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지가 지난주에 보도한 ‘붙잡은 미래, 냉동난자’ 기획보도를 위해 난자동결(냉동난자) 취재를 시작한 뒤 가장 많이 들은 질문이다. 병원 상담실에서도, 보건복지부 정책 담당 공무원에게서도, 심지어 같은 기자들 사이에서도 비슷한 반응이 돌아왔다. <본지 6~8일자 '붙잡은 미래, 냉동난자' 참조>
난자 채취, 배란 주사, 가임력 검사 같은 단어 자체가 언론 현장에서도 낯선 영역에 가깝다. 그래서인지 처음에는 “이걸 왜 기자가 직접 취재해야 하느냐”는 반응도 적지 않았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여성의 몸 안에서 벌어지는 일인데도 정작 사회는 너무 오래 이 문제를 ‘개인 영역’으로만 밀어 넣어 왔다. 출산율은 국가 의제가 됐지만 정작 여성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 임신 가능성을 고민하고 어떤 불안 속에서 난자동결을 선택하는지는 공론장에서 거의 다뤄지지 않았다.
그래서 직접 들여다보기로 했다. 병원에 가서 상담을 받고, 가임력 검사를 받고, 실제 난자동결 과정과 현장을 취재했다. 숫자와 정책 문구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현실이 분명 존재한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취재 과정은 예상보다 훨씬 복잡하고 고됐다.
실제 시술 과정에서는 일정 기간 스스로 배에 주사를 맞아야 했고 채취 전까지 몸 상태 변화나 통증을 호소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병원에서는 “개인차가 크다”는 설명이 반복됐지만 그 ‘개인차’ 안에서 여성들은 실제로 불안과 비용 부담, 미래에 대한 압박까지 함께 감당하고 있었다.
더 놀라웠던 건 주변의 반응이었다. “아직 애 낳을 수 있는데, 굳이 그걸 왜 하느냐”, “결혼도 안 했는데 벌써?”, “출산 장려하려고 기사 쓰는 거냐” 등의 얘기가 들렸다. 심지어 한 의과대학 교수에게서는 “생명을 가지고 장난질하지 마라”는 말까지 들었다.
처음에는 순간적으로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동시에 이런 생각도 스쳤다. 누군가는 바로 이런 시선 때문에 자신의 고민조차 쉽게 털어놓지 못했겠구나.
난자동결을 둘러싼 논쟁은 단순히 의료 기술의 문제가 아니다. 여성의 삶과 경력, 결혼과 출산, 사회적 압박과 정책 공백이 한꺼번에 얽혀 있는 문제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동안 이 문제를 지나치게 쉽게 소비하거나 반대로 불편하다는 이유로 외면해 왔다.
실제 취재 과정에서 확인한 데이터는 더 복합적이었다. 국내 난자 보관량은 최근 10년 사이 급증했지만 정작 실제 사용률과 출산 연계 효과에 대해서는 정부조차 제대로 된 통계를 관리하지 못하고 있었다. 일부 지자체는 난자동결 지원을 시작했지만 지역별 기준은 제각각이었다.
그 사이 여성들은 각자의 선택을 홀로 감당하고 있었다. 누군가는 ‘혹시 미래에 후회할까 봐’ 난자를 얼렸고, 누군가는 결혼 계획이 없어도 ‘지금 아니면 늦는다’는 압박 속에서 병원을 찾았다. 또 누군가는 난자동결을 했다는 사실 자체를 주변에 숨겼다.
난자를 얼린다는 건 단순한 의료 행위가 아니다. 어떤 여성에게는 시간을 붙잡아 두려는 선택이고 어떤 여성에게는 불안한 미래에 대처하는 방편이며 또 다른 여성에게는 사회 구조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 전략에 가깝다.
그 현실을 직접 보고 들은 기자로서, 적어도 이 이야기를 ‘낯설다’는 이유만으로 다시 침묵 속에 밀어 넣고 싶지는 않았다. 저출생 문제를 이야기하면서 정작 여성들의 몸과 선택, 불안과 고민을 외면한 채 숫자만 논하는 사회라면 결국 답을 찾기 어렵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