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의 쌀' 수급난에 요소 비료 가격, 페인트 가격까지 도미노 인상
"기름값, 택배비, 잉크값...오르지 않는 게 없다"

중동발 지정학적 충격이 촉발한 ‘나프타 쇼크’가 산업을 넘어 국민 일상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나프타 공급 차질로 석유화학 공장이 멈추기 시작하면서, 업계에서는 “4월 원료난, 5월 생활물가 충격”을 우려하는 ‘5월 위기설’이 현실화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24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최근 국제 나프타 가격은 톤당 637달러에서 지난주 1161달러까지 치솟았다. 나프타는 석유화학제품의 기본 소재로 이른바 '산업의 쌀'로 불린다. 국내 석유화학 업계는 나프타 수요의 4분의 1을 중동산에 의존해 왔는데, 전쟁 발발로 중동산 수급이 중단됐다. 전쟁 직전 중동에서 출발한 운송선도 지난주를 마지막으로 입항이 사실상 끊긴 상태다. 여기에 중동산 원유 수급도 어려워지면서, 국내 석유화학사는 정유사를 통한 나프타 공급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여수산단에서는 이미 생산 차질이 현실화됐다. 국내 최대 석유화학 기업 LG화학은 23일 여수 NCC 2공장 가동을 중단한다고 공시했다. 2021년 상업운전 이후 첫 셧다운이다. LG화학은 여수산단에서 연산 에틸렌 120만t 규모의 1공장과 80만t 규모의 2공장을 운영해왔는데, 원료 수급이 정상화될 때까지 2공장을 멈추고 1공장만 돌리기로 했다.
여천NCC도 NCC 가동률이 떨어지자 생산량을 조정하기 위해 올레핀 전환 공정 가동을 중단했다. 앞서 여천NCC는 중동 사태로 공급 불가를 뜻하는 ‘불가항력’을 선언했고, 한화솔루션 등도 고객사에 공급 차질 가능성을 알렸다. 여수 석유화학단지는 원래도 구조조정 압박이 컸지만, 이번 나프타 쇼크가 겹치며 감산과 셧다운이 더 빨라지는 분위기다.
충격은 곧바로 플라스틱 가공업계로 번졌다. 폴리에틸렌(PE)과 폴리프로필렌(PP) 공급이 흔들리면서 원료 확보에 비상이 걸렸다. PE는 비닐봉지와 종량제 봉투의 핵심 소재이고, PP는 컵라면 용기와 화장품 용기, 각종 생활용품에 쓰인다. 국내 플라스틱 가공업체들은 당장 4월부터 가동 중단을 걱정하는 상황이다. 한국프라스틱공업협동조합연합회 조사에서도 응답 기업의 94.7%가 수익성 악화를, 68.4%가 납기 지연을, 39.5%가 생산량 감소·중단을 호소했다.
플라스틱 업체들은 원가의 80%를 원재료가 차지한다. 원료 가격은 즉각 오르지만 납품 단가는 묶여 있어 공장을 돌릴수록 적자다. 석화사에서 원료를 받아 쓰레기 종량제 봉투를 만드는 한 화학공업업체 관계자는 "가격이 문제가 아니다. 원료 수급 자체가 4월 부터 불투명하다고 고지를 받았다"면서 "100t 쓰는 업체에 절반 수준인 50t만 공급하겠다는 통보를 받는 등 지금 현장은 혼란 그 자체"라고 말했다. 기름값 상승은 부자재 가격까지 끌어올렸다. 국내 대표 도료업체인 KCC와 노루페인트, 삼화페인트, 제비스코 등도 전일 잇따라 가격 인상을 단행했다. 노루페인트는 신나(용제) 제품 가격을 최대 55%까지 올렸고, 삼화페인트도 최소 40% 수준의 인상을 단행했다.
'밥상 물가'도 위협받는다. 주요 식품업체들의 포장재 재고는 1~2개월 수준으로 알려졌다. 포장재가 부족하면 식품업체는 더 비싼 값에 조달하거나, 생산량 자체를 줄여야 한다. 결국 가격 인상이나 공급 차질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농산물 가격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요소 비료 역시, 수급 불안 상황이 발생할 수 있어 정부가 주시하고 있다. 비료의 핵심 원료인 요소는 중동 의존도가 높다. 최근 중동발 공급 불안으로 가격이 한 달 새 47% 급등했다. 요소는 농업 생산비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 비료 가격이 오르면 농가의 비용 부담이 증가하고, 이는 곧 농산물 가격 상승으로 이어진다. 쌀·채소·과일 등 주요 식재료 가격이 전반적으로 오를 수 있다는 뜻이다. 특히 봄철은 본격적인 영농 준비 시기로, 비료 가격 상승이 생산량과 직결되는 시기다.
업계 관계자는 "전기세, 기름값, 용달비, 택배비, 잉크 값까지 지금 오르지 않는 게 없다"면서 "플라스틱 제품을 만드는 업체를 시작으로, 도미노처럼 일반 국민들도 포장 용기를 구하기 어렵거나, 모든 생필품 가격이 다 오르는 상황을 곧 체감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대형 고객사들이 중소기업과 함께 위험을 분담하거나, 정부가 중동 말고 나프타 공급선을 뚫지 않는 이상 현 상황을 타개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