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제도화 속도 내지만 범죄 악용 리스크도 동반
원화 스테이블코인 논의, 산업 육성 넘어 통제 설계 시험대

달러 연동 스테이블코인이 전 세계 시장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면서 스테이블코인이 사실상 ‘디지털 달러 유통망’으로 자리 잡았다. 미국은 이를 제도권 안으로 끌어들여 달러 영향력 확대를 노리지만, 자금세탁과 탈세 등 부작용 우려도 함께 커지는 모습이다. 국내 원화 스테이블코인 논의 역시 산업 육성만이 아니라 통제 체계 설계까지 함께 따져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가상자산 통계사이트 코인게코에 따르면 12일 기준 전체 스테이블코인 가운데 달러 연동 코인 비중은 98.53%로 집계됐다. 스테이블코인 시장이 사실상 달러 기반 디지털 유통망으로 굳었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 같은 시장 구조는 미국의 스테이블코인 제도화 논의가 단순한 코인 산업 육성 차원을 넘어선다는 해석에 힘을 싣는다. 달러 스테이블코인이 글로벌 시장을 사실상 장악한 만큼 미국으로선 해외에서 형성된 디지털 달러 수요를 제도권 안으로 흡수해 달러 표시 자산과 결제 네트워크 영향력을 유지·확대할 유인이 크다는 분석이다. LS증권도 미국 경제자문위원회(CEA) 보고서를 토대로 백악관이 스테이블코인 제도화 필요성을 강조하는 배경에 달러 패권 전략이 깔렸다고 해석했다.
다만 스테이블코인은 결제·송금 인프라라는 효용과 함께 자금세탁·탈세·우회 송금 통로로 악용될 수 있는 양면성을 지닌다. 블록체인 분석업체 체이널리시스의 ‘2026 가상자산 범죄 보고서’에 따르면 전체 가상자산 범죄 가운데 스테이블코인을 활용한 비중은 2020년 10%대 중반에서 지난해 84%로 뛰었다. 금액으로는 약 1293억달러, 한화 약 191조원 규모다. 스테이블코인 활용 비중이 빠르게 커진다는 경고가 이어지는 배경이다. 제도화 논의가 빨라질수록 범죄 악용 가능성에 대응할 통제 체계 마련 역시 시급한 과제로 부상했다.
국내에서도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둘러싼 논의가 본격화됐다. 산업 육성과 결제 혁신, 은행과 비은행 간 주도권 경쟁이 전면에 부각되지만, 제도화 이후 감독 공백 문제도 함께 점검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디지털자산거래소 공동협의체(DAXA)는 최근 정책 자료집에서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단순한 결제 혁신 수단이 아니라 자본유출 외부성을 내재화하는 거래관리 설계라는 거시금융 정책 과제로 봐야 한다고 제언했다. 해외 거래소나 개인 지갑으로 자금이 이동한 뒤에는 국내 감독기관의 행정력과 정보 접근성이 약화할 수 있다는 점도 함께 짚었다.
업계에서는 한국 역시 달러 중심 스테이블코인 질서 속에서 자체 통화 기반 디지털 인프라를 확보해야 한다고 본다. 다만 미국과 마찬가지로 금융정보분석원(FIU)·국세청·관세청·수사기관 차원의 통제 체계 논의도 병행해야 한다는 주장도 힘을 얻는다. 스테이블코인을 기존 가상자산 규제 틀에 단순 편입할 것이 아니라 금융안정, 지급결제, 소비자 보호, 자금세탁방지를 아우르는 금융 인프라 정책 차원에서 다뤄야 하며, 규율의 핵심은 거래소 규제보다 발행 단계에서의 구조적 신뢰 확보라는 점이 강조되는 분위기다.
전문가들은 스테이블코인 논의가 산업 진흥을 넘어 금융 인프라 통제 체계 재설계 문제로 확장한다고 본다. 황석진 동국대학교 국제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스테이블코인 규율의 중심은 거래소 규제가 아니라 발행자 규율이어야 하며, 준비금 규제 역시 단순 비율 규정이 아닌 구조 규제로 설계돼야 한다”라며 “스테이블코인이 향후 한국 금융 시스템에서 어떤 역할을 수행할지는 기술 발전의 속도보다 정책 설계의 정교함에 달렸다”라고 지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