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처분의 쟁점은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생산하는 제품이 일반적인 공산품이 아닌 ‘바이오의약품’이란 점에 있다. 바이오의약품 공정은 살아있는 세포를 배양, 정제해 약을 만들어낸다. 생명체를 관리하기 때문에 1년 365일, 24시간 멈춤없는 연속적인 공정 가동이 필요하다. 조금이라도 공정에 차질이 생긴다면 몇달에 걸쳐 생산되던 의약품이 한순간 전량 폐기될 수도 있다.
생산 중단은 심각한 의약품 공급 공백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생산하는 의약품들은 암과 같은 치명적인 질환의 치료에 쓰이거나 정상적인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꾸준한 투여가 필수적인 희귀질환 치료제가 대부분이다. 최악의 경우엔 의약품 공급 차질을 빚으면서 위급한 상황에 처하는 환자가 발생할 것이란 우려가 대두되고 있다.
업계에서는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사업 모델이 자체 의약품 생산이 아닌 CDMO 사업이란 점에서도 파업이 현실화하면 돌이킬 수 없는 신뢰도 하락이 발생할 것으로 분석한다. CDMO 사업은 글로벌 고객사와의 계약에 따라 고품질 의약품을 적기에 공급한다는 ‘약속’으로 이뤄진다. 삼성바이오로직스도 창립 이후 몇년간은 신뢰의 기반이 되는 트랙 레코드 확보에 애를 먹었다. 본격적인 성장 궤도에 오르기까지 수많은 시간과 비용을 투입해야 했다.
그러나 파업으로 생산 차질이 현실화되면 당장 수치로 보이는 손실을 넘어 회사가 그간 쌓아온 신뢰의 근간이 흔들리게 된다. 생산 중단은 단순한 수주와 실적 훼손 차원이 아니라 ‘우리 약을 제대로 만들어 주지 않는 파트너’란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
현재의 신뢰가 장기간의 안정적 운영을 통해 축적된 결과란 점에서 상실할 경우 회복에 훨씬 더 오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 업계의 공통된 시각이다.
이는 삼성바이오로직스만의 충격에서 끝나지 않는다. 공들여 축적한 한국의 CDMO 산업 전체 경쟁력에도 심각한 타격을 입히게 된다. 업계의 이런 우려 속에도 노조는 4월 중 설명회와 투쟁 결의대회 등을 거쳐 다음 달 파업에 돌입한다는 타임라인을 강행하겠단 의지를 굽히지 않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눈앞의 금전적 이익에 매몰돼 산업 생태계를 흔드는 뼈아픈 악수다.
바이오 산업은 생명을 다룬다. 그만큼 높은 윤리의식과 책임감이 필요하다. 정당한 권리의 주장도 생명 존중이란 산업의 본질적 가치 위에서 이뤄져야 한다. 하지만 노조는 언제든 환자를 담보로 집단행동에 나설 수 있다는 인식을 스스로 만들며 돈으로 살 수 없는 가치를 깎아내리고 있다. 글로벌 신뢰와 환자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성숙한 노사 관계의 구축만이 삼성바이오로직스 노사 모두 상생하는 길이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