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은 어떻게 전쟁을 품었나…‘피란수도’서 찾은 세계유산 참뜻[르포][D-50 유네스코 세계유산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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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만 피란민 품은 공동체…‘방 하나 내어주기 운동’으로 이어진 공존의 역사
세계 유일 유엔기념묘지 품은 도시…국제 연대와 인류애의 현장 ‘유엔기념공원’
세계유산위원회 개최 앞둔 부산…피란수도 유산, 세계유산 등재 향한 발걸음

▲부산근현대역사관 전경 (송석주 기자 ssp@)

전쟁은 끝났지만 부산에는 아직 그 시간이 남아 있었다. 부산근현대역사관에는 임시수도의 기억이, 재한유엔기념공원에는 국제 연대의 흔적이 곳곳에 보였다. 국가를 지탱했던 도시이자 세계를 품었던 도시. 제48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부산 개최를 앞두고 진행된 ‘피란수도 부산 유산 답사’는 부산이 왜 세계유산으로 거론되는지 따라가는 여정이었다.

국가유산청은 26일 ‘피란수도 부산 유산 답사’ 팸투어를 진행했다. 이번 답사는 2026년 대한민국 최초로 부산에서 열리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를 50여일 앞두고, 왜 지금 ‘피란수도 부산’이 세계유산으로 논의돼야 하는지를 현장에서 확인하는 자리였다.

부산은 1950년부터 1953년까지 1023일 동안 대한민국 임시수도 역할을 수행하며 정부와 국회, 법원 등 국가기능을 유지했던 도시였다. 인구 30만 규모 도시가 약 100만 명의 피란민을 품었고, ‘방 하나 내어주기 운동’처럼 공동체 생활 방식도 만들어냈다. 또 전 세계 63개국이 전투와 의료, 물자 지원 등에 참여했다. 부산은 국제 협력과 연대가 어우러진 살아있는 현장이었다.

▲26일 부산근현대역사관 내부 전시를 둘러보고 있는 시민의 모습. (송석주 기자 ssp@)

부산근현대역사관은 피란수도 부산 유산 11개 구성유산 가운데 하나다. ‘미국대사관 겸 미국공보원’으로 사용됐던 곳으로 한국 전쟁 시기 국제 외교와 국제 연대의 현장이었다. 안영신 부산시 문화유산과장은 “전쟁과 피난, 강제 이주의 문제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라며 “피란수도 부산이 전쟁과 위기 속 도시와 공동체의 작동 방식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설명했다.

안 과장은 최근 세계유산 등재 흐름의 변화도 설명했다. 그는 “과거 세계유산이 고대 문명이나 궁전, 종교 유산 중심이었다면 최근에는 역사 도시와 산업 유산, 전쟁과 난민의 기억, 현대 유산 등 도시와 시스템 자체를 중요한 유산으로 바라보고 있다”며 “유산의 개념이 오래된 건축물에서 인류의 경험과 기억으로 확대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피란정부와 피란민의 삶, 국제 원조와 국제 연대의 경험은 경무대와 임시중앙청, 부산항 제1부두, 아미동·우암동 피란주거지, 재한유엔기념공원 등 11개 구성유산으로 이어진다. 피란수도 부산의 경험이 하나의 도시 시스템으로 연결돼 있는 것이다.

세계 유일 유엔기념묘지…부산에 남은 국제 연대의 기억

▲재한유엔기념공원 전경 (송석주 기자 ssp@)

부산근현대역사관을 나와 찾은 곳은 재한유엔기념공원이었다. 초록빛 잔디 위로 바람이 길게 지나갔다. 이곳은 세계 유일의 유엔기념묘지로 세계평화와 자유를 위해 생명을 바친 유엔군 전몰 장병들이 잠들어 있는 장소다. 묘지는 1951년 1월 유엔군 사령부가 전사자 매장을 위해 조성했고, 같은 해 4월부터 개성·인천·대전·대구·밀양·마산 등에 가매장돼 있던 유엔군 전몰장병들의 유해가 이곳에 안치되기 시작했다.

강동진 경성대학교 교수는 이곳에서 피란수도 부산 유산이 왜 세계유산 등재기준 가운데 ‘국제 연대’와 연결되는지 설명했다. 그는 “부산은 세계유산 등재 기준 가운데 3번과 6번을 선택하고 있는데, 특히 오늘 본 두 곳은 국제 연대와 깊은 관계를 가진 현장”이라고 말했다. 세계유산 등재기준 3번은 문화적 전통과 문명의 특출한 증거를 요구하는 기준이다. 6번은 사건과 사상, 인류 보편 가치와 직접 연결되는 유산에 적용된다.

▲재한유엔기념공원에 설치된 비석.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해 목숨을 바친 용감한 이들을 기리며"라고 써있다. (송석주 기자 ssp@)

강 교수는 “한국전쟁은 1949년 개정된 제네바협정을 실제로 실행한 최초의 현장”이라며 “유엔군뿐 아니라 국군, 적군까지 포용해야 했던 상황이었다. 부산에는 적군 묘지까지 존재했다”고 말했다. 이어 “부산은 100만 명 이상의 피란민을 품었고 유엔군과 국군의 유골, 그리고 적군까지 품었던 도시였다”며 “한국전쟁으로 생긴 여러 후유증을 끌어안았던 도시”라고 말했다.

강 교수는 또 피란수도 부산 유산이 인류애의 기억이라는 점도 강조했다. 그는 “등재기준 6번은 무형의 가치를 설명하는 기준”이라며 “피란수도 부산은 인류애와 국제 연대의 속성을 설명하는 유산”이라고 말했다.

재한유엔기념공원 묘역을 따라 걷다 보면 부산이 왜 ‘전쟁 속 세계를 품은 도시’였는지를 실감하게 된다. 피란민과 국가 시스템, 국제기구와 구호 활동, 그리고 유엔군과 적군의 기억까지 끌어안았던 도시가 바로 부산이다. 피란수도 부산 유산은 전쟁 속에서도 국가와 시민, 국제사회가 어떻게 연결되고 유지될 수 있었는지 보여주는 도시였다.

부산시는 현재 2030년 세계유산 등재를 목표로 절차를 밟고 있다. 2023년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등재됐고, 2025년에는 국가유산청 우선등재목록에 선정됐다. 최근에는 세계유산 예비평가 제출 심의도 통과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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