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기 압박 줄이고 장기 보유로 전환… 딥테크 기업 R&D 몰입 환경 조성
단기 회수 중심 기존 벤처 펀드 대안
장기 자본 뒷받침 R&D·서비스 품질 향상

인공지능(AI), 반도체 등 기술 기반 기업이 연구개발(R&D) 단계에서 시장 안착까지 제대로 성과를 내려면 정책 펀드가 ‘초장기 자금’의 성격을 갖춰야 한다는 조언이 나온다.
10일 벤처 업계에 따르면 국내 벤처 투자 시장은 자금을 공급하는 펀드의 만기(회수 기간)가 대체로 7~8년에 불과하다. 기관투자자(LP)의 압박에 출자를 받은 사모펀드운용사(PE)나 벤처캐피털(VC)은 투자 후 3~5년이 지나면 회수 압박에 시달린다. 기술이 성숙 단계까지 무르익는 속도와 자본의 회수 시계가 어긋난다. 이 때문에 기술자 출신의 대표이사는 R&D보다 자금 확보와 투자자 대응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이 간극을 줄이기 위한 대안으로 ‘초장기 기술투자펀드’가 정책 자금의 새 모델로 거론된다. 유니콘(기업가치 1조 원 이상 비상장 스타트업)을 넘어 데카콘(기업가치 10조 원 이상)까지 성장할 기업을 10년 이상 장기 지원하는 방식이다. 단기 회수 중심의 기존 벤처펀드로는 담기 어려운 성장 시계가 필요한 기업을 주 타겟으로 한다. VC업계 관계자는 “기술 기업 관점에서 장기 자본이 뒷받침돼야 제품 고도화, 보안 강화, 인프라 투자 등에 비용을 장기적으로 투입할 수 있다”고 말했다. 구글의 경우 1999년 세콰이어캐피탈과 클라이너퍼킨스가 2500만 달러를 투자한 뒤 2004년 상장에 이르기까지 장기간 자본이 뒷받침된 사례로 거론된다.
만기 압박이 기업 성장의 ‘브레이크’로 작동하는 일도 부지기수다. 한 VC 대표는 “펀드 만기가 임박하면 후속 투자 유치보다 회수 전략이 우선되면서, 기업이 R&D·인력 확충에 쓰려던 비용을 줄이고 매출 방어에 집중하는 방향으로 전략이 바뀌는 경우가 허다하다”며 “기술 검증이 끝나기 전에 지분 구조가 흔들리면 핵심 인력 이탈로 개발 일정이 밀리고, 성장 모멘텀이 꺾이기도 한다”라고 말했다.
짧은 펀드 만기로 출자자가 조기 회수에 나서면서 펀드가 수익률을 충분히 거두지 못한 사례가 적지 많다는 평가도 있다. 스노우플레이크는 2020년 공모가를 주당 120달러로 IPO를 했지만, 상장 직후 기업가치가 700억달러 이상으로 상승했다. 줌(ZOOM)도 2019년 IPO(공모가 36달러) 이후 기업용 시장 확장 과정에서 기업가치가 크게 올랐다. 아마존 역시 초기 투자 이후 장기간 보유가 가능했다면 수익 배수가 더 커졌을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한 VC 대표는 “기관 자금의 만기 제약 때문에 우량 기업을 충분히 키우지 못하고 중간에 놓치는 경우가 많았다”며 “초장기 기술투자펀드는 기업과 투자자가 함께 트랙레코드를 쌓아가는 구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