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상업용 부동산 시장에서 새 주도권 경쟁이 본격화했다. 과거 이지스자산운용·마스턴투자운용·코람코자산운용으로 대표되던 이른바 ‘이·마·코’ 구도가 약해진 사이, 캡스톤자산운용·퍼시픽자산운용·코람코자산신탁을 묶은 이른바 ‘캡·퍼·코’가 시장의 새 축으로 부상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26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최근 상업용 부동산 시장에서는 ‘캡·퍼·코’라는 표현이 회자된다. 캡스톤자산운용, 퍼시픽자산운용, 코람코자산신탁이 올해 들어 서울 핵심 오피스와 물류센터, 리츠(REITs·부동산투자회사) 기반 오피스 등 주요 거래에서 잇따라 성과를 내면서다. 상업용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예전에는 대형 상업용 부동산 매물이 나오면 이지스와 마스턴, 코람코자산운용이 우선 매수 후보로 거론됐다"며 "최근에는 캡스톤과 퍼시픽, 코람코자산신탁이 실제 거래를 받아내는 빈도가 늘었다"고 말했다.
이러한 평가는 거래 시장 위축 속에서 더 선명하게 나타난다. 부동산자문사 젠스타메이트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서울 오피스 거래 규모는 2조8926억원으로 전 분기 대비 49% 감소했다. 경기 분당을 포함해도 거래 규모는 3조2634억원에 그쳤다. 거래량도 줄었지만, 평당 거래 가격은 오히려 보합 또는 상승세를 보였다. 특히 강남권역(GBD)은 평당 4067만원으로 통계 집계 이후 처음 4000만원을 넘어섰다. 거래는 줄었는데 가격 눈높이는 쉽게 내려오지 않는 것이다. 이 때문에 매수자 입장에서는 자금 조달 부담이 커졌고, 매도자로서는 거래 종결 가능성이 더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됐다.
이런 시장 분위기에서 캡스톤자산운용과 퍼시픽자산운용, 코람코자산신탁은 각각 다른 방식으로 딜을 성사시키며 입지를 넓혀갔다. 캡스톤은 올해 초 인천 영종도 소재 항공화물 물류센터 ‘아레나스 영종’을 이지스자산운용으로부터 약 4300억원대에 인수했다. 물류센터 시장 전반의 투자심리가 위축된 상황에서도 인천공항 인근 입지와 항공화물 수요, 반도체 물류 성장성이 뒷받침됐다. 성수동 소재 프라임급 오피스 빌딩의 선매입 지위도 얻어냈다. 마스턴투자운용이 보유하던 선(先)매입 지위를 캡스톤에 양도한 건이다. 거래 규모는 약 3300억원, 3.3㎡당 가격은 약 3640만원 수준으로 알려졌다. 성수동은 아직 전통적인 3대 권역은 아니지만 최근 정보기술(IT)·패션·콘텐츠 기업 수요가 유입되며 서울 오피스 시장의 신흥 업무지구로 부상 중이다.
상업용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비핵심 섹터라도 입지와 임차 수요가 뒷받침되면 과감히 들어가는 방식"이라며 "단순히 싸게 나온 자산을 담는 것이 아니라, 산업 수요와 입지 경쟁력을 결합한 것"이라고 말했다. 젠스타메이트 리포트에 따르면 올해 성수 지역에 약 5만2000평의 신규 공급이 예정됐으며, 2030년까지 총 19만평 규모의 공급이 계획됐다.
퍼시픽자산운용은 GBD와 도심권(CBD) 오피스를 잇달아 확보하며 보폭을 넓혔다. 지난해에는 과학기술인공제회와 함께 서울 강남구 삼성동 소재 엔씨타워1을 인수했다. 엔씨타워1은 엔씨소프트가 사옥으로 사용해 온 강남권 핵심 오피스 자산이다. 거래 규모는 약 4500억원 안팎으로 알려졌다. 올해 들어서는 을지트윈타워 인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며 CBD 대형 오피스 거래에 이름을 올렸다. 을지트윈타워는 을지로 일대 신축급 프라임 오피스로 안정적인 임차 수요와 입지를 갖춘 자산으로 평가된다. 해당 거래는 퍼시픽이 단순 중견 운용사를 넘어 서울 핵심 업무권역 대형 오피스를 받아낼 수 있는 자금 구조화 역량을 보여줬다는 평가다.
코람코자산신탁은 리츠 기반 거래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대형 오피스를 보유하거나 매각하는 과정에서 리츠·신탁 구조를 활용해 거래를 만들어내는 방식이다. 코람코자산신탁은 '코람코가치투자숭례리츠'를 통해 서울 남대문 소재 에티버스타워를 2647억원, 평당 2271만원에 인수했다. 해당 거래의 매도자는 캡스톤자산운용이다. 캡스톤이 자산을 매각하고 코람코자산신탁이 이를 받아 리모델링과 임대료 상승을 추진하는 구조다.
이들 중견 운용사는 GBD 권역의 주요 매도자로 등장하기도 했다. 강남역 인근 케이스퀘어 강남Ⅱ는 생활용품 브랜드 다이소 운영사인 한웰그룹이 3550억원, 평당 5348만원에 인수했다. 코람코자산신탁은 해당 거래의 매도자로 나섰는데, 이는 올해 1분기 GBD 권역 내 대표적인 고가 거래로 꼽힌다. 이들의 공통점은 침체된 시장에서도 각자의 방식으로 거래를 성사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캡스톤은 물류와 성수 오피스 시장에서 선별 투자 역량을 보였고, 퍼시픽은 강남·도심권 대형 오피스에서 기관 자금과 결합한 거래 실행력을 드러냈다. 코람코자산신탁은 리츠·신탁 기반의 오피스 거래에서 매수자와 매도자로 모두 등장하며 시장 내 영향력을 키웠다.
업계 관계자는 "과거에는 대형 운용사라는 이름 자체가 서울 핵심 권역 오피스 거래를 중심으로 투자자를 모을 수 있었다"며 "금리 부담과 공실 우려, 리파이낸싱(차입금 만기 재조달) 리스크가 커진 상황에서는 단순 체급보다 투자자를 설득하고 자금 구조를 짜는 능력이 더 중요한 평가 기준이 됐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