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유가가 급등하자 국내 주유소 석유제품 가격은 빠르게 반응했다. 호르무즈 해협이 사실상 봉쇄된 초유의 상황이 고스란히 전이됐다.
소비자들은 민영 주유소보다 기름값이 저렴한(혹은 그렇다고 믿은) 알뜰주유소에 몰렸다. 기름을 넣기 위해 긴 대기 행렬이 이어졌고, 이런 풍경은 언론매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퍼져나갔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벌어진 알뜰주유소의 일탈이다. 한국석유공사가 관리하는 일부 알뜰주유소가 하루 사이 경유 가격을 600원 넘게 올렸다가 정부 단속 분위기가 감지되자 슬그머니 내렸다. 이러한 행태가 드러나자 주무부처인 산업통상부 장관은 석유공사 사장에게 엄중 경고를 했다. 석유공사 사장은 대국민 사과와 재발 방지를 약속했다.
현재 알뜰주유소는 석유공사 395개, 한국도로공사 209개, 농협(NH) 714개 등 총 1318개소가 운영되고 있다. 휘발유, 경유 등 판매가는 사업주가 자율적으로 결정한다. 다시 말해 알뜰주유소는 민간 사업장인 셈이다. 사업자가 기름값을 올렸다고 해서 위법이라 말하기 어려운 구조라는 뜻이다.
그러나 알뜰주유소 브랜드가 주는 무게를 고려하면 얘기는 달라진다.
알뜰주유소는 처음부터 서민의 기름값 부담을 줄이겠다는 공적 목표로 설계된 제도다. 석유공사 등이 공동구매를 통해 저렴한 유류를 공급하고 세제혜택 등 예산이 투입된다. 특히 브랜드 신뢰는 공공기관을 향한 믿음에서 비롯된다. 정부와 공기업의 이름이 붙는 순간 국민들은 ‘공공가격’으로 받아들인다. 때문에 문제의 알뜰주유소는 공적 자원으로 키운 플랫폼을 이용해 사적 폭리를 취한 것이나 다름없다.
이번 일로 알뜰주유소 브랜드 전체가 타격을 입었다는 점은 가볍게 넘길 수 없는 대목이다. 가격을 올린 것은 일부 사업자였지만 소비자들은 알뜰주유소라는 이름 자체를 불신하게 됐다. 공들여 쌓은 공공 신뢰가 단 며칠 만에 무너진 것이다.
국민 정서에 반하는 문제가 터지고 정부가 사과와 함께 재발 방지 대책을 약속하는 장면은 이제 익숙한 패턴이 됐다. 대중의 관심이 식으면 조용히 넘어가는 경우도 다반사다.
사과는 시작이지 끝이 아니다. 교훈을 새기고 여기서 멈추면 안 된다.
공공 브랜드는 참여자 모두가 공동으로 관리해야 할 공유 자원이다. 한 주유소의 일탈이 전체 네트워크의 신뢰를 훼손한다면 가맹 계약 단계에서부터 명확한 페널티와 강도 높은 퇴출 기준을 정해야 한다. 공공 브랜드를 사용하는 대가로 부과할 수 있는 당연한 조건이다.
알뜰주유소 가격 구조를 투명하게 공개할 필요도 있다. 공급 가격, 물류비용, 세금, 마진 구조 등을 소비자가 이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가격 변동 이유가 명확해야 불신이 줄어든다.
알뜰주유소의 역할을 다시 정립하는 것도 중요하다. 정부가 가격을 직접 관리하기 위한 정책 도구인지, 시장 경쟁을 흔들어 깨우는 ‘메기’인지 목표를 분명히 해야 한다.
석유공사의 실질적인 가격 조정자 역할도 고민해야 한다. 지금 같은 위기 때 가격을 통제할 수 있는 권한과 책임을 부여해야 한다. 입법 지원이 필요하다면 국회가 적극적으로 협조해야 한다.
국제유가 불안은 앞으로도 반복될 게 분명하다. 기후 위기, 지정학적 갈등, 산유국 담합 등 에너지 가격을 흔드는 변수는 차고 넘친다. 그때마다 땜질식 대응을 한다면 유가 위기보다 먼저 무너지는 것은 정책 신뢰다. 알뜰주유소의 진짜 과제는 기름값을 낮추는 것이 아니라 정부를 믿게 만드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