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 너머] 17년 등록금 동결의 청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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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최고 인상 한도로 몇 년을 더 올려야 한대요.”

최근 1학기 등록금 인상이 확정된 한 서울 사립대 재학생의 말이다. 올해 대학가에서는 등록금 인상을 둘러싼 갈등이 이어지고 있다. 학생들은 부담이 너무 크다고 말하고, 대학은 더는 버틸 수 없다고 말한다. 서로를 향해 목소리를 높이고 있지만, 이들은 모두 같은 정책의 피해자다.

지난 17년 동안 대학 등록금은 사실상 묶여 있었다. 그 사이 물가와 인건비, 시설 유지비는 계속 올랐다. 누적 물가 상승률은 40%를 넘어섰다. 최근 한 대학 등록금심의위원회에서는 “지금까지 오른 물가를 따라잡으려면 앞으로 50년은 매년 인상해야 한다”는 말까지 나왔다.

등록금을 묶어둔 동안 대학은 지출을 늦추는 방식으로 버텨왔다. 교수 충원은 줄었고 시설 개선은 뒤로 밀렸다. 실험 장비와 교육 환경은 빠르게 낡아갔다. 학생 부담을 줄이겠다는 정책이 결과적으로 교육 여건의 정체로 이어진 셈이다. 첨단 산업 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 고급 인재를 길러내는 대학이 재정 압박에 묶여 있는 현실은 결코 가볍지 않다.

대학들은 장기간 누적된 재정 공백을 더는 미루기 어려운 시점이 됐다. 조금씩 인상했다면 나눌 수 있었을 부담이 한꺼번에 드러났다. 올해 대부분 사립대가 인상 상한선까지 등록금을 올린 배경이다. 학생들의 비판은 대학을 향하고 있지만, 이 결과의 책임은 대학에만 있지 않다.

정부는 국가장학금 연계 등으로 등록금 동결을 사실상 강제해 왔다. 대학 재정의 상당 부분을 등록금에 의존하도록 두면서 인상은 억제하는 정책을 유지해 온 것이다. 그러나 그에 상응하는 고등교육 재정 책임은 충분히 지지 않았다. 한국의 고등교육 공공지출 비중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하위에 머물러 있다. 최근 규제를 완화하고 있지만 누적된 부담은 대학과 학생에게 떠넘겨진 상태다.

등록금 동결은 학생 부담을 낮추겠다는 선의에서 출발했다. 그러나 선한 의도가 언제나 선한 결과를 낳는 것은 아니다. 정부가 동결 정책을 유지하는 동안 재정 문제의 근본적인 해법을 마련하지 않았고, 그 사이 비용은 쌓였다. 대학은 인상을 말하고, 학생은 부담을 말한다. 고등교육 재정 문제를 외면한 채 동결만 유지해 온 정책의 결과가 대학과 학생 사이의 충돌로 나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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