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전업계, 물류비·원재료 이중 부담
반도체 영향 제한적…변동성에 ‘주목’

한국 산업계가 원·달러 환율이 ‘심리적 방어선’인 1500원을 넘나들자, ‘비용 블랙홀’에 빠져들고 있다. 유가와 물류비, 원자재 가격이 동시에 요동치는 이른바 ‘트리플 쇼크’가 현실화되면서, 우리 기업들은 감내하기 힘든 비용 압박의 외통수에 걸렸다. 단순한 수익성 악화를 넘어 제조 근간을 흔드는 공급망 셧다운의 전조마저 감돌고 있다.
4일 나이스신용평가는 중동발(發) 전쟁 여파로 유가와 LNG 가격, 해상 운임이 일제히 치솟으며 주요 산업 전반에 심각한 원가 압박이 가해질 것으로 내다봤다.
정유·민자발전·해운·조선·방위산업 등은 운임이나 제품 가격 상승으로 비용 증가분을 판가에 전가하거나 오히려 수익성이 개선될 수 있는 구조로 평가됐다. 반면, 석유화학·항공·철강·자동차·가전 등은 원가 상승분 전가가 제한되거나 수요 위축이 겹치며 수익성 저하 압력이 확대될 가능성이 높은 업종으로 분류됐다.
환율이 오르면 같은 물량을 들여오더라도 원화 기준 비용 부담이 커진다. 메모리와 디스플레이 패널, 카메라 모듈, 기판 등 핵심 부품은 물론 반도체 장비와 소재 거래가 대부분 달러로 이뤄지기 때문이다.
또 부품 가격 상승분을 제품 가격에 즉각 반영하기 어렵다는 점도 부담 요인이다. 세트와 부품 간 거래 구조상 납품 단가 조정에는 시간이 소요돼 환율 상승이 이어질수록 비용 부담이 먼저 쌓인다.
특히 가전업계는 물류비와 원재료 가격 상승 영향을 동시에 받을 수 있는 업종으로 꼽힌다. 호르무즈 해협 인근 긴장 고조로 수출 운송 경로가 우회될 경우 유럽·중동향 운임이 단기적으로 상승할 가능성이 있고, 전쟁이 장기화하면 석유화학 제품과 철강 등 주요 원재료 가격 인상 압력도 커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여기에 인플레이션에 따른 소비심리 위축까지 겹칠 경우 가전 판매 둔화로 이어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경화 나이스신용평가 기업평가본부 기업평가4실장은 “국내 가전업체는 프리미엄 제품군에서의 경쟁력을 바탕으로 수익성과 경기 민감도를 일정 수준 방어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이나 소비심리 악화가 지속될 경우 수익성에 부정적인 영향이 커질 전망이다”라고 말했다.
반면 반도체 산업은 이번 사태의 영향이 상대적으로 제한적일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메모리 반도체 시장이 공급 제약 국면을 이어가고 있어 에너지 비용이나 물류비 상승 등 원가 증가분을 일정 부분 제품 가격에 반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분쟁 장기화로 유가 상승세가 이어질 경우 항공 운송 비중이 높은 반도체 산업 특성상 물류비 부담이 확대될 가능성은 변수로 꼽힌다.
업계에서는 환율 수준 자체보다 변동성이 확대되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전자업계 관계자는 “제품을 수출하면 달러 매출이 발생하지만 부품과 장비도 대부분 달러로 조달하기 때문에 환율 상승이 반드시 이익으로 이어지는 구조는 아니다”며 “환율이 일정 범위에서 움직이면 대응이 가능하지만 급격히 출렁이면 사업 계획을 세우기가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환율 변동성 확대가 기업 투자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천구 대한상공회의소 SGI 연구위원은 “환율 상승은 기업이 보유한 외화 부채의 원화 환산 가치를 높여 재무 건전성에 부담을 준다”면서 “대기업은 환헤지 등을 통해 환율 변동성을 흡수하지만 중소기업은 완충 장치 없이 리스크를 떠안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