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기관법상 직접 개입 한계⋯원전 수출 체계 '단일화' 등 구조적 개편 시급

한 지붕 아래 있는 한국전력과 한국수력원자력이 아랍에미리트(UAE) 원전 정산금 1조4000억원을 두고 영국 런던에서 국제 소송전을 벌이는 초유의 사태에 결국 정부가 칼을 빼들었다.
하지만 정부의 조치는 강제성 있는 '명령'이나 '지시'가 아닌 '권고'에 머물렀다. 천문학적인 혈세 낭비가 뻔히 예상됨에도 정부가 소극적일 수밖에 없었던 배경에는 '배임 리스크'와 '구조적 한계'가 자리 잡고 있다.
27일 산업통상부에 따르면 한수원이 해외 중재 기관(LCIA)의 문을 두드린 핵심 이유는 경영진의 배임 리스크 때문이다. 100% 모자회사 관계라 하더라도 엄연히 분리된 법인인 양측은 회사에 손해를 끼치는 합의나 양보를 할 경우 경영진이 배임 혐의로 처벌받을 수 있다.
정부 역시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공운법) 제3조에 따라 공공기관의 자율적 경영을 보장해야 하므로 부당하게 합의를 강제하거나 소송을 취하하라고 압박할 수 없는 '그레이존(회색지대)'에 놓여 있었다. 자칫 직권남용 논란에 휩싸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산업부가 짜낸 고육지책이 바로 공식 권고다. 산업부는 법제처 유권해석과 법률 자문을 거쳐 정부가 개입할 수 있는 최대치인 권고안을 도출했다. 이는 한전과 한수원 경영진에게 "정부의 공식 권고에 따라 국내로 중재를 이관하고 협의했다"는 일종의 '면책 명분(방패)'을 제공해 배임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정부는 이번 권고의 기대효과로 비용 절감과 기술 유출 방지를 내세웠다. 국정감사에서 양측의 소송 비용만 370억원에 달할 것이란 지적이 나오며 여론이 악화한 상태다. 국내 대한상사중재원으로 무대를 옮기면 값비싼 해외 로펌 비용과 중재 수수료를 줄일 수 있다.
하지만 산업부가 가장 기대하는 것은 '시간 단축'이다. 영국에 비해 국내에서 중재를 진행할 경우 소통의 효율성이 높아져 기간이 대폭 줄어들 수 있고 정기적인 협의체를 강제함으로써 소송 대리인(로펌)들에게만 유리하게 분쟁이 장기화하는 것을 막겠다는 계산이다.
이번 사태는 근본적으로 2016년 이후 이원화된 한국의 원전 수출 체계가 가진 취약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수주 단계에서는 모회사(한전: 주계약자)와 자회사(한수원: 하도급)가 원팀으로 움직이지만 건설 지연 등 리스크가 발생해 비용 정산 단계에 돌입하면 이해관계가 엇갈리며 적으로 돌변하는 구조다.
산업부 고위 관계자는 "글로벌 원전 시장이 커지면서 향후 해외 진출이 많아질 텐데 이런 분쟁이 재발해 한국 원전의 신뢰도에 누를 끼쳐서는 안 된다"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실제로 미국 보글 원전이나 해외 대형 원전 프로젝트들이 비용 급증으로 줄도산하는 상황에서 UAE 바라카 원전은 상대적으로 매우 적은 비용 증가로 성공적인 준공을 이뤄낸 '모범 사례'다. 그런데도 내부 정산 문제로 성과가 퇴색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한전과 한수원의 원전 수출 기능을 통합하거나 제3의 전담 기관을 신설하는 등 원전 수출 체계를 근본적으로 개편하기 위한 연구 용역에 착수한 상태다.
글로벌 원전 르네상스를 맞아 '팀 코리아'가 내부 분쟁으로 동력을 상실하지 않도록 이번 사태를 계기로 신속한 시스템 재정비가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