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손기술도 데이터가 된다”…원익로보틱스, 로봇핸드 피지컬 AI 승부수 [기술 속국 탈출기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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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을 비롯한 첨단 산업이 빠르게 확장되며 반도체를 포함한 다양한 제조업 분야에서 새로운 성장 국면이 펼쳐지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완제품 기업들이 주목받고 있지만, 그 기반에는 소재·부품·장비(소부장) 기업들의 기술력이 자리하고 있다. 반도체는 물론 로봇, 디스플레이 등 산업 전반에서 소부장은 기술 한계를 돌파하는 출발점이자 방향을 제시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본지는 다양한 산업의 소부장 기업 대표들을 릴레이로 만나 기술 변화의 흐름과 시장에 대한 진단을 들어본다. 현장에서 바라본 기회와 위기, 그리고 산업 생태계가 나아갈 방향을 함께 짚어본다.

김학래 원익로보틱스 대표 인터뷰
인구절벽 해법으로 공장 자동화 제시
“숙련공의 손기술, AI가 이어받아야”
MIT·스탠퍼드와 10년 데이터 생태계 구축

▲김학래 원익로보틱스 대표가 4일 경기 안양시 원익로보틱스 연구소에서 이투데이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신태현 기자 holjjak@ (이투데이DB)

“대한민국 공장을 바꾸고 싶었습니다.”

김학래 원익로보틱스 대표가 기자와 마주 앉아 가장 먼저 꺼낸 말이다. 거창한 사업 계획이나 시장 전망보다 먼저 나온 단어는 '공장'이었다. 삼성전자와 삼성디스플레이에서 35년 동안 생산기술과 자동화를 담당했던 그는 지금도 스스로를 로봇 기업 경영자라기보다 '공장을 바꾸는 사람'에 가깝게 표현했다.

실제로 그의 이력 대부분은 제조 현장과 맞닿아 있다. 삼성전자 글로벌기술센터와 삼성디스플레이 생산기술센터에서 근무하며 전 세계 생산기지에 자동화 설비를 구축했다. 브라질과 멕시코, 중국 등 삼성전자가 운영하는 수십 개 생산거점을 오가며 공정 자동화 시스템을 설계하고 설치했다.

“35년 동안 공장을 바꿨고, 앞으로도 그럴 것”

김 대표는 “생산기술 조직은 공장을 자동화하기 위한 설비를 설계하고 개발해 실제 양산까지 연결하는 역할을 한다”며 “수십 년 동안 공장이 바뀌는 과정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봤다”고 말했다.

그가 기억하는 공장의 변화는 단순한 생산성 향상이 아니었다. 수백 명이 빼곡하게 들어서 있던 생산라인에 자동화 설비가 도입되면 절반 이상의 인력이 줄어들었다. 대신 생산량은 늘었고 품질은 더 안정적으로 유지됐다.

김 대표는 “사람은 컨디션에 따라 품질 편차가 생기고 숙련도에 따라서도 차이가 난다. 하지만 설비와 로봇은 다르다”라면서 “좋은 원재료가 들어오고 제대로 된 프로그램이 적용되면 같은 품질을 반복적으로 만들어낸다. 생산성과 품질이 동시에 좋아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러한 경험이 결국 원익로보틱스로 향하게 만든 원동력이었다고 설명했다.

원익로보틱스에 합류한 것은 5년 전이다. 당시 회사는 지금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인원은 20명 안팎에 불과했고 주요 사업은 상업용 서비스 로봇 중심이었다.

특히 서빙로봇 시장에 대한 판단이 결정적이었다. 김 대표는 “중국 제품과 원가 경쟁이 안 됐다. 상업용 서빙로봇으로는 승부를 낼 수 없다고 판단했다”며 “결국 산업용 자율주행 로봇과 로봇핸드 쪽으로 방향을 바꿨다”고 했다.

이후 원익로보틱스는 조직을 대대적으로 재정비했다. 연구개발 인력을 확대했고 산업용 자동화 기술 확보에 집중했다. 현재 임직원 수는 80명을 넘어섰다.

그는 “아직 인력 투자와 연구개발 비중이 높아 수익성 자체가 중요한 단계는 아니다”라면서도 “산업 자체가 이제 막 본격적으로 커지기 시작한 만큼 성장 가능성은 매우 크다고 본다”고 말했다.

김 대표가 보는 미래 제조업의 가장 큰 위협은 단순한 인건비 상승이 아니다. 인구 감소다.

숙련공의 손기술, AI 데이터로 남긴다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생산가능인구가 줄어들고 있다. 제조업 현장은 이미 구인난을 호소하고 있다. 특히 지방 산업단지에서는 젊은 인력을 찾기 어려운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그는 “인구 감소와 제조업 기피 현상이 동시에 발생하고 있다”며 “이 상태가 지속되면 단순히 사람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산업의 경쟁력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고 말했다.

더 심각한 문제는 기술 단절이다. 현장의 숙련공들은 수십 년 동안 몸으로 축적한 노하우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후배 세대가 제조 현장으로 들어오지 않으면 그 기술암묵지 역시 함께 사라질 수밖에 없다.

김 대표는 “결국 숙련 작업자의 경험과 기술을 데이터로 남겨야 한다”며 “카메라와 센서로 작업 과정을 기록하고 AI가 학습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가 피지컬 AI에 주목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최근 AI 산업의 화두는 생성형 AI다. 하지만 김 대표는 진짜 변화는 제조 현장에서 시작될 것이라고 본다.

그는 “지금까지 AI는 컴퓨터 안에 있었고 문서를 작성하고 이미지를 생성하고 데이터를 분석했다”며 “앞으로는 그 AI가 물리적인 기계 안으로 들어가게 된다. 로봇이 사람처럼 보고 판단하고 움직이는 단계가 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학래 원익로보틱스 대표가 4일 경기 안양시 원익로보틱스 연구소에서 이투데이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 신태현 기자 holjjak@ (이투데이DB)

그는 이를 '피지컬 AI'라고 정의했다. 피지컬 AI의 핵심은 데이터다. 특히 사람 손이 수행하는 작업 데이터를 얼마나 정교하게 수집하고 학습시키느냐가 중요하다.

계란도 딸기도 집는다…촉각 갖춘 로봇핸드

그리고 원익로보틱스는 이 지점에서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회사의 대표 제품인 '알레그로핸드(Allegro Hand)'는 인간 손 구조를 모사한 고자유도 로봇핸드다. 단순히 집게처럼 물체를 잡는 수준이 아니라 손가락 각각을 독립적으로 움직이며 다양한 형태의 물체를 조작할 수 있다.

현재 시장에 나와 있는 상당수 로봇 그리퍼가 단순 집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과 달리 알레그로핸드는 사람 손에 가까운 움직임 구현을 목표로 개발됐다. 손가락마다 독립 구동 구조를 적용했고 관절 하나하나를 정밀하게 제어할 수 있다.

김 대표는 “사람 손과 비슷하게 움직이려면 손가락마다 자유롭게 제어가 가능해야 한다”며 “물체를 단순히 집는 것이 아니라 회전시키고 방향을 바꾸고 조립까지 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공개한 '알레그로 핸드 V5 센스'는 여기서 한 단계 더 진화했다. 기존 로봇핸드가 움직임 구현에 집중했다면 V5 센스는 촉각 구현에 초점을 맞췄다.

손끝에는 압력 센서가 내장돼 있다. 물체를 잡는 순간 발생하는 압력을 실시간으로 감지한다. AI는 이 데이터를 바탕으로 물체 종류와 상태를 판단하고 적절한 힘을 계산한다.

그는 “계란을 잡을 때와 빈 캔을 잡을 때 필요한 힘은 다르다. 사람은 무의식적으로 조절하지만 로봇은 데이터를 통해 배워야 한다”며 “결국 센서가 사람의 촉각 역할을 하는 셈”이라고 부연했다.

실제 제조 현장에서 로봇이 사람 손을 완전히 대체하지 못했던 가장 큰 이유 역시 촉각 부족이었다.

물체를 인식하는 것은 카메라로 가능하다. 하지만 어느 정도 힘으로 잡아야 하는지, 미끄러지는지, 파손 위험은 없는지 판단하는 것은 훨씬 어렵다.

김 대표는 “손끝에서 감지된 데이터를 데이터셋으로 만들고 AI가 이를 학습하는 구조가 중요하다”며 “결국 피지컬 AI의 출발점은 센서”라고 말했다.

경쟁력은 하드웨어 아닌 '10년 데이터’

원익로보틱스는 11년 이상 로봇핸드 사업을 이어오고 있다. 단순히 제품 판매에 그치지 않고 세계 주요 대학과 연구기관에 연구 플랫폼을 공급했다. MIT와 스탠퍼드대학교를 비롯한 글로벌 연구기관들은 알레그로핸드를 활용해 AI와 로봇 관련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축적된 데이터는 다시 알레그로핸드 생태계로 돌아온다. 김 대표는 “새로운 연구자들은 기존 연구 결과를 활용해 더 발전된 연구를 진행한다”며 “10년 넘게 축적된 데이터와 연구 인프라는 쉽게 따라올 수 없는 경쟁력”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것이 단순한 제품 경쟁력을 넘어서는 진입장벽이라고 강조했다. 김 대표는“하드웨어는 언젠가 따라올 수 있다. 하지만 수년 동안 축적된 데이터와 연구 생태계는 단기간에 만들 수 없다”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엔비디아의 로봇 시뮬레이션 플랫폼 '아이작 심(Isaac Sim)'을 활용한 강화학습도 진행 중이다. 강화학습은 사람이 직접 정답을 알려주는 방식이 아니다. 로봇이 스스로 수많은 시행착오를 반복하며 최적의 동작을 찾아가는 구조다.

김 대표는 “최근에는 딸기처럼 복잡한 형태의 물체를 다루는 연구도 진행하고 있다”며 “강화학습이 발전할수록 로봇이 예상하지 못한 환경에서도 대응할 수 있게 된다”고 설명했다.

물론 그는 현재 피지컬 AI 열풍에 대해서는 다소 신중한 시각을 보였다. 기술은 빠르게 발전하고 있지만 실제 제조 현장에서 사람을 대체한 사례는 아직 많지 않다는 주장이다.

자동차 자율주행을 예로 들었다. 그는 “자율주행차도 오랜 시간 연구했지만 여전히 완전 자율주행 단계는 아니다. 제조 현장은 더 어렵다”면서 “불량이 발생하면 안 되고 생산이 멈춰도 안 된다. 그래서 검증되지 않은 기술을 쉽게 적용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럼에도 그는 2~3년 안에 의미 있는 변화가 나타날 것으로 전망했다.

“화낙의 시대에서 피지컬 AI의 시대로”

로봇 산업 이야기가 나오자 자연스럽게 일본 이야기도 이어졌다.

김 대표는 일본을 누구보다 높게 평가했다. 그는 “한때 일본은 우리가 감히 따라가기 어려운 나라였다”며 “소재와 부품, 산업용 로봇 분야에서는 지금도 강력한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김학래 원익로보틱스 대표가 4일 경기 안양시 원익로보틱스 연구소에서 이투데이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신태현 기자 holjjak@ (이투데이DB)

실제로 일본 화낙(FANUC)은 산업용 로봇 분야의 절대 강자다. 세계 제조업 자동화를 상징하는 기업으로 꼽힌다. 하지만 AI 시대 들어 상황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고 그는 진단했다.

김 대표는 일본 기업들이 기존 성공 경험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반면 한국 기업들은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면 상대적으로 빠르게 방향을 전환한다고 평가했다.

특히 AI와 디지털 전환 과정에서 이러한 차이가 두드러졌다고 설명했다.

김 대표는 “반도체도 그랬고 AI 역시 한국은 위험을 감수하면서 투자하는 반면, 일본은 결정 과정이 길고 신중하다”며 “장점도 있지만 변화가 빠른 시대에는 단점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최종 목표는 '불 꺼진 공장’

그의 최종 목표는 단순히 로봇을 많이 파는 기업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위험하고 반복적인 작업에서 벗어나고, 숙련 기술이 데이터로 축적되며, 공장이 스스로 운영되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김 대표는 지난 40년간의 공장 변화를 짚으며, 향후 10년은 AI와 로봇이 제조업 혁신을 이끌어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특히 기술 융합을 통해 한국 제조업이 한층 더 강해질 수 있다는 확신을 내비쳤다. 그는 과거부터 이어온 자신의 본령은 결국 ‘대한민국 공장의 체질 개선과 변혁’에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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