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쟁과 유가, 인플레이션이라는 전통적 악재와 AI 설비투자 기대라는 성장 서사가 동시에 작동하는 모습이다. 세계 경제가 한쪽에서는 에너지 가격 충격을 걱정하면서도, 다른 한쪽에서는 AI 투자 랠리에 베팅하는 ‘이상한 양극화’에 들어섰다는 분석이 나온다.

호르무즈 해협은 중동산 원유와 액화천연가스(LNG)가 지나는 핵심 해상 통로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2025년 기준 하루 평균 약 2000만 배럴의 원유가 이 해협을 통해 수출됐다. 이는 세계 해상 원유 거래의 약 25%에 해당한다.
문제는 유가 상승이 정유업계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국제유가가 오르면 항공유, 선박유, 물류비, 석유화학 원료 가격이 먼저 반응하고 이후 수입물가와 소비자물가로 번질 수 있다. 중앙은행 입장에서도 유가 상승은 물가 안정 판단을 어렵게 만드는 변수다. 로이터도 이번 주 시장이 전쟁, 중앙은행 회의, 기술주 실적을 동시에 주시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번 주 글로벌 증시의 핵심 변수는 미국 빅테크 실적이다. 마이크로소프트, 알파벳, 아마존, 메타, 애플 등 주요 기술기업의 실적 발표를 앞두고 시장의 관심은 AI 데이터센터와 인프라 투자 규모에 쏠려 있다. 투자자들은 이들 기업이 AI 투자를 계속 늘릴지, 아니면 투자 속도 조절에 나설지를 주시하고 있다.
AI 랠리는 반도체 기업의 실적 기대도 키우고 있다. 로이터는 미국 반도체 업종의 1분기 이익 증가율 전망이 정보기술 업종 전체보다 훨씬 높게 제시됐다고 전했다. AI 서버와 데이터센터 투자 확대가 반도체 수요를 떠받치고 있다는 분석이다.
과거 유가 급등은 위험자산 투자심리를 압박하는 재료로 받아들여졌지만, 이번에는 AI 투자 기대가 반도체주를 중심으로 증시를 떠받치는 모습이다. 시장이 같은 날 원유 가격에는 불안을, 반도체주에는 기대를 반영하고 있는 셈이다.

반대로 유가 상승은 한국 경제에 부담이다. 한국은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국가다. IEA도 한국의 에너지 부문에 대해 화석연료 비중이 높고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크다고 평가했다. 국제유가 상승은 정유·석유화학 원가, 항공유, 물류비, 전기·가스요금 압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
국내 증시 역시 당분간 두 가지 상반된 변수의 영향을 받을 전망이다. 인공지능 설비투자 확대 기대감이 반도체 업종의 상승 동력으로 작용하는 반면, 국제유가 오름세는 기업의 원가 부담과 물가 상승 압력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에 따라 업종별 차별화 양상도 뚜렷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반도체 등 기술주에는 실적 개선 기대감이 반영되는 반면, 항공·해운·석유화학 및 내수 소비재 업종은 유가 상승에 따른 수익성 악화 우려가 커진 상황이다.
향후 시장의 방향성은 중동발(發) 지정학적 리스크의 장기화 여부와 미국 주요 빅테크 기업의 실적 발표 결과에 따라 갈릴 것으로 보인다. 호르무즈 해협 물류 차질이 원유 공급망에 미치는 영향과 함께, 이번 주 공개되는 주요 기술 기업들의 AI 인프라 투자 확대 기조 유지 여부가 주요 변수로 꼽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