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점이 한둘이 아니다"...앨리스의 집에서 일어난 일 [읽다 보니,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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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교보문고)

이상한 점이 한둘이 아니다.

채광도 좋고 보안도 철저하며 시세보다 저렴하기까지 한 이 집. 하지만 이사 첫날부터 느껴지는 서늘한 시선과 이웃들의 묘한 태도는 단순한 기분 탓일까. 소설 '테라피스트'의 주인공 앨리스가 마주한 이 의구심은, '보이지 않는 정보'가 개인의 일상에 어떤 균열을 내는지 집요하게 파고든다.

그들은 알고 있었다

주인공 앨리스는 연인 레오와 함께 런던의 폐쇄형 고급 주택 단지 '더 서클'로 이사한다. 철저한 보안, 대체로 친절한 이웃, 정돈된 풍경까지 모든 것이 이상적이다.

그러나 앨리스는 이사 첫날부터 누군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기묘한 불안감에 휩싸이고, 불안의 실체는 이웃들과의 파티에서 드러난다. 바로 2년 전, 앨리스가 잠들던 바로 그 방에서 전 거주자 니나가 남편에게 살해당했다는 사실이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이 사실을 이웃 모두가 알고 있었음에도 누구 하나 그녀에게 귀띔해주지 않았고, 믿었던 연인 레오조차 철저히 진실을 은폐했다는 점이었다.

앨리스가 진실을 파헤칠수록 '더 서클'은 세상에서 가장 폐쇄적이고 위험한 공간으로 변해간다.

숨겨진 정보와 왜곡된 거래

경제학에서 '레몬 시장(Lemon Market)'이란 판매자보다 정보가 적은 구매자가 결국 질 낮은 물건(레몬)만 사게 되는 시장을 말한다. 소설 속 앨리스의 선택은 이 이론이 현실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보여주는 전형적인 사례다.

부동산 시장에는 살인이나 자살 등이 발생한 이른바 '심리적 하자물'이 존재한다. 통상적으로 심리적 하자가 있는 매물은 일반 시세 대비 약 10~50% 수준의 가격 하락이 발생한다. 자살이나 타살 등 끔찍한 사건이 발생한 매물은 일반 시세에 비해 30~50% 정도 가격이 하락하며 고독사나 자연사는 10~20% 낮은 가격에서 거래된다.

그러나 이러한 정보가 은폐되거나 충분히 공유되지 않을 경우, 할인 요인은 사라지고 매수자는 정상 가격으로 위험을 떠안게 된다. 결국 정보 비대칭은 단순한 불공정을 넘어 실질적인 자산 손실로 이어지는 셈이다.

앨리스의 비극은 현실의 2030세대가 겪는 주거난과 닮아 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해 전세사기 피해자 가운데 약 75%가 사회초년생인 2030세대인 것으로 나타났다. 임대인의 미납 국세나 선순위 보증금 현황 등 '보이지 않는 정보'는 초보 매수자들에게 덫이 되는 것이다.

임대인 정보 공개 의무화나 사고 이력 고지 강화는 단순한 규제가 아니라 이러한 왜곡을 바로잡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다. 정보의 투명성이 확보될 때 비로소 시장은 정상적으로 작동할 수 있다.

당신의 집은 정말 안전한가

"레오는 모든 걸 알고도 왜 말해주지 않았을까." 앨리스는 같은 공간에 살고 있으면서도 진실에서 배제됐다는 사실에 더 깊은 불안을 느낀다.

우리는 집을 철저히 '자산'의 관점으로만 바라보는 데 익숙해졌다. 투자 수익률과 평당 시세가 집의 가치를 결정짓는 척도가 된 시대다. 그러나 집은 단순한 재화가 아니라, 개인의 삶이 머무는 중심이자 유일한 안식처여야 한다. 아무리 높은 시세를 자랑하는 집이라 할지라도, 그 안에서 심리적 안정과 신뢰를 얻지 못한다면 그곳은 더 이상 ‘집’이라 불릴 수 없다.

결국 진정한 '드림하우스'는 화려한 인테리어나 입지 조건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물리적 위험과 정보가 투명하게 공유되고, 그 바탕 위에서 거주자의 신뢰가 쌓일 때 비로소 공간은 온전한 의미를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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