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국수 1만원 시대⋯"이젠 뭘 '서민음식'이라 불러야 하죠?" [이슈크래커]

기사 듣기
00:00 / 00:00

▲점심시간 직장인들이 서울 시내 한 식당가를 이용하고 있다. (뉴시스)

점심시간이 되면 직장인들은 먼저 가격표를 떠올립니다. 국물 있는 면 한 그릇으로 간단히 한 끼를 해결하겠다는 생각은 여전하지만, 계산은 더는 예전처럼 단순하지 않습니다. 서울에서는 이제 만원 한 장으로 칼국수 한 그릇도 사 먹기 어려워졌기 때문입니다.

한국소비자원 가격정보종합포털 '참가격'의 외식비 자료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 지역 칼국수 1인분 평균 가격은 1만38원으로 집계됐습니다. 서울 칼국수 평균 가격이 1만원 선을 넘어선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무너진 건 만원 선만이 아니다

▲2026년 3월 기준, 서울 지역 외식비 동향. (제미나이 AI 기반 편집 이미지)

오른 것은 칼국수만이 아닙니다. 같은 자료를 보면 지난달 서울 지역 냉면은 1만2538원, 비빔밥은 1만1615원, 삼계탕은 1만8154원으로 집계됐습니다. 대표적인 외식 메뉴 상당수가 이미 1만원을 넘어선 셈입니다. 반면 김치찌개백반은 8654원, 자장면은 7692원, 김밥은 3800원으로 아직 1만원 아래에 머물렀습니다. '서민 한 끼'라는 말이 붙어온 음식들 사이에서도 가격 차는 분명해졌습니다. 이제는 무엇이 싼지를 따지기보다, 무엇이 그나마 덜 비싼지를 살피게 된 상황입니다.

가격 상승 속도도 가볍게 넘길 수준이 아닙니다. 같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 외식비는 전년 동월 대비 김밥이 5.5%, 칼국수가 5.3%, 삼계탕이 4.6%, 삼겹살이 4.3%, 냉면이 3.5% 올랐습니다. 국가데이터처가 발표한 '2026년 3월 소비자물가동향'에서도 외식 물가는 전년 동월보다 2.8% 상승했습니다. 전체 소비자물가상승률이 2.2%였던 점을 고려하면, 밥 한 끼의 부담은 여전히 평균보다 빠르게 커지고 있다고 봐야 합니다.

서민음식은 원래 고정된 이름이 아니었다

▲서울 중구 명동 음식점에 칼국수 가격이 표시되어 있다. (뉴시스)

흥미로운 점은 칼국수가 애초부터 값싼 음식은 아니었다는 사실입니다.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따르면 '고려도경'에는 "고려에는 밀이 적기 때문에 화북에서 수입하고 있다. 따라서 밀가루 값이 매우 비싸서 성례(成禮) 때가 아니면 먹지 않는다"는 기록이 나옵니다. 한식진흥원도 칼국수 유래를 설명한 글에서 "6·25전쟁 이후 미국 원조 밀가루가 들어오면서 비로소 서민음식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고 소개했습니다. 지금의 '칼국수는 원래 싼 음식'이라는 인식이 사실은 비교적 최근에 형성된 기억이라는 뜻입니다.

다른 메뉴도 사정은 비슷합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따르면 자장면은 1960~1970년대 정부의 분식 장려 운동을 거치며 널리 퍼졌고, 그 과정에서 서민음식의 자리를 차지하게 됐습니다. 김밥은 1950~1960년대를 거치며 대중화했고, 1990년대 이후에는 전문점과 가맹점이 늘면서 '간편한 한 끼'의 대표 메뉴로 자리 잡았습니다. 결국 시대마다 가장 부담이 덜한 한 끼가 달라졌을 뿐, '서민음식'이라는 이름표가 특정 메뉴에 영구히 붙어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산업화 시기에는 자장면이, 도시형 간편식 문화가 확산한 뒤에는 김밥이 그 자리를 이어받았다고 보는 편이 자연스럽습니다.

이제는 메뉴보다 선택지의 문제다

▲서울 시내의 편의점에 도시락과 삼각김밥이 판매되고 있다. (뉴시스)

이제 서민음식은 식당 메뉴판 안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유통업계에 따르면 GS25·CU·세븐일레븐 등 편의점들은 도시락과 삼각김밥, 김밥 같은 간편식을 앞세워 '가성비 한 끼' 경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올해 1분기 수요만 봐도 흐름은 분명합니다. GS25는 김밥 카테고리 개편 이후 한 달간 김밥 매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0.1%, 고객 수는 20% 늘었다고 밝혔습니다. CU 역시 간편식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15.7% 증가했고, 세븐일레븐도 삼각김밥 매출이 17%, 김밥은 16%, 도시락은 14% 늘었다고 전했습니다. 바깥 점심값 부담이 커지자 소비자들이 편의점 도시락과 김밥, 삼각김밥을 간식이 아니라 '한 끼 대안'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는 뜻입니다.

구내식당도 같은 흐름 안에 있습니다. 점심값 부담이 커지면서 구내식당은 더는 싸게 한 끼를 때우는 곳에 머물지 않습니다. 앞서 현대백화점그룹 계열 현대그린푸드는 'H-로드트립'을 통해 전국 단체급식 사업장에서 유명 외식 브랜드와 셰프 협업 메뉴를 선보이겠다고 밝혔습니다. 다른 급식업체들도 비슷한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바깥밥이 비싸진 사이 구내식당은 가격 부담은 상대적으로 낮추고, 메뉴 경쟁력은 끌어올린 점심 선택지로 바뀌고 있는 것입니다. 아직 몇몇 메뉴가 '가장 가까운 서민음식'으로 남아 있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편의점 도시락과 삼각김밥, 구내식당까지 저비용 식사 자리를 나눠 갖는 구조가 굳어지는 분위기입니다.

칼국수 1만원 시대가 말해주는 것은 단순히 국수 한 그릇이 비싸졌다는 사실만이 아닙니다. 더 본질적인 변화는 서민음식의 정의가 달라졌다는 점입니다. 냉면과 칼국수는 여전히 흔하고 익숙한 메뉴이지만, 가격만 놓고 보면 더는 '싼 음식'이라고 부르기 어렵습니다. 반대로 김밥과 자장면, 백반, 편의점 간편식, 구내식당 등은 그때그때 가장 덜 부담스러운 한 끼로 다시 묶이고 있습니다. 결국 서민음식은 특정 메뉴를 가리키는 말이라기보다, 그때그때 가장 부담이 덜한 한 끼를 뜻해왔습니다. 칼국수 1만원 시대는 그 기준이 다시 달라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 좋아요0
  • 화나요0
  • 슬퍼요0
  • 추가취재 원해요0
주요뉴스
많이 본 뉴스
댓글
0 / 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