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의 이 한마디에 정치권과 주식시장이 동시에 흔들렸습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기업들이 AI 호황으로 막대한 돈을 벌 경우, 여기서 발생한 초과 세수를 국민에게 돌려줄 수 있느냐는 논쟁이 본격적으로 불붙은 겁니다.
시장은 즉각 민감하게 반응했습니다. 블룸버그통신은 김 실장의 ‘AI 국민배당금’ 제안이 한국 증시 급락의 배경 중 하나로 작용했다고 분석했습니다. 투자자들이 해당 발언을 사실상의 ‘횡재세’ 신호로 받아들이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AI 수혜주를 중심으로 매도세가 쏟아졌다는 겁니다.
하지만 정작 논쟁의 핵심은 단순히 “돈을 나눠주자”가 아닙니다. AI·반도체 슈퍼사이클로 발생하는 막대한 초과 세수를 국가가 어떤 원칙으로 관리할 것인가에 더 가깝습니다.

시장에서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내년도 법인세 규모가 100조원을 웃돌 수 있다는 관측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결국 AI·반도체 호황으로 늘어난 초과 세수를 어디에 활용할 것인가가 이번 논쟁의 핵심인 셈입니다.
12일 김 실장은 SNS를 통해 “AI 인프라 공급망에서의 전략적 위치가 구조적 호황을 만들고, 그것이 역대급 초과 세수로 이어진다면 그 돈을 어떻게 쓸 것인가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의당 고민해야 할 설계의 문제”라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과실의 일부는 구조적으로 국민에게 환원돼야 한다”며 이른바 ‘국민배당금제’를 제안했습니다. 청년 창업 자산, 농어촌 기본소득, 노령연금 강화, AI 전환 교육 등이 활용 예시로 언급됐습니다.

노르웨이는 북해 유전 발견 이후 석유·가스 수입을 국부펀드에 쌓아 장기 운용해왔습니다. 노르웨이 국부펀드인 ‘정부연기금 글로벌’은 석유 가격 변동이 경제를 흔들지 않도록 막고, 현재와 미래 세대가 자원 부의 혜택을 함께 누릴 수 있도록 설계됐습니다.
현재 노르웨이 국부펀드는 세계 최대 규모 국부펀드로 평가받습니다. 석유·가스 수익을 곧바로 소비하는 대신 글로벌 주식·채권·부동산 등에 투자해 장기 수익을 만드는 구조입니다.
김 실장의 문제의식도 여기에 가깝습니다. 반도체 호황으로 발생한 초과 세수를 그때그때 소진하는 대신 일정한 원칙 아래 국민 전체를 위해 활용할 수 있는 구조를 고민해보자는 취지입니다.
실제로 그는 “2021~2022년 반도체 호황기의 초과 세수는 사전에 설계된 원칙 없이 소진됐다”며 “이번 사이클 규모는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클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다만 한국의 반도체를 노르웨이의 석유와 단순 비교하기는 어렵다는 반론도 적지 않습니다. 석유는 국가 자원 성격이 강하지만, 반도체는 민간기업의 대규모 투자와 기술 개발, 글로벌 경쟁이 결합된 산업이기 때문입니다.

횡재세는 전쟁, 원자재 가격 급등, 산업 호황 등 외부 요인으로 특정 기업이 예상 밖의 초과 이익을 얻었을 때 추가로 부과하는 세금을 뜻합니다. 실제 유럽에서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에너지 기업들의 초과 이익에 대해 횡재세와 연대기여금 논의가 확산됐습니다.
투자자들은 김 실장의 발언을 두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같은 반도체 기업들에 대한 새로운 형태의 세금 신호로 받아들였습니다.
블룸버그통신은 “투자자들이 해당 제안이 실제 어떤 정책을 의미하는지 해석하는 과정에서 혼란이 커졌다”고 분석했습니다. 파이낸셜타임즈 역시 코스피 급락 원인 가운데 하나로 김 실장의 발언을 지목했습니다.
실제로 이날 코스피는 장 초반 8000선 돌파를 시도하다가 장중 한때 7400선까지 밀렸습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역시 급등 흐름에서 급락세로 전환했습니다.
반도체 산업은 글로벌 경쟁이 치열한 분야입니다. 기업 입장에서는 AI 호황으로 이익이 늘었다고 해서 정부가 추가 과세나 사실상의 이익 환수에 나설 경우 투자 여력과 경쟁력이 약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옵니다.
야권에서도 강한 비판이 이어졌습니다.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는 “삼성·하이닉스 당나귀 위에 어떻게 하면 짐을 더 얹을까 궁리하고 있다”고 비판했고, 송언석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반시장적 메시지”라며 김 실장의 경질까지 요구했습니다.
다만 김 실장은 이후 “기업 이익에 새로운 횡재세를 부과하려는 의도가 아니다”라고 해명했습니다. 돈 많이 번 기업에 세금을 추가로 더 걷겠다는 개념이 아니라, 이미 늘어난 초과 세수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에 대한 문제 제기였다는 설명입니다.
논란이 커지자 대통령실 역시 “내부 검토와 무관한 개인 의견”이라며 선 긋기에 나섰습니다.

특정 기업이 막대한 수익을 냈더라도 그 기반에는 국민 전체가 부담해온 사회적 비용과 국가적 투자가 깔려 있다는 겁니다.
반면, 반대 측은 반도체 산업의 경쟁 특성을 강조합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수익은 민간기업의 대규모 투자와 연구개발, 글로벌 리스크 부담의 결과라는 점에서 이를 사실상 ‘사회적 재분배’ 대상으로 보기 시작하면 투자 의욕과 산업 경쟁력이 약화될 수 있다는 논리입니다.
AI 국민배당금 논쟁은 이제 막 시작됐습니다. 이 논의가 한국형 국부펀드 구상으로 이어질지, 반도체 횡재세 논란으로 남을지, 혹은 일시적인 시장 해프닝으로 끝날지는 아직 알 수 없습니다.
국민배당금이 실제 현금 지급인지, 국부펀드 조성인지, AI 전환 교육과 복지 재원인지도 아직 명확하지 않습니다. 설계 방식에 따라 의미는 완전히 달라질 수 있습니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AI 시대의 과실을 누가, 어떻게, 얼마나 나눌 것인가는 앞으로 한국 경제가 피하기 어려운 질문이 됐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