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3 비상계엄’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기소된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1심 선고가 내려졌다. 불법 계엄이 선포된 지 443일 만이다. 재판부는 윤 전 대통령의 혐의를 유죄로 판단하면서도 아주 치밀하게 계획을 세운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 점, 고령 등을 유리한 양형 사정으로 참작해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앞서 특검은 “내란은 헌법이 설계한 민주적 질서를 위태롭게 하는 범죄”라며 법정 최고형인 사형을 구형한 바 있다. 내란 우두머리죄의 법정형은 사형, 무기징역 또는 무기금고 등으로 재판부가 재량으로 형량을 정할 수 있다. 결국 재판부가 최고형이 아닌 무기징역을 선고한 것은, 한편으로 국론 분열을 우려한 정치적 고려로 읽힌다.
세간에는 형량을 둔 갑론을박도 있지만 1심 선고에 대한 의미가 옅어지는 것은 아니다. 전직 통치권자가 ‘내란 우두머리’로 단죄됐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헌정사의 중대한 장면이다. 권력의 정점에 있었던 대통령이 헌정 질서를 침해한 대가로 법의 심판대에 올랐고, 그 책임이 인정됐다. 형량의 경중을 떠나 권력은 헌법의 테두리 안에 있어야 한다는 원칙을 재확인한 판결이다.
이번 판결 이후의 시간이 더 중요해졌다. 우리는 이미 비슷한 경험을 통해 고통을 겪고 분노를 느꼈다.
30년 전, 12·12 군사반란과 5·18 광주민주화항쟁 관련 내란 수괴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전두환 전 대통령은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이후 무기징역으로 감형됐고 특별사면까지 됐다. 그후 25년의 세월은 사법적 단죄가 얼마나 무력해질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거대한 풍자극이었다. 그는 사면 후 "광주는 폭동"이라며 역사를 조롱했고, 전 재산이 29만 원뿐이라며 전 국민을 비웃었다. 알츠하이머를 핑계로 법정을 피하던 그가 골프장에서 호쾌한 스윙을 날리던 모습은, 반성 없는 권력자에게 베푼 관용이 우리 사회에 얼마나 지독한 아픔을 주는지를 증명했다.
문제는 이번 재판 과정에서 드러난 윤 전 대통령의 태도 역시 그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는 점이다. 그는 재판 내내 국헌 문란의 책임을 부인하며 계엄을 '국가를 위한 결단'이라 강변했다.
89분간 진행된 최후진술에서는 "이런 바보가 어떻게 친위 쿠데타를 하느냐"고 했고, 특검 수사를 두고선 "법 상식에 맞지 않는 망상과 소설"이라고 주장했다. 결심공판 후에도 총 여덟 차례에 걸쳐 제출된 828쪽 분량의 의견서에는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하려는 주장을 빼곡히 담으며 무죄를 외쳤다.
탄핵 결정 사유가 된 비상계엄의 중대 과오에 고개를 숙이는 대신 '정치적 박해'라는 프레임 뒤로 숨어드는 태도는, 30년 전 일이 되풀이될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갖게 한다.
재판부가 이날 판결문에서 1649년 영국 국왕 찰스 1세의 재판을 언급한 대목은 의미심장하다. “누구의 권한으로 나를 재판하느냐”는 왕의 물음에 “국민의 이름으로”라고 답했던 그 장면은 권력이 신의 위임이 아니라 국민의 위임이라는 사실을 역사에 새겼다. 이번 판결 역시 같은 맥락에 있다. 최고 권력자라 하더라도 헌정 질서를 침해하면 법의 판단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 그리고 그 판단은 국민의 이름으로 내려진다는 점을 다시 확인한 것이다.
헌정 질서를 스스로 무너뜨린 지도자가 국민 앞에서 취할 수 있는 선택지는 분명하다. '법의 저울'을 겸허히 받아들여 자신의 책임을 명확히 인정하고 반성하는 일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