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의 모험자본 공급 기조에 맞춰 대규모 펀드레이징 마무리에 나선 위탁운용사(GP)들이 때 아닌 행정 절차 마비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국내 자본시장의 양대 축인 국민연금공단과 한국산업은행이 펀드 정관 조항을 두고 팽팽한 주도권 싸움을 벌이면서, 그 사이에 낀 운용사들의 펀드 결성 시한만 촉박해지는 모양새다.
28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최근 국민연금과 산은의 출자 자금을 배정 받은 위탁운용사(GP)들이 블라인드펀드(투자처를 정하지 않은 펀드) 정관 날인 단계에서 난항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주요 출자자(LP)인 두 기관이 특정 세부 조항을 두고 일치된 의견을 내지 못한 채 서류 공방만 주고 받고 있기 때문이다.
통상 정관에는 투자 범위와 존속기간, 운용보수, 성과보수는 물론 핵심인력, 이해상충 방지, 투자 제한, LP 보고 의무 등 펀드 운용 전반에 관한 세부 규정이 담긴다. GP들은 통상 주요 LP의 의견을 반영해 정관을 작성하지만, 이번처럼 양측의 요구가 엇갈리면 어느 한쪽의 요구만 받아들이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정관 날인 단계는 통상 마무리 절차로 본다. 문제는 펀드 운영의 매뉴얼이 되는 정관이 협의되지 않으면, 다른 매칭 출자자들과의 후속 계약을 진행하는 행정 절차가 도미노처럼 올스톱된다는 점이다.
현재 일부 운용사는 자금 매칭과 클로징 작업을 사실상 마무리해 두고도, 양대 LP의 승인이 떨어지지 않아 한 달 가까이 난항을 보이는 것으로 전해졌다. 문제는 행정 절차 지연이 단순히 서류 작업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블라인드펀드가 최종 결성되지 않으면 투자 집행도 시작할 수 없다. GP 입장에서는 이미 투자 검토를 마친 기업들의 일정까지 조정해야 하고, 투자 유치를 기다리던 스타트업이나 중견 기업들도 자금 조달 계획을 다시 짜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IB 업계 관계자는 "기관 간의 기싸움 속에서 애가 타는 것은 운용사들과 투자를 기다리는 스타트업들"이라며 "정관 조항 하나 때문에 공들여 모은 자금의 집행이 지연되면서, 모험자본 시장의 활력을 높이겠다는 당초의 정책 취지가 무색해 보인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