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0년대 초반을 휩쓴 셔플 댄스가 다시 등장했습니다. 그룹 키키(KiiiKiii)의 신보에서인데요. 멤버들은 신곡 '팝 오프 팝 오프(Pop Off Pop Off)' 뮤직비디오에서 경쾌한 셔플 스텝을 밟고, 플래시를 터뜨리며 홈파티를 즐깁니다. 옛 인스타그램 사진을 떠올리게 하는 빛바랜 필터도 등장해 반가움을 자아내죠.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 듯한 풍경은 컴백 전부터 예고됐습니다. 키키는 미니 3집 '와이키키(WhyKiiiKiii)'의 프로모션 사이트를 여행사 홈페이지처럼 꾸며 선보인 바 있는데요. 폴더폰 화면과 디지털카메라로 방금 찍은 듯한 사진, 과거 인터넷 문화를 떠올리게 하는 문구를 곳곳에 배치하며 앨범 전체를 하나의 레트로 여행으로 만들었습니다.
2000년대의 로우라이즈와 디지털카메라 등이 'Y2K'라는 이름으로 돌아오더니 이제는 2010년대의 춤과 패션, SNS 문화까지 새삼 주목받고 있는 모습이죠. 한때 가장 새롭고 세련된 것으로 여겨졌던 유행도 어느새 레트로가 된 셈입니다. 복고의 시계는 언제 이렇게 빨라진 걸까요.

키키는 10일 세 번째 미니앨범 '와이키키'를 발매했습니다. 앨범명은 그룹명과 미국 하와이 호놀룰루의 인기 여행지 와이키키를 결합하면서 '왜 키키인가(Why KiiiKiii)'라는 당돌한 질문을 던졌는데요. 그 질문의 답으로 아침부터 새벽까지 이어지는 여름의 순간들을 하나의 감각적인 코스로 엮었습니다.
컴백 프로모션 역시 실제 여행 상품을 고르는 과정처럼 꾸몄습니다. 공식 홈페이지에 '와이키키 투어'라는 이름을 붙이고 하루 24시간을 4시간씩 6개 구간으로 나눴는데요. 교통편과 조식, 사진 촬영, 밤 문화 등 시간대별 여행 상품을 선택하면 각 수록곡의 분위기를 담은 이미지와 영상을 만나볼 수 있도록 했죠. 멤버들은 투어 가이드로 변신해 이용자들을 앨범 속 세계로 이끌었습니다.
디지털 기기를 활용한 방식도 눈길을 끕니다. 수록곡 '캔디 핑크 매직 홀 플립 폰(Candy Pink Magic Hole Flip Phone)'의 페이지에는 추억의 분홍색 폴더폰 '매직홀'이 등장하는데요. 폴더를 열고 화면 속 메뉴를 누르면 메시지와 사진을 확인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여기에 디지털카메라로 찍은 듯한 사진과 반짝이는 글자, 하트와 별 장식을 더했고요. 미니홈피, 인터넷 소설 등 인터넷 문화의 요소도 적극 활용해 눈길을 끌었습니다.
타이틀곡 '팝 오프 팝 오프'에서는 복고의 시계가 2010년대 초반으로 향합니다. 강렬한 신스 사운드에 당시 세계적으로 유행한 셔플 댄스를 포인트 안무로 넣었는데요. 멤버들이 자유롭게 뛰노는 홈파티 장면에는 플래시를 정면으로 터뜨린 사진과 빛바랜 색감, 과장된 필터 효과를 사용해 2010년대 초 SNS에 올렸을 법한 이미지를 떠올리게 했습니다.
스타일링 역시 과거의 추억에서 착안, 키키의 엉뚱한 매력을 한껏 담아냅니다. 색색의 선글라스와 화려한 액세서리, 패턴 스타킹, 여러 아이템을 겹쳐 입은 레이어드 룩 등이 등장하는데요. 특정 시기의 패션을 그대로 복원하기보다 2000년대 후반부터 2010년대 초반까지 유행한 요소를 키키만의 방식으로 자유롭게 조합한 모습입니다.
키키가 보여준 레트로는 하나의 연도를 충실히 재현하는 데 머물진 않습니다. 폴더폰과 디지털카메라부터 셔플 댄스와 지금은 사라진 SNS 속 필터까지, 서로 다른 시기의 추억을 한데 모아 하나의 세계관으로 만들었죠. 그중에서도 특히 눈에 띄는 건 불과 10여 년 전까지 거리와 온라인을 장악했던 '2010년대 감성'입니다.

2010년대 감성을 꺼내 든 건 키키만이 아닙니다. 올해 초부터 SNS에서는 '2026 is the new 2016'이라는 문구가 빠르게 퍼졌는데요. 이용자들은 2016년에 찍은 사진을 다시 올리거나 당시 유행한 옷과 화장, 각종 온라인 챌린지를 재현하며 10년 전 모습을 꺼내 들었죠.
소환된 장면도 다양합니다. 스냅챗의 강아지·꽃 왕관 필터부터 목에 딱 붙는 초커와 진한 매트 립, 증강현실(AR) 게임 포켓몬고, 물병을 던져 똑바로 세우는 보틀 플립과 마네킹 챌린지까지 2016년을 상징했던 유행이 줄줄이 등장했는데요. 미국 연예 매체 피플에 따르면 올해 1월 기준 틱톡에서 해시태그 '#2016'을 단 게시물은 170만 건을 넘어섰습니다.
패션계도 발 빠르게 반응했습니다. 패션지 보그는 올해 다시 돌아올 2016년 대표 아이템으로 스키니진과 보머 재킷, 앵클부츠, 발레 플랫, 밀레니얼 핑크 등을 꼽은 바 있습니다. 과거를 그대로 복제하기보단 현재의 취향과 필요에 맞게 재해석하는 방식으로 돌아오고 있다고 설명했죠.
2010년대의 귀환은 옷장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당시를 대표한 체인스모커스의 '클로저(Closer)'도 다시 울려 퍼지고 있는데요. 체인스모커스는 올해 세계적인 음악 페스티벌 '투모로우랜드 2026(tomorrowland 2026)' 무대에서도 이 곡을 선보였습니다. 체인스모커스 공식 인스타그램에 게재된 무대 영상은 14일 기준 1800만 회 이상의 조회 수를 기록하며 호응을 받았죠. "이 시대가 그립다"는 댓글은 수만 개의 '좋아요'를 기록하며 공감을 자아냈습니다.
'인디 슬리즈(Indie Sleaze)' 역시 빠지지 않습니다. 2000년대 후반부터 2010년대 초반까지의 인디 음악과 밤 문화, 텀블러를 비롯한 온라인 문화를 배경으로 한 스타일을 일컫는 말인데요. 몸에 붙는 스키니진과 낡은 밴드 티셔츠, 가죽 재킷, 애니멀 프린트, 번진 아이라인 등이 대표적입니다. 플래시를 강하게 터뜨려 찍은 거칠고 즉흥적인 파티 사진도 이 감성을 이루는 중요한 요소죠. 최근 수년간 패션계를 주도한 미니멀리즘이나 '조용한 럭셔리'와 정반대에 놓인 자유분방하고 반항적인 분위기가 매력으로 통합니다.
관심은 실제 검색 동향에서도 드러납니다. 구글 트렌드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인디 슬리즈' 검색 관심도는 최근 5년간 5000% 급등했는데요. 2024년 8월 검색 관심도 100을 찍은 뒤에도 지난달 99를 기록하는 등 꾸준한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다만 지금의 인디 슬리즈는 과거의 모습을 그대로 되풀이하지 않습니다. 당시의 거칠고 즉흥적인 분위기는 가져오되 보다 정돈된 스타일로 풀어내거나 찢어진 청바지 등 일부 요소만 현재의 옷차림에 더하는 식인데요. 한동안 촌스럽다고 여겨졌던 2010년대 패션이 익숙함과 낯섦을 동시에 지닌 새로운 선택지로 돌아온 셈입니다.

패션계에는 이른바 '20년 법칙'이 있습니다. 유행이 촌스럽게 느껴지는 시기를 지나 다시 새롭게 받아들여지기까지 약 20년이 걸린다는 통설인데요. 2010년대 유행이 불과 10년 만에 돌아온 지금은 이 공식도 옛말이 된 듯합니다.
여기에는 언제든 과거를 꺼내 볼 수 있는 디지털 환경이 영향을 미쳤습니다. 스마트폰 갤러리와 SNS에는 수년 전 일상과 유행이 고스란히 남아 있고, 알고리즘은 이를 다시 이용자의 눈앞에 가져다 놓는데요. 과거의 이미지를 직접 찾아 나서지 않아도 '몇 년 전 오늘'이나 추천 콘텐츠를 통해 자연스럽게 마주하는 시대가 된 겁니다.
재넬 윌슨 미국 미네소타 덜루스대 사회학 교수는 AP통신에 기술의 발달로 과거 또는 재구성된 과거의 모습을 매우 손쉽게 접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습니다. 지난주의 일까지 '그때가 좋았다'고 떠올릴 수 있을 정도로 향수의 대상이 가까워졌다는 건데요. 최근의 기억까지 반복적으로 소환되면서 과거와 현재 사이의 거리도 빠르게 좁아지고 있습니다.
2010년대 자체를 향한 그리움도 맞물렸습니다. 1월 영국 BBC는 2016년을 향한 젊은 세대의 관심을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과 연결했는데요. 심리학자 클레이 라우틀리지는 AI가 고용에 영향을 미치는 등 큰 변화와 혼란을 겪을 때 사람들이 위안을 얻고자 젊은 시절을 돌아보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같은 유행을 바라보는 세대별 시선이 다르다는 점도 주목할 만합니다. 2010년대를 어린 시절이나 청소년기로 보낸 Z세대에게 셔플 댄스와 초기 SNS 필터는 직접 경험한 추억인데요. 반면 당시 기억이 희미한 Z세대와 알파세대에게는 처음 접하는 새로운 이미지에 가깝죠. 하나의 유행이 누군가에게는 반가움을, 누군가에게는 신선함을 주는 셈입니다.
키키가 폴더폰과 셔플 댄스를 자신들만의 콘셉트로 엮고, 인디 슬리즈 패션이 지금의 옷차림과 어우러져 돌아온 것처럼 익숙한 요소에 새로운 맥락을 더하는 흐름이 요즘 레트로 트렌드에서 특히 돋보이는데요. 다음에 돌아올 유행 역시 먼 과거가 아닌, 우리의 스마트폰 갤러리 어딘가에서 다음 차례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