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정유사 관련 VLCC 7척·국적 선박 26척 대기… 원유 1400만배럴 묶여
업계 “실제 수급 정상화까진 시간”

미국과 이란이 2주간의 휴전과 호르무즈 해협 개방에 전격 합의하면서, 고사 위기에 몰렸던 국내 정유업계에도 일단 안도의 기류가 흐르고 있다. 원유 도입 선로가 물리적으로 복구됨에 따라 최악의 수급 중단 사태는 면했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업계는 실제 원유 수급이 평시 수준으로 정상화되기까지는 여전히 넘어야 할 산이 많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이란 당국이 제시할 구체적인 통항 기준과 통행료 산정 방식, 그리고 해협에 묶인 선박들의 운항 순서 등 핵심 세부 사항이 여전히 베일에 싸여 있기 때문이다.
산업통상자원부는 8일 호르무즈 해협 운항 재개와 관련해 외교 경로를 통한 구체적 조건 확인에 나섰다. 정부는 외교부·해수부 등 관계부처와 협의해 국내 유조선의 신속하고 안전한 통항을 지원할 방침이다. 현재 한국은 원유의 61%, 나프타의 54%를 호르무즈 해협 도입에 의존하고 있어 해로 확보가 시급한 실정이다. 정부는 비상 상황에 대비해 17개국으로부터 4~5개월분인 1억1000만 배럴의 대체 원유를 확보한 상태다. 하지만 중동발 리스크의 여파는 이미 산업 현장에 미치고 있다. 원료 수급 불안으로 인해 국내 정유공장 가동률과 나프타 공급량은 평시 대비 10~20%가량 감소하며 생산 차질이 본격화되는 양상이다.
해협이 다시 열린다고 해도 수급이 정상화되기까지는 시간이 소요될 전망이다. 정부에 따르면 현재 호르무즈 해협 안에는 2000척이 넘는 선박이 얽혀 있고, 우리 국적 선박도 26척이 대기 중이다. 3월 초부터 발이 묶인 국내 정유사와 관련된 초대형원유운반선(VLCC) 7척 역시 아직 빠져나오지 못했다. 이들 선박에 실린 원유는 약 1400만배럴 규모다. 전 세계 선박들이 한꺼번에 몰려 있는 만큼 우리 선박이 먼저 빠져나올 수 있다는 보장이 없다. 호르무즈 해협 안쪽 항로가 넓지 않은 데다 수심이 깊은 이란 측 항로로 선박이 몰리는 구조여서, 실제 운항이 재개되더라도 순차적으로 풀릴 가능성이 크다. 이란 정부가 통항 순서, 기준을 어떻게 정하느냐에 따라 2주 안에 모든 선박이 빠져나오지 못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정유사들은 일단 정부가 안전하다는 사인을 주면, 해협 안에 대기 중인 선박들 먼저 순차적으로 이동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개방 조건이 아직 명확하지 않아 즉각 대응보다는 상황을 지켜보는 중”이라며 “보험사들의 위험 평가와 선사 판단도 변수”라고 말했다.
반면 한국에서 선박을 보내 추가로 원유를 싣고 오는 방안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현지까지 가는 데만 약 25일이 걸리고, 원유를 싣는 데도 2~3일이 소요된다. 때문에 업계는 호르무즈 인근에서 대기 중이거나 비어 있는 선박을 용선해 투입하는 방안을 함께 검토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주와 다음 주를 실질적인 분수령으로 본다. 김태환 에너지연구원 연구위원은 “아직 달라진 것은 없다”며 최근 유가 하락은 실제 공급 회복보다 휴전에 대한 기대 심리가 먼저 반영된 결과라고 진단했다.
김 연구위원은 중동에서 아시아로 원유가 도착하는 데 통상 20~30일이 걸리는 만큼 해협 봉쇄가 한 달을 넘기면 재고와 제품 수급에 본격적인 차질이 나타날 수 있다고 설명했다. 2주 휴전이 실제 유지되고 운항이 재개된다면 최악의 시나리오는 피할 수 있지만, 다시 무력 충돌로 번질 경우에는 수출 통제나 지금보다도 더 강한 수준의 에너지 절감 조치까지 거론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