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시각] 뒤늦게 드러난 한중 정상회담 성적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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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형 국제경제부 부장

최근 서방의 외교 지도가 빠르게 변화 중입니다. 미국 핵심 동맹국들이 중국과 관계 개선에 나선 것인데요.

지난해 12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방중했습니다. 지난달에는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ㆍ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가 잇따라 중국을 찾아 정상회담에 나섰습니다. 이달에는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가 베이징으로 날아갔지요. 이때마다 중국 정부는 좀처럼 속내를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서방의 잇따른 방중을 놓고 “미국 대신 중국으로의 회귀”라고 표현한다면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이야깁니다. 이들의 방중은 중국과 화해가 아니라 관리 차원이기 때문이니까요. 디커플링(탈동조화)보다 디리스킹(위험 축소)이 더 맞는 이야기입니다.

마크롱 대통령이 들고 간 화두는 프랑스와 중국 사이 ‘무역 불균형’이었습니다. ‘친중’보다 무역협상의 문을 닫지 않으려는 몸짓인데요. 캐나다는 오히려 더 직접적이었습니다. 속내에는 ‘대미 의존 낮추기’라는 생존 논리가 서려 있기도 했습니다. 스타머 총리는 “정교한(sophisticated) 관계”를 말했습니다. 방중 기간 아스트라제네카가 중국 투자 계획을 발표한 것도 이 때문입니다.

메르츠 총리는 계산서를 들고 갔습니다. 30대 기업의 경영진을 동행해 중국으로 날아간 것인데요. “독일의 대중 무역적자가 2020년 이후 네 배로 불어나 900억 유로에 이르렀다”는 진단도 꺼내 들며 실리 챙기기에 나섰습니다.

프랑스는 산업을, 독일은 중국과 제조업 협력 확대를 내걸었습니다. 영국은 중국의 투자가 이슈였고, 캐나다는 미국 이외로 시장을 다변화하겠다는 전략을 내걸었습니다. 결과가 어떻게 됐든 각각의 이슈를 들고 대중국 관계를 관리하기 시작한 셈이지요.

서방 주요국이 이처럼 중국과 정상회담에 나서면서 연초 열린 한중 정상회담의 결과에 대한 성적표를 받아볼 수 있게 됐습니다. 비교 기준이 하나둘 추가되면서 우리의 협상 결과를 객관적으로 비교할 수 있는 기준점이 생긴 것이지요.

우리 정부는 중국과 경제와 산업·과학기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양해각서(MOU) 15건을 체결했습니다. 이밖에 공급망 안정,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한 중국의 건설적 역할 등에 대해 논의했습니다. 다만 서방 주요국보다 앞선 결과를 얻어냈다고 자부하기 어렵다는 게 중론입니다.

블룸버그는 "미국 정부가 한국의 대중 외교를 평가하며 동맹 관계를 시험하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베이징에서 시 주석과 샤오미 스마트폰으로 셀카를 찍는 사이 미국은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전 대통령을 압송하는 등 민감한 상황에 놓여있었지요.

요미우리 등 일본 언론은 “시 주석이 한국과의 회담을 ‘한미일 협력 약화’의 지렛대로 활용하려 한다”고 분석했습니다.

빅터 차 미국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 석좌는 “중국이 언제든 한국에 대해 경제적 보복 카드를 다시 꺼낼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습니다.

외교 전문지 더 디플로맷은 “한국이 원자력 추진 잠수함 도입 등 독자적 군사력 강화를 추진하면서 동시에 중국에 중재를 요청했다”며 “이런 행보가 위험한 지형 위에서의 줄타기 외교”라고 평가했습니다.

국민주권정부는 출범 이후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안미경중(安美經中) 구도에서 벗어나겠다고 밝혔습니다. 다만 최근 외부 평가를 보면 우리의 대중·대미 전략이 얼마나 일관되게 설계되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외교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정교한 균형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그 균형이 전략적 방향성과 연결돼 있는지도 점검할 필요가 있습니다. 동맹과의 신뢰, 대중 협력의 실익, 그리고 중장기 산업·안보 구상이 서로 어긋나지 않도록 메시지와 정책의 일관성을 보다 분명히 할 시점입니다.

juni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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