 부모가 되고 싶어 선택한 계약이 도리어 아이들에게 빚과 고통을 넘겨주는 짐이 됐다. 새로운 전셋집을 구할 자금도 없어 월세를 전전해야 하는 처지에 무력감과 슬픔을 느낀다"며 눈물을 보였다.

시행사와 HUG, 대구 지역 새마을금고는 여전히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

◇ 원금 환급 뒤의 숨은 손실

비슷한 시기 군산 영무파라드 사고 현장의 입주민들은 보증금 원금을 전액 환급받았다. 장부상으로는 리스크가 완전히 해소된 사례다. 하지만 입주가 지연되는 동안 발생한 수개월치 대출이자는 모두 본인이 부담해야 했다. 분양 당시 시행사인 홍진하우징은 중도금 이자를 대납하겠다는 파격적인 혜택을 내걸었으나 부실화되면서 이자를 연체하기 시작했다. HUG의 대위변제가 최종 확정되는 시점까지 가구당 대략 2~3개월 동안 매달 70만~80만원에 달하는 이자를 입주민들이 사비로 대납해야 했다.

군산 유탑블레스 사업장의 피해 기간은 이보다 더 길다. 시행사가 계약자들에게 중도금 무이자 혜택을 약속했지만 시공사 유탑건설이 서울회생법원의 파산 선고를 거쳐 광주지방법원 회생 절차에 돌입하며 시간이 지체됐다. 법적 공방과 절차가 표류하면서 입주예정자들은 적게는 3개월에서 길게는 6개월 동안 발생한 중도금 대출이자를 사비로 메워야 했다. 국가가 보증한 계약이었지만 계약자가 실제 부담한 금융비용과 시간 손실은 보상하지 못했다.

◇ 1만6145가구의 지워진 일상

이 같은 현장은 전국적으로 퍼져 있다. 본지가 법원이 보유한 회생·파산 데이터와 HUG의 역대 분양 보증 이력(2025년 8월 31일 기준)을 시공사명 기준으로 교차 분석한 결과, 2024년 이후 회생 절차에 진입한 건설사 83곳 중 22곳이 전국 각지에 공급한 아파트 현장은 총 49곳에 달한다. 규모는 1만6145가구에 이른다.

이들 가운데 한국건설·신태양건설 등이 시공한 일부 현장은 이미 환급 또는 공사이행 방식으로 대위변제에 들어가 집행이 진행중이거나 완료됐다. 다만 이는 분양이력이 2025년 8월까지 반영된 수치로, 이후 회생 절차를 개시한 시공사들의 잠재적 피해 현장은 산입되지 않았다. 통계에 잡히지 않는 피해자가 더 있을 수 있다는 의미다.

HUG가 공표한 거시적 사고 통계 이면에도 착시가 있다. HUG 자료에 따르면 분양보증(임대보증 포함) 사고 규모는 2023년 1조2143억원에서 2024년 1조1558억원으로 줄었고, 2025년에는 1~10월 3543억원 수준에 그쳤다. 숫자만 보면 분양 시장의 위험이 잦아든 것처럼 읽힌다. 그러나 같은 기간 HUG가 분양보증을 내준 가구수가 2023년 27만751가구에서 2025년 12만4480가구로 반토막 났다. 분양 물량이 감소해 사고가 줄어든 것이다. 현장의 위험이 낮아진 게 아니라는 의미다.

◇ "구제받지 못하는 서민의 고통"

전문가들은 이 같은 집단적 손실이 개인의 잘못이 아니라 제도적 빈틈에서 나온 것으로 지적한다. 박지영 법무법인 슈가스퀘어 대표변호사는 “설사 시행사 측 귀책사유로 분양계약을 해제하더라도, 중도금 대출계약은 금융기관과 수분양자가 별도로 맺은 계약”이라며 “분양계약에서 벗어났다고 해서 중도금 상환 의무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HUG의 경직된 보증 사고 인정 기준에도 사각지대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효선 KB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은 “공정률 25%포인트 미만이나 3개월 이상 공사 중단이라는 기준에 걸리지 않도록, 공사를 단속적으로 진행하며 지연시키는 현장은 현실적으로 구제할 방법이 없다”면서 “이러한 공사 지연 리스크가 현재 지방 주택시장을 중심으로 심각하게 번져나가고 있다고 경고했다.

▲(사진=AI 생성) (이미지=구글 노트북 LM)

◇ 개인이 막을 수 없었던 재앙

문제는 피해자들이 아무리 주의를 기울여도 막대한 손실을 스스로 피할 방법이 없었다는 데 있다. 분양보증금이 지정계좌로 제대로 들어갔는지, 가계 대출이 어떤 규제 항목으로 전산 등록되는지 평범한 계약자가 감시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박사훈 법률사무소 A&P 대표변호사는 “권한에는 그에 상응하는 책임과 의무가 따른다는 면에서 볼 때, HUG가 관리·감독 권한을 보다 적극적으로 활용했다면 더 큰 피해를 막을 여지도 있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보증 제도의 보호 범위를 이자 전반으로 넓히거나 일정 기간 이자를 유예하는 유예 시스템을 안착시키는 방안, 나아가 부실 위험을 원천 차단하는 완전 후분양제 도입 등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다만 후분양제는 분양 가격이 가파르게 상승할 수 있는 딜레마를 극복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춘천 시온 현장의 부도 사태 여파로 보금자리를 잃은 A씨와 B씨는 오늘도 월세방에서 하루를 버틴다. 이들의 손에 남은 것은 약속했지만 끝내 지켜주지 못한, 보증서 한 장뿐이다.

<싣는 순서>
①장부가 먼저 울린 경고…건설사 4곳 중 1곳 '위험 신호'
②무너진 건설사는 장부를 다시 쓴다…빚 바꾸고 땅값 올려 만든 '자본'
③[르포] 불 꺼진 입주단지들...‘공급 폭탄’에 ‘무너진 원청’까지
④정부 보증서 믿었는데…1만6145가구의 눈물
⑤중소 하청 폐업 12년만에 최대...사각지대에 놓인 기업들
⑥PF 지표마저 흔들린다…지방 건설 살릴 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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