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짓기 편하라고 봐준 소음 탓에 혈세 ‘콸콸’ [공급 속도에 밀린 삶의 질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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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광주·광교 등 소음 갈등 잇따라
뒤늦은 방음시설에 수백억 공공 부담
“집단 민원→세금 투입 악순환 불가피“
“최소한의 주거 환경은 보장돼야“

▲고가차도에 설치된 방음벽을 청소하는 모습. (사진제공=뉴시스)

#세종특별자치시 도로 곳곳에는 방음 터널이 설치돼 있다. 아파트 건설 당시에는 환경영향평가 기준을 충족한 것으로 판단해 별다른 소음 저감 조치가 없었지만, 입주 후 창문을 열면 차량 소음이 크게 들리면서 집단 민원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결국 한국토지주택공사(LH)와 지자체가 수백억 원을 투입해 방음 터널을 설치했다. 더 큰 문제는 유지관리 비용이다. 세종시가 부담해야 할 유지관리 비용은 연간 약 16억 원, 향후 30년간 약 492억 원으로 추산된다.

11일 아파트 생활 지원 플랫폼 아파트아이에 따르면 2022년 약 3000건 수준이던 민원은 매년 30~40%씩 증가해 2025년에는 약 8000건 수준으로 늘었다. 이처럼 소음 관련 민원이 꾸준히 늘고 있지만 건설 단계에서 소음 관리 계획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 결과 입주 이후 뒤늦게 방음시설 설치 등 대책을 마련하면서 막대한 비용이 투입되는 사례가 반복되고 있다.

광주광역시 제2순환도로 역시 세종시와 상황이 비슷하다. 신창·수완지구를 가로지르는 도로 주변에 6000가구가 넘는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소음 피해가 이어졌다. 하루 수만 대 차량이 통행하자 광주시는 결국 약 500억 원의 예산을 투입해 방음 터널을 설치해야 했다.

다른 지역에서도 비슷한 사례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수원 광교신도시에서는 영동고속도로 인접 아파트 단지를 중심으로 소음 갈등이 장기간 이어졌다. 신도시 개발 당시 방음벽 높이를 기준에 맞춰 설치했지만 효과를 발휘하지 못한 고층 아파트 입주민들이 “여름철 창문을 열 수 없다”며 차량 소음 피해를 호소하면서다. 이후 주민들과 한국도로공사, 지자체 간 갈등과 소송이 이어졌고 결국 기존 방음벽을 철거한 뒤 대형 방음 터널을 설치하는 방안이 추진됐다. 이 과정에서 수천억원 규모의 공사비와 비용 분담 문제를 둘러싸고 사회적 갈등이 확대됐다.

부산 사상구 주례동과 개금동 일대 동서고가도로 인근에서도 유사한 문제가 발생했다. 이 지역 아파트는 재개발 과정에서 실내 소음 기준을 중심으로 설계됐지만 입주 이후 야간 차량 소음이 지속적으로 발생했다. 특히 화물차 통행이 많은 밤 시간대 소음으로 수면 장애를 호소하는 주민 민원이 이어지면서 지자체 예산으로 저소음 포장을 주기적으로 교체하는 상황이다.

업계에서는 주택 공급 속도를 높이겠다고 소음 기준을 섣불리 완화하는 것은 이처럼 향후 갈등을 키울 수 있다고 지적한다. 한 업계 관계자는 “개정안이 시행되면 창문을 닫고 측정하는 실내 기준(45dB)만 충족해도 건축 허가가 가능해질 수 있다”며 “실외 소음이 70~75dB 수준이라도 입주가 이뤄질 수 있어 결국 집단 민원으로 이어지고, 지자체가 막대한 세금을 들여 소음 저감 대책을 마련하는 상황이 반복될 수 있다”고 말했다.

시민단체 역시 규제 완화에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윤은주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도시개혁센터 부장은 “주택 공급 확대도 중요하지만 최소한의 주거 환경은 보장돼야 한다”며 “예외 규정이 확대되면 주거의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고 취약계층일수록 더 열악한 소음 환경에 놓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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