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제니도 달았다⋯직접 만드는 '로제트'의 매력은? [솔드아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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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화제 되는 패션·뷰티 트렌드를 소개합니다. 자신의 취향, 가치관과 유사하거나 인기 있는 인물 혹은 콘텐츠를 따라 제품을 사는 '디토(Ditto) 소비'가 자리 잡은 오늘, 잘파세대(Z세대와 알파세대의 합성어)의 눈길이 쏠린 곳은 어디일까요?

▲(김다애 디자이너 mnbgn@)

꾸밀 수 있는 건 모조리 꾸미는 시대. 특히 특정 인물이나 캐릭터를 열정적으로 좋아하는 '팬덤'은 꾸미기를 가장 적극적으로 즐기는 집단입니다. 포토카드(포카)를 넣는 탑로더 꾸미기, 이른바 '탑꾸'는 이제 진부할 정도고요. 콘서트장에 들고 가는 응원봉부터 휴대전화, 가방, 이름표까지 직접 꾸미며 자신의 취향을 드러내는 데 열중하죠.

이 흐름은 공식 굿즈가 채워주지 못한 미묘한 빈틈에서 출발합니다. 기획사가 내놓는 머천다이즈(MD)는 분명 완성도가 높고 세련됐지만, 어디까지나 '평균의 취향'을 향합니다. 무난하고 안전한 디자인, 대중적인 색감, 보편적인 콘셉트. 누군가에겐 충분하지만, 누군가에겐 2% 부족하죠.

그래서 팬들은 각종 꾸미기를 통해 그 빈칸을 직접 채우고 나섰습니다. 포카에 또 다른 프레임을 씌우고, 응원봉을 분해해 피규어를 부착하고, 가방에는 뱃지와 키링을 줄줄이 달아봅니다. 굿즈는 이 과정에서 '소장품'이 아니라 나를 표현하는 '재료'가 됩니다. 팬덤의 꾸미기는 그렇게 또 한 번 진화하고 있는데요. 그중에서도 특히 최근 눈길을 사로잡는 문화를 살펴봤습니다.

▲(출처=채영 인스타그램 캡처)

레이도 제니도 달았다…로제트가 뭔데?

최근 심상찮은 인기를 자랑하는 건 '로제트'입니다. 겹겹이 쌓인 리본이 둥글게 퍼진 장식인 로제트는 '작은 장미'를 뜻하는 프랑스어 '로제트(Rosette)'에서 유래했는데요. 리본이나 원단을 주름 잡아 원형으로 모은 모습이 활짝 핀 장미를 닮았다고 해서 붙은 이름입니다.

과거 로제트는 공로를 기리는 훈장 장식으로 쓰였습니다. 군인이나 공직자가 받는 훈장, 선거 현장에서 지지 정당을 상징하는 리본 배지, 각종 대회에서 우승자에게 수여하는 리본 상장까지 오랫동안 특별한 존재임을 증명하는 상징이었죠.

패션 업계에서는 로제트를 곧잘 활용해왔습니다. 마그다 부트림은 로제트 장식으로 잘 알려진 브랜드인데요. 드레스부터 신발, 수영복에까지 부드러운 실크 로제트를 달아 눈길을 끌어왔습니다. 시몬 로샤는 훈장을 연상케 하는 리본 드레스 등을 선보인 바 있고요. 로제트 스크런치(머리끈) 유행을 이끈 샌디리앙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K팝 아티스트들도 로제트를 착용하면서 눈길을 끌었습니다. 아이브 레이는 생일을 맞아 자신의 어린 시절 얼굴을 담은 노란색 로제트와 레이스 왕관, 진주 목걸이를 여러 겹 레이어드해 키치한 분위기를 자랑했습니다. 지난해 9월 솔로로 데뷔한 트와이스 채영은 상의 양쪽 어깨에 로제트를 단 건 물론, 스커트를 수많은 로제트로 빼곡하게 채워 동화적이면서도 신비로운 무드를 담아냈습니다. 이외에도 아일릿, NCT 위시, 키키, 하츠투하츠 등 다양한 그룹이 로제트를 포인트 액세서리로 착용해 귀엽고 자유분방한 이미지를 전달한 바 있습니다.

로제트의 인기는 K팝 팬덤으로까지 뻗어나갔습니다. 이들은 로제트를 직접 만들면서 시선을 모으는데요.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돌의 사진 등을 중앙에 넣고, 콘셉트에 맞는 색과 소재를 고르는 식입니다. X(옛 트위터) 등 각종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로제트 디자인이나 재료를 추천하는 글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기도 합니다. 동대문 종합시장이 단연 로제트의 '성지'로 거론되는데요. 수많은 디자인의 리본과 레이스, 단추, 브로치 핀을 한꺼번에 구할 수 있는 데다가 여러 레퍼런스까지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죠.

▲(출처=제미나이 나노바나나 AI 기반 편집 이미지)

취향 전시하는 가방도 인기

사실 로제트는 일본 서브컬처 팬덤 사이 먼저 인기를 끌었습니다. 만화나 애니메이션 팬들이 캐릭터 캔배지 주변을 화려한 리본과 레이스로 감싸 훈장처럼 연출한 건데요. 이 흐름은 '이타백(痛バッグ)' 문화와 맞물려 더 확산했습니다.

이타백은 좋아하는 캐릭터 굿즈를 가방 겉면에 빼곡히 전시하는 문화를 뜻하는데요. 가방 전면부가 투명한 재질로 돼 있어 캔뱃지나 인형, 지류 같은 굿즈를 넣어서 장식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습니다. 특정 캐릭터의 캔배지를 반복적으로 배치하고 색감을 통일해 하나의 전시 공간처럼 꾸미는 게 특징입니다.

지금은 애니메이션 행사뿐 아니라 아이돌 콘서트, 팝업스토어 현장에서 이타백을 든 팬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데요. 이 같은 수요를 겨냥해 아예 '덕질 가방'이라는 키워드로 제품을 판매하는 브랜드도 속속 등장하고 있습니다. 일본 서브컬처에서 시작된 놀이가 K팝 팬덤의 취향 전시 문화와 만나 새로운 형태로 자리 잡고 있는 셈입니다.

▲(출처=제미나이 나노바나나 AI 기반 편집 이미지)

커스텀 시장 활발…나만의 특별함 주문하는 요즘

물론 다수의 엔터테인먼트사도 귀엽고 신선한 MD를 꾸준히 선보입니다. 다만 공식 굿즈는 필연적으로 대중적인 취향을 반영한, 표준화된 디자인을 따를 수밖에 없죠. 자신만의 취향을 전면에 드러내고 싶어 하는 이들에겐 갈증을 유발할 지점입니다.

이에 X를 중심으론 활발한 주문 제작, 이른바 '커미션' 문화가 자리 잡고 있는데요. 단순한 소통의 장을 넘어 수만 명의 '금손' 제작자와 구매자가 만나는 거대한 상거래 플랫폼의 역할까지 하게 됐죠.

K팝 팬들 사이 잘 알려져 있는 네임 보드가 대표적입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가수의 이름을 담는 데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그 가수를 상징하는 색깔, 리본, 큐빅 등으로 화려하게 장식, 눈에 잘 띄도록 주문을 의뢰하곤 하죠. 제작자와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원하는 분위기를 설명하고 시안을 수정합니다. 공장에서 찍어내는 제품으로는 구현하기 어려운 세밀한 요구가 반영되는데요. 가격보다 중요한 건 '나만의 것'이라는 감각입니다.

이 같은 흐름은 개인 창작자 시장도 키우고 있습니다. 팬이 팬을 위해 만들고, 그 결과물이 다시 팬덤 내에서 눈길을 끄는 구조입니다. 공식 굿즈가 채워주지 못한 틈새를 커미션 문화가 메우는 셈인데요. 팬덤의 역할이 단순 소비자가 아닌 공동 크리에이터로 진화했음을 시사하죠. 굿즈의 가치는 '얼마나 비싼가' 혹은 '얼마나 구하기 힘든가'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내 취향과 추구하는 매력이 얼마나 담겼는지가 중요한 척도가 되죠.

특히 눈길을 끄는 건 이 같은 문화가 장식을 넘어 경험을 통한 만족감을 제공한다는 점입니다. 리본을 접거나 바느질을 하고 파츠를 하나하나 붙이는 과정은 적지 않은 시간과 정성을 요구하는데요. 완성된 결과물을 손에 쥐었을 때 느끼는 만족감은 휴대전화 화면 속 '좋아요' 숫자와는 다른 결의 성취로 이어집니다. 빠르게 소비하고 빠르게 스크롤하는 환경 속에서, 직접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행위는 일종의 느린 취미로 작동합니다. 좋아하는 대상을 향한 애정을 물리적인 시간과 노동으로 치환하는 방식이기도 합니다. 단순히 '좋아한다'고 말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시간을 들여 형태로 남기는 셈이죠.

이 경험은 개인 차원에 머물지 않습니다. 직접 만든 로제트를 콘서트 현장에서 처음 만난 팬들과 나누거나 이를 중심으로 소통하는 모습도 볼 수 있는데요. 취향이라는 공통 언어를 매개로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순간입니다. 잘파 세대의 '꾸미기'는 그렇게 또 한 번 진화하는 중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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