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시각] 선진국 경제, 후진국 삶의 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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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선 사회경제부장
한국은 세계 10위권 경제 규모를 가진 나라다. 1인당 국민소득은 4만달러를 향해 가고 있고 기술과 산업 경쟁력에서도 선진국 반열에 올랐다는 평가를 받는다. K팝을 중심으로 한 K문화 역시 일시적 열풍이 아니라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콘텐츠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정작 국민의 삶을 들여다보면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경제 규모와 국민이 체감하는 삶의 질 사이의 간극이 좀처럼 좁혀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5일 국가데이터처가 발표한 ‘국민 삶의 질 2025’ 보고서는 이런 현실을 다시 확인시켜 준다. 한국인의 삶의 만족도는 6.4점으로 2년 연속 제자리걸음을 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33위로 여전히 최하위권이다. 경제 지표만 보면 선진국 문턱에 올라섰지만, 국민이 느끼는 삶의 만족도는 그 수준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더 우려되는 것은 삶의 질을 보여주는 다른 지표들이다. 자살률은 인구 10만 명당 29.1명으로 2년 연속 상승해 2011년 이후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OECD 국가 가운데 가장 높은 수준이다. 대부분의 국가가 10명 안팎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한국 사회가 겪고 있는 심리적 압박의 강도를 짐작할 수 있다. 실제로 일상에서 우울과 걱정을 느끼는 정도를 나타내는 부정정서 지수도 3년 만에 다시 악화했다.

삶의 만족도가 정체된 배경에는 구조적인 격차가 자리 잡고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소득이 낮을수록 삶의 만족도는 뚜렷하게 떨어졌다. 월 소득 100만 원 미만 가구의 만족도는 평균보다 크게 낮았다. 상대적 빈곤율도 상승해 15%를 넘어섰다. 특히 고령층의 상대적 빈곤율은 40%에 육박한다. OECD 국가 가운데서도 보기 드문 수준이다.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한국 사회에서 이는 단순한 통계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사회적 연결망도 약해지고 있다. 사회단체 활동 참여율은 크게 줄었고 정부와 국회 등 주요 기관에 대한 신뢰도 역시 50% 아래로 떨어졌다. 사회적 고립도는 팬데믹 이후 개선되지 못한 채 정체 상태다. 개인의 삶을 지탱하는 사회적 안전망이 약해지고 있다는 신호다.

경제 성장 자체가 문제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실제로 국민총소득은 늘어났고 긍정적인 감정 지표도 소폭 개선됐다. 그러나 성장의 과실이 삶의 안정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문제다. 취업 시장 역시 불안하다. 대학 졸업자의 취업률은 1년 만에 다시 하락했다. 청년에게는 기회의 불안이, 노년에게는 생계의 불안이 동시에 존재하는 구조다.

결국 질문은 하나로 귀결된다. 한국 사회는 왜 이렇게 ‘열심히 사는데도 행복하지 않은 나라’가 됐는가. 경쟁 강도가 높은 사회 구조, 취약한 사회 안전망, 빠른 고령화, 불평등의 확대 등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문제는 이런 지표들이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오랫동안 반복되고 있다는 점이다.

경제 성장은 중요한 목표다. 그러나 성장만으로 삶의 질이 자동으로 개선되는 것은 아니다. 이제는 국민이 체감하는 삶의 안정과 사회적 신뢰, 공동체의 연결을 함께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국가의 경쟁력은 결국 국민의 삶에서 나온다. 한국 경제가 선진국 문턱을 넘어섰다면, 이제는 국민의 삶 역시 그에 걸맞은 수준으로 끌어올릴 정책과 사회적 해법 마련을 더 이상 미뤄서는 안 된다.

김동선 에디터 겸 사회경제부장 matth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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